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과 자존심
[조선생의 역사이야기] 임진왜란보다 더 부끄러운 이야기
    2012년 06월 26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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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동시에 아픈 신하들의 부모님

임진왜란 때, 지배층은 훈구가 물러가고 사림이 장악하여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소위 붕당정치가 본격화되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직 초기라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수준까지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분화되고 있었는데, 역시 본격화된 건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홀랑 피난을 갑니다. 물론, 명분은 임금을 지키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안전한 곳으로 모시는 것이지요. 왕이 제일 먼저 도망을 가는 것도 쪽팔리는 일입니다마는, 신하들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제대로 된 신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전하,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하십시오. 저희가 남아 한양을 지키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죠?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왕이 한양을 도망치기 전날 밤, 이미 한양의 순라꾼이 돌지를 않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도 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신하들은 왕을 따라 피난을 갔을까요? 신하들은 하필 이 때 동시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아프셨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더 급하다고 사직서들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진왜란이 끝나자 신하들의 부모님이 다 나으셨답니다. 허허… 왕은 평양 거쳐 의주로 도망가고, 신하들은 왕조차 버리고 고향으로 도망갔습니다.

선조 대신 싸운 광해군 이야기

도망치는 왕, 선조는 쪽팔리는 줄은 알고 있었을까요? 예, 알고 있었습니다. 알 수 밖에 없지요. 선조가 피난가는 길에 백성들이 욕하고 돌 던지거든요… 그래서 선조는 왕은 잡히면 안되니까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왕 대신 싸울 상징을 세웁니다. 분조(分朝)라고 합니다. 조정을 나눈다는 말이지요.

이 때 선조가 자기 대신 싸울 세자로 광해군을 지목합니다. 광해군은 정식부인의 아들이 아니고 후궁의 아들이어서,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왕이 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질 않으니, 선조는 싸우겠다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하였고, 이 때 나선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광해군이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었지만, 전쟁 시에는 필요했던 셈이니, 도대체 당시 생각했던 왕이 될 재목의 기준이 얼마나 명분에만 매달리고 있었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그럼 광해군은 열심히 싸웠을까요? 예, 열심히 싸웠습니다. 광해군도 결국 피난을 가지만, 애비 선조처럼 도망만 다닌 게 아니라, 그 지역의 병사와 농민들을 그러모아 나름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인기 1위가 이순신이었고, 광해군은 2위쯤 되었습니다. 선조는 꼴찌였고요.

선조와 서인들의 시기질투

결국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순신은 죽었고, 그 외에는 거의 다 한양에 다시 모였습니다. 참 껄끄러웠겠죠? “전란 중에 별 일 없으셨습니까?” “아, 예, 부모님께서 아프셔서… 댁은 별 일 없으셨습니까?” “아, 저도 부모님께서 아프셔서… 이제 다 나으셨지요?” “아, 예, 그게 그… 예, 다 나으셨습니다.” “전하, 전란 중에 별 일 없으셨습니까?” “음. 압록강이 평화로이 잘 흐르더군. 자네는 뭐했나?” “아, 저 부모님께서 아프셔서… 이제 다 나으셨습니다.” “음, 참 이상도 하지… 우리나라 신하들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동시에 부모님께서 다들 아프시고, 전란이 끝나자 다들 나으시고…” “예, 아, 그게, 그… 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 때문이옵니다.” 거의 지랄하고 자빠지고 있는 거지요.

이 정도 되었으면, 임진왜란 끝나고 나서, 선조는 얼른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서인들은 얼른 북인들에게 권력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광해군아, 미안타. 너 애썼다. 나 솔직히 무서워서 도망갔다. 니가 서자이지만 참 애썼다. 나는 이제 늙었고, 이제 얼른 니가 나라를 잘 다스려라”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광해군을 질투했답니다. “광해군아, 니가 왕 되고 싶어서 쿠데타 모의하고 있다며?” “광해군아, 니가 가져온 이 떡에 독이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이런 식이었습니다.

서인들은 북인들에게 권력을 넘기기는커녕, 임진왜란 중에 북인 의병장들을 모함하여 죽도록까지 하였습니다. 참말로 부끄러운 작자들입니다. 결국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나서도 10년 정도 왕을 더 하다가 죽었고, 왕위는 광해군이 이었습니다.

