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계보, 수입상과 고물상
    한국의 지식인은 어떻게 생산 유통 소비되는가
        2014년 07월 02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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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이 글을, 코펜하겐 대학의 한국학 전공 사무실에서 씁니다. 시험 감독을 하고, 노르웨이로의 귀국을 앞두고 약간의 시간이 비어 있기에, 요즘 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민들의 일부분이라도 글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요즘 “나눔의 집” 안신권씨가 세종대 박유하 교수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바람에 박유하 교수의 “위안부 문제 해결” 방법이나 그녀의 “한일 화해론” 등이 도마에 올랐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쓴 몇 개의 모독적이다 싶은 표현 (위안부와 일군 군인들의 “동지적 관계” 등등)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보다 깊은 차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박유하 교수를 위시한 한국 지식인 사회의 상당 부분은 – 자본주의나 국민국가 등 우리 존재를 규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가만히 놓아두고 – 하필이면 (한국) 민족주의 “해체” 작업에 몰두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 작업이 세계 체제 핵심부의 학계에서 어떤 식으로 “팔리고”, 그 핵심부 학계의 움직임들과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

    왜 하필이면 박유하 교수가 보인 태도처럼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본인들보다 훨씬 더 “낮은” 계급에 속하는 과거 제국주의적 폭력의 피해자가 이렇게도 손쉬운 이용의 대상이 되는지, 왜 연구자를 자칭하는 “지식인”들이 한일관계 등등 “국가” 사이의 관계 미래에 이렇게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지,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총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 이번주부터 몇 차례에 나누어서 그런 정리를 시도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일단 기초적인 부분부터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칼 만하임 등이 지식인 사회의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이는 매우 상대적인 것입니다. 지식인/연구자 사회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예컨대 재벌기업보다야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까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당 사회의 지배층에게 필요한 이데올리기를 그 지식인 사회 전체가 제공한다는 전제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 주도 개발/재벌 공화국의 경우에는, 지식인 사회는 거의 노골적으로 국가/기업의 영향을 매우 농후하게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자본을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국가가 지식인들을 만들고 지식인들을 주도해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카고대학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본산이라고 불리우는 시카고대학 풍경

    대체로 한국 인문/사회학계를 보면 그 종사자들을 두 가지의 큰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조금 아이로니컬하게 이름 붙이자면 “수입상”과 “고물상”들이죠.

    전자는 대체로 이승만 정권 이후 도미 유학파에 대한 장려책의 결과물입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가서 학위를 따고 해당 국가의 학맥에 하위자로서 편입하고, 그 권위를 등에 업어 금의환향하고, 대학에서 취직하고, 그리고 “선진이론” 등을 바탕으로 해서 “후진 사회”라고 생각하는 한국을 계몽, 주도하는 것이죠.

    “조국 근대화”를 내걸고 한국을 “선진권” 소비재 일부의 공급자, 즉 사실상 일종의 수출 위주의 착취공장으로 만든 역대 정권들이 “선진권”에 종속돼 있는 만큼, 지식계 “수입상”들을 대단히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과를 비롯하여 국가와 자본으로서 가장 핵심적 부문들을 대체로 수입상들이 독점적으로 점거합니다.

    그 원칙의 유일한 예외라면, 바로 박정희 시절에 집중 육성한 “국학”입니다. “국문”, “국사”, “국어” 등 “국”자가 들어가 있는 일부 학과에서는 예외적으로 식민모국들의 학맥과 지금으로서 무관한 일단의 “고물상”들이 취직할 수 있었던 거죠.

    “수입상”들은 대체로 선진권의 “이론”이나 “접근법”, “보편성”의 권위를 내세워 모종의 선교사적, 전도사적, 계몽적 자세를 취하는 반면, “고물상”들은 “우리 위대한 전통”들의 몰락을 한탄하면서 “외국놈”들에 대한 주변부 서민 한풀이의 어떤 대리만족의 창구 역할을 해줍니다. 물론 그들에게 수출형 착취공장을 급진적으로 변혁시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권리야 당연 없습니다.

    그러나 민심 수습 내지 국가의 명분상 중심부의 문화적 권력/권위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도전을 해도 되는 상황이니까 의사 (가짜) 저항민족주의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게 보통입니다.

    “수입상”들이 대개 공세적이지만, “고물상”은 조금 더 수세적입니다. “민족경제” 따위를 더이상 입에서 꺼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고물상”들은 “수입상” 영토 (예컨대 경제학과 등등)에 대한 침범(?)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반대로 최근 같으면 “수입상”들은 “고물상”들의 고유한 영토, 즉 “국”자 학과들에 대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공세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야말로 “박유하 현상”의 매우 중요한 현실적 배경을 이룹니다.

    “고물상”들을 키운 것은 개발주의 국가이었는데, 1997-8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에 국가와 자본으로서는 “고물상”들의 이용가치가 떨어졌습니다.

    한국 대자본들이 경제영토를 넓혀 일종의 아류 제국주의적 대외확장을 하고, 또 한국 금융계 등을 외국재벌들이 파고들어, 또 FTA 등으로 한국에서 종속형/준주변부형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고착되는 상황에서는, “우리 위대한 전통”에 대한 한탄이 풍겨 있는 그 묘한 반외주의적 늬앙스는 한국 재벌 엘리트나 관료 엘리트로서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주의 국가로서 매우 인텐시브한 민족주의적 동원의 분위기가 필요한 만큼 “고물상”들도 쓸모 있었지만, 이제는 각자도생, 각개약진 시대인지라 차라리 “수입상”들의 개인 위주의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적 아편은 이 사회 관리자들의 이해관계를 더 잘 대변하게 된 것이죠.

    그러기에 국가 엘리트의 은근한 긍정하에서 1990년대 말부터 “수입상”들의 신예그룹은 “고물상”들에게 일종의 지식적 전쟁을 선포하고 매우 과감하게 “고물상”의 영토를 침범해 핵심부 위주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시작한 거죠.

    바로 1990년대말에 처음 등장된 “박유하 현상”은, 지식계의 이와 같은 총체적인 상황과 결부시켜서 고찰하는 것은 아마도 생산적일 듯합니다. (계속).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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