건반을 애무하듯 연주하여
청중을 기절시킨 피아노 거장
[클래식 음악 이야기]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2014년 07월 03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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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 말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의 머리를 이마 뒤로 지속적으로 밀치면서(걷어내면서) 즉흥을 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가끔씩 흰건반을 따라 매우 미친 듯이 사납게 휘몰아치기도 하고 전체에 여기저기 달콤한 꽃향기를 뿌리며 홍수 같은 아이디어 천국을 느슨하게 하기도 한다. . .” (하이네)

누군가가 초대권 한 장을 주었다. 내 손에 쥐어 든 초대장은 다름 아닌 음악회 초대권이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가슴 부풀어 시간 맞춰 콘써트장에 들어선다.

정장을 한 많은 인파들이 서로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 쪽에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또 한 쪽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따뜻한 포옹과 함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드디어 안내원들이 콘써트 홀 안으로 안내하고 티켓에 적혀 있는 좌석번호에 자리 잡고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자세로 관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지기만을 기다린다.

프로그램은 독주곡과 협주곡, 관현악 곡 등 다양하게 짜여있다.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는 연주자의 이목구비가 즉 그의 옆 모습, 손가락의 움직임, 제스처 등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옆으로 놓여있다. 물론 오른쪽에 앉은 청중들은 안타깝게도 볼 수 없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청중들에게 더욱 용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연주자가 청중을 향해 있었기에 피아노에 가려 오로지 피아니스트의 머리밖에 볼 수 없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연주자가 무대 위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피아노의 뚜껑을 열고 겉옷자락을 튕기듯이 뒤로 젖히고 피아노 앞에 앉는 동작과 동시에 여성 팬들의 비명은 비명을 지른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 리스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리드(lid, 뚜껑)를 열어 놓고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 긴 금발을 날리며 무대로 걸어 나가는 모습은 청중들을 마력에 사로잡히게 했고, 손에 끼고 있었던 가죽 장갑을 재빨리 벗어던지며 겉옷자락을 튕기듯이 뒤로 젖히고 피아노 앞에 앉는 동작은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쇼맨십에 여성 팬들은 비명을 지르다 못해 기절하기도 했다. 연주가 끝나면 귀부인들은 꽃다발 대신 보석을 던지면서 이 ‘신성한 남자’를 가까이 보려고 무대 위로 돌진했다. 그들은 그가 일부러 피아노 위에 놓고 간 장갑을 가지려고 육탄전을 벌였다.”*

그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움직임이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는 첫 곡을 시작했다. 작품은 <헝가리 광시곡 (Hungarian Rhapsody)> 2번(Lento a capriccio c#)(1847)과 6번(Tempo giusto, Db)(1847)이다. 헝가리인 고유의 기질과 생활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파가니니 대 연습곡 (Grandes étude de Paganini)>(1838)과 <초절기교 연습곡>(É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 중 제 4번 마제파 (Mazeppa)(1851)가 계속된다. 여기서 그는 고난도의 피아노 테크닉을 보여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의 고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가미해서 생기 넘치게 곡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피아노 곡인지 관현악 곡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의 화려하고 다양하며 풍부한 음색과 다이내믹을 가진 곡이다. 그는 가끔씩 건반을 애무하듯, 가끔은 광란의 질주를 하기도 하는 그에게 여성들의 감탄의 감동의 신음소리가 귓전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슈만이 한때 “리스트는 들려야 하지만 역시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만약 무대 뒤에서 연주를 한다면 그의 연주의 너무나 많은 시적인 부분이 상실될 것이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

두 번째 음악이 흐른다. 역시 그는 피아노 곡을 연신 치고 있다. 그 선율은 어디서 들었던 귀에 익은 곡이다. 분명 어디서 들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슈베르트 가곡 <마왕>(Erlkönig) (1815)에서 나오는 극적인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이 역시 피아니스트에게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어려운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어서 베토벤 교향곡 3번을, 베르디의 <리골렛토> 중 널리 알려진 “여자의 마음” (3막)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연주하고 있다.