광해군과 북인의 중립외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니 누구와 같이 정치를 하였겠습니까? 당근 북인들이랑 정치를 하였습니다. 서인과 남인은 밀려났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노선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요? 강홍립은 광해군의 지시를 받고 명나라에 가서는 “폐하, 저희 조선이 왔습니다. 지난번 임진왜란 때 도와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고 왔습니다. 그게 아니어도 명은 아버지 나라요, 저희는 아들 나라니 당연히 와야 합니다. 이제 저희가 제일 앞에 나가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싸우러 나가선 바로 항복했답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후금의 장수에게 항복하면서 말했지요. “우리는 너네랑 싸울 생각없다. 조선은 지금 임진왜란 끝나고 먹고 살기도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러 나온 건 우리가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받은 은혜가 있어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폼만 잡은 거다. 여기 내 부하들 봐라, 못먹어서 비리비리하다. 싸울 생각도 없고, 이렇게 항복한다. 니네 진짜 걱정이 뭔지 안다. 니네가 명나라 공격할 때 우리 조선이 니네 뒤통수칠까봐 염려하는 거 아니냐. 우리는 중국의 주인이 명나라가 되던 청나라가 되던 관계 안한다. 우리 신경쓰지 마라. 우리 니네한테 관심없으니 니네도 우리 귀찮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해서 나쁘게 말하면 양다리를 걸치고 좋게 말하면 슬기롭게 대처해서, 성장하는 여진족의 미움을 사지 않고 조선의 생존을 도모했습니다. 물론 명나라는 나중에 알고서 노발대발했지요. 하지만 당장 청이랑 싸우기도 급해서 어찌하지 못했답니다.

삼학사의 위패를 모신 현절사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광해군이 왕위에 있는 동안 찬밥 신세였던 서인들은 광해군의 양다리 외교와 영창대군의 폐위 및 인목대비 유폐를 근거로 광해군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습니다. 인조는 쿠데타의 주역이 아니고 쿠데타 전날 저녁에 통보받고 오케이하여 졸지에 왕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권력은 신하들, 그 중에서도 서인에게 있었습니다. 서인들의 명분은 동생 죽이고 에미 가두고 명나라 배신하고 오랑캐랑 친하게 지내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네들은? 임진왜란 때 다 도망갔으면서… 그러나 지네들은 다 부모님 병구완하러 효도하러 내려간 것이지요.

인조가 왕위에 오르고 공공연히 친명배금 정책을 펼치니 후금(=>청)의 신경이 날카로와지게 됩니다. 결국 이괄의 난을 핑계로 후금이 쳐들어오지요. 그런데 이 오랑캐란 애들이 쳐들어오면 열심히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딱 평양까지 쳐들어오니 바로 어어으으끙끙하더니 악수를 합니다. 앞으로 오랑캐 나라라고 깔보지 않고, 서로 형제의 나라로 지내기로 다짐을 합니다. 누가 형일까요? 후금이 형입니다. 조선은 동생이구요. 자존심 엄청 상했지요.

그러고 서인들은 후금이 물러가자마자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듯이 또 오랑캐라고 깔보고 형제의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당연히 공공연히 친명배금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청 태종이 직접 쳐들어옵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피난 → 항복

인조와 서인은 싸워보지도 않고 피난을 갑니다. 어디로? 옛날 몽고 쳐들어올 때를 보아도 강화도가 딱이지요. 청나라 여진족들은 말만 잘 타지 배 탈줄 모르니까요. 그러나 청나라 애들 바보 아닙니다. 수도 한양을 공격하기 전에 우선 강화도 가는 길부터 막습니다. 인조는 피난가려고 한양을 이미 나왔는데, 강화도 가는 길이 막혔다는 보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 남한산성에 자리를 잡습니다.

여기서 “45일간 항전”하다가 항복하였다고 교과서에는 나옵니다. 항복하기 전까지 45일간 항전을 했으면 누군가 장렬히 죽었겠군요? 백제가 망하긴 했지만, 계백 장군은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죽었잖아요? 백제의 충신이지요.

병자호란 때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죽은 조선의 충신은 누구일까요? 없습니다. 45일간 “항복하면 안되요되요되요되요”하고 있었습니다. 김상현과 최명길이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치열한 의견대립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투력과 전투의지는 이미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친명배금”이 말로만의 구호가 아니었다면 적어도 싸우다가 죽는 사람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말로만, 그것도 우리끼리 싸우다가 항복한 것입니다.

항복하는 광경은 정말 쪽팔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의 왕인 인조가 청 태조 앞에서 아홉 번 절을 하는 의식이었는데, 제대로 못한다고 다시 하라고 해서,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2월 언 땅에서 쿵쿵 소리가 나도록 아홉 번 절을 하여 항복하였습니다.

환향녀와 호로자식

청나라에 항복하고 나서 조선은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를 섬기기로 약속합니다. 청이 명을 공격할 때 군대도 대주기로 합니다. 온갖 금은보화와 인삼과 처녀들도 바칩니다. 들어들 보셨겠지만, 이 때 인질로 잡혀갔다가 나중에 돈주고 데려왔는데, 배가 불러 있더라… 오랑캐의 자식을 뱄대더라, 가문의 수치다, 자결을 하라고 강요받았던 사람들이 환향녀(還鄕女)입니다. 화냥년의 어원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 환향녀가 낳은 자식을 오랑캐의 자식이라고 해서 호로(胡虜)자식이라고 합니다.

호(胡)는 오랑캐 호로서 북방 오랑캐, 주로 여진족을 일컫는 말이고, 로(虜) 역시 오랑캐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로자식, 호로새끼가 된 겁니다. 애비없는 자식, 알고보니 씨앗이 오랑캐더라… 당연히 싸가지없는 놈을 뜻하는 말이지요.