이러한 편곡 과정에도 약간의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최대한 원곡과 가깝게 하는 것(transription)이 있고 편곡자 자신의 영감과 환타지를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패러프레이즈(paraphrase)가 있는데, 이 베르디 아리아 편곡은 이 패러프레이즈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더 이상 원 작곡가의 작품으로 들리진 않는다. 지금 감상하고 있는 이들 작품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이 연주자의 작품 속으로 잠시나마 착각에 빠진다.

Intermission(중간 휴식 시간)

객석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10여분동안의 휴식을 취하러 자리를 뜬다. 몇몇 사람들은 방금 전반부 연주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앞으로 연주될 작품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있다.

이번 곡은 오케스트라 작품이다. 관현악곡에 제목이 있다. 그렇다면 표제교향곡인가? 아니다. 표제교향곡은 여러 악장이 있는데 이 작품은 단 악장으로 되어 있다. 단 악장 안에 스토리가 전개된다.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가 주제선율과 다양한 화음, 리듬, 악기의 음색 변화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연주자이자 작곡가가 직접 창시했다는 “교향시(Symphonic Poem)”이다. 교향시 13곡 중 오늘 연주할 곡목은 <전주곡 Les Préludes>(1848)이다. 작곡가가 신비주의 시인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의 “시적 명상”(Méditations poétiques)의 분위기가 정신면에서 자신의 음악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라마르틴의 시를 번역하여 그의 교향시의 프로그램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음악가는 이 곡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이란 단지 죽을 때처럼 울리는 엄숙한 소리로 된 미지의 노래를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전주곡은 “젊음과 사랑” (마디 1-108, Andante-안단테 마에스토소)-“초기의 문제들과 갈등” (마디 109-199, Allegro ma non troppo)-“목가적인 즐거움” (마디 200-343, Allegretto Pastorale)-“최후의 투쟁과 승리” (마디 344-419 Allegro mariciale animato)로 진행된다.

여기서 작곡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작곡 기법을 발휘한다. 이 곡이 얼핏 보면 대단히 복잡한 것 같지만 전체 교향시를 유기적으로 만드는 핵심적 동기(motive)가 다양한 주제적 변형들로 이루어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를 “순환적 발전”(cyclic development)이라는 기법이다.

이제 마지막 곡이다. 지휘대 옆으로 까만 그랜드 피아노가 다시 들어와 놓이고 잠시 휴식을 취했던 연주자는 이제 더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에 나온다. 이제 무대 위에는 혼자가 아니다. 자신을 음악적으로 후원해주고 대화할 상대들이 더 많이 생긴 것이다.

그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Eb 장조)(1849)을 연주한다. 예전에 들었던 협주곡과는 사뭇 다르다. 곡은 짧은 오케스트라의 리토르넬로(ritornello) 후 곧바로 그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피아노 건반을 마구 두들겨 댄다. 작품은 악장간의 휴지 없이 지속된다.

그런데 3악장이 아닌 4악장(Allegro maestoto – Quasi adagio – Allegro Vivace – Allegro marziale)이다. 파격적인 진행이다. 보통 협주곡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와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형태인데 이 곡은 독주가가 상대의 말을 채 다 듣지도 않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듯한 자기의 기교를 자랑하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작품은 매우 화려하며 연주자의 현란한 테크닉과 기교를 마음껏 멋 부리는 곡이다.

드디어 모든 연주 프로그램이 끝났다. “앙코르!” “앙코르!” 관객에서 휘파람과 기립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 연주자는 여러 번의 커튼콜을 받고 나서야 다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 음악은 베르디의 <리골렛토> 중 “그리운 이름이여 (Caro nome)”(1막 2장)이다. 물고 그가 편곡한 것이다. 아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그리운 ‘청중이여'”를 외치며 다음의 연주 일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걸어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젊은 여성 팬들은 자기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던지며 환호하고 난리가 났다. 특히 여성 팬들이 연주자를 향해 꽃다발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석을 던지기도 하고 무아경에 빠져 기절하는 사람,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는 사람, 연주자가 피아노 위에 얹어놓았던 장갑을 차지하려고 온몸을 던져 서로 싸우기도 하는 사람들로 정말 가관이다.

이 40대 금발의 중년 남성의 매력 발산은 이것을 충분했다.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수근 대는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가 16살 때 사망한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자들을 조심해’라고 유언했대. 아마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평탄지 않을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닌지. 오늘의 연주회에서 여성 팬들의 반응들을 보면 좀 우려되는 데가 있어.”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잇는다. “글세 말이야, 그가 어느 시골 여행을 하고 있을 때인데, 그의 제자라고 하는 한 여류 피아니스트가 연주회를 연다는 소문이 퍼졌대. 근데 막상 그 자신은 그 피아니스트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대. 근데 그 여인이 이 사람에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대. “유명한 분의 이름을 빌지 않으면 연주회를 열어도 올 사람이 없기에 무례하게도 선생님의 이름을 감히 도용했습니다. 이 연주회를 중지하겠으나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그는 그 여인의 연주를 들어보고 난 후 자세하게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잡아줬대.

그리고 “지금 나는 당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문하생이 되었고 나의 제자로서 연주회를 열어도 좋으니 안심하시오.”라고 말했대.” 근데 그 연주자는 피아노 레슨은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에게 받았고 작곡수업은 이 <아마데우스> 영화에 등장했던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가 그의 스승이래나.”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는 초견 능력도 대단하대. 쇼팽의 연습곡을 초견으로 연주하여 쇼팽을 놀라게 했대. 근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악보가 쇼팽이 손으로 그린 악보였대.” “근데 초견이 뭐야?” 옆에 한 여성이 물어왔다. “그건, 처음 보는 악보를 즉석에서 재현해 내는 것을 말하는 거야. 얼마나 대단해. 악보를 보고 수십 시간을 연습해도 초견 능력을 가진 리스트처럼 연주할 수 없는데 말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연주자는 독주곡들과 마지막 오케스트라와의 협주곡까지 모두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른 오케스트라들은 각각 자신들 앞에 보면대 위의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데 불공평한 처사는 아닌가. 왜 이 연주자만 음악을 다 외어서치고 나머지 연주자들은 악보를 외우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너무해도 너무한 것은 아닌가.

그 많은 음들을 어떻게 다 외워서 그리고 그 많은 청중들 앞에서, 게다가 그 청중들을 감동시키기까지. 그야말로 그는 정말 대단한 암기력과 그에 버금가는 예술성도 함께 지니고 있는 피아노의 거장이다.

그런데 악보를 보고 연주하면 안될까? 안될 이유는 없다. 옆에 페이지 터너(page turner)가 있으면 된다. 연주자는 악보를 보면서 페이지 터너가 때맞춰서 악보를 넘겨주면 되니까. 근데 이 페이지 터너도 깜박 잊고 악보 넘기는 것을 잊거나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기는 불상사가 날 경우는 대형 사고를 치게 되므로 이 페이지 터너도 전문가 못지않은 집중력과 타임감각도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연주 내내 서있을 수 없기에 옆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음악의 진행 속도에 맞춰 서서 악보를 넘겨야 하니까 말이다.

근데 이런 페이지 터너의 수고 없이도 이 사람은 모든 것을 암보로 소화해냈다. 장하다! 그러나 이 연주자의 속셈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음악성과 함께 그의 암보 능력을 보여주려는 하나의 쇼맨십이었던 것을 우리는 몰랐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새로운 용어가 바로 “리사이틀(recital)”이다. 리사이틀의 어원은 불어인 “reciter” (암송하다)에서 나온 것으로 “외운다”는 의미가 있어 그는 이것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 또한 쇼맨십으로 이 모든 것을 해 냈다. 오늘의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프란츠 리스트이다.

오늘 이 음악회는 “리스트의 리사이틀”을 감상한 것이다.

그가 이 모든 작품들을 작곡하였고 자신이 그 작품들을 직접 연주하여 우리들에게 선사하였다. 나는 그의 작곡기법에서 나타난 음악적 모티브와 그의 “순환적 발전 기법”이 어떻게 인생과 연관시켜볼 수 있는 지 감히 생각해 본다.

음악적 모티브는 삶에 있어 변하지 않는 하나의 인생철학이라고 한다면 “순환적 발전기법”은 인생이란 큰 여정에서 반복되는 듯하면서 그렇지만 항상 똑같지만은 아니하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나는 이 리스트의 굉장한 능력(연주자, 편곡자, 작곡가, 쇼맨십을 겸비한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에 감동받으면서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고 집에 돌아간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단방에 해치우는 리스트가 그저 얄미울 정도로 부럽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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