근데 이게 말이 되나요? 청이 쳐들어 왔을 때는 홀랑 도망가고,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자기 딸, 자기 며느리가 잡혀가는데 바라만보고 있던 사람들이 애 배서 돌아왔다고 자결을 하라고 하는 게 말입니다. 자기들이 항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요? 그럼 딸이나 며느리가 애 밴 것은 좋아서 원해서 애뱄다고 판단한 걸까요? 딸이나 며느리에게 자결을 강요하려면 자기가 먼저 자결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청나라에 항복하는 마당에 싸울 힘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결했다는 사람 하나 보지 못했습니다.

말로만 복수

이 정도 되었으면 정권을 내놓아야지 않을까요? 창피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뻔뻔함은 참으로 극치를 달립니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그래서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다시 고치고 군대를 길렀답니다. 교과서 보세요. 153쪽 맨 아래입니다.

① 효종은 송시열, 이완 등과 함께 남한 산성 및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군대의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왜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을까요? 궁금하지요? 그 다음 장을 남겨보세요.

② 이는 청이 한족의 반발을 누르면서 중국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조선은 청이 금방 망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잠시만 청나라에 빌붙는 척하면서 명나라가 회복되길 바랬지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청은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부패하거나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문화적으로도 더욱 발전하였고 상공업도 대단한 발전을 이룹니다.

조선은 복수를 위하여 군대를 길렀지만, 결국 그 군대는 서인의 권력기반이 되었을 뿐, 정말로 복수를 위한 전쟁은 치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어이없는 코메디에 쓰였습니다. 그 코메디 들어보실래요?

블랙코메디, 나선정벌

조선이 군대 기른다는 사실은 청나라에 다 들어갔습니다. 청은 조선에게 말합니다.

청 : “조선아, 요즘, 니네 군대 기른다며?”
조선 : “아, 예, 그게…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라…”
청 : “거짓말 할 생각 마라, 내가 다 알고 있다. 나한테 복수할려고 기른다며?”
조선 : “아니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다만… 그저…”
청 : “다만, 그저, 뭐? 뭐할려고 군대를 기르나?”
조선 : “아, 그게… 저… 형님 어려우실 때 도와드릴려고… 아, 그것 밖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청 : “그 말이 정말이냐?”
조선 : “아, 그럼요, 당연히 정말이지요…”
청 : “오, 그래? 참, 대견하기도 하지. 사실은 요즘 러시아가 자꾸 나를 귀찮게 해서 말이야…”
조선 : “아, 그러십니까? 저희가 기른 군대를 보내 당장 혼내주겠습니다. 어딥니까? 어디? 말씀만 하십시오.”
청 : “그래, 그래… 가서 혼 좀 내줘라, 내가 요즘은 몸이 좀 무거워졌는지, 왜 이리 만사가 귀찮은지…”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복수하려고 기른 군대를 가지고, 복수는 커녕 청나라를 위하여 러시아와 싸우고 두 번 크게 이겼다고 청나라한테 상장이랑 상품으로 막대기 사탕 열 개씩 받아와서는 자랑하는… 이게 ‘나선정벌’이라는 겁니다.

이런 코메디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선이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조총 부대를 당하고나서야 기릅니다. 그렇게 기른 조총부대를 결국 청나라에 총 한번 못쏘아보고 청나라를 위해서 러시아와 싸우는데 쓰고는, 두 번 크게 이겼다고 자랑하는 게 조선입니다.

조선의 이 지배층들, 임진왜란 때 동시에 부모님이 다 아프신 놈들, 임진왜란 끝나자 동시에 다 부모님 병이 나으신 놈들, 임진왜란 도중에 이순신이랑 의병장들 모함한 놈들, 임진왜란 끝나고도 뻔뻔스레 돌아와 권력을 잡고 있었던 놈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북인에게 넘어가자 광해군 욕하고 영창대군으로 왕을 추대하려고 쿠데타 꾸미던 놈들, 광해군이 영창대군 죽이고 양다리 외교를 하자 도덕과 의리명분을 앞세워 인조를 세우고 쿠데타를 일으킨 놈들, 후금이 처음 평양까지 쳐들어오자 얼른 화해하고 후금을 형님으로 모신다고 약속한 놈들, 그러고 후금이 물러가자 입을 씻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놈들, 그러면서도 군사 한 명 안기른 놈들, 병자호란 터지자 얼른 도망간 놈들, 강화도로 가는 길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입으로만 싸운 놈들, 그러고는 결국 항복한 놈들, 지 딸 며느리 잡혀가는데 멀거니 보기만 한 놈들, 딸 며느리가 애배서 돌아오자 자결하라고 강요했던 놈들, 지들은 자결이나 장렬하게 전사한 사람 한 명도 없던 놈들, 그 쪽팔림 다 당하고나서 복수한다고 조총부대 기른 놈들, 그 조총부대를 결국 청나라에 써먹힌 놈들, 그러고 청나라 칭찬받았다고 자랑하는 놈들…

이건 이중적인 모습을 넘어 거의 정신분열 수준 아니예요? 알량한 자존심은 있으나, 강자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는, 참 불쌍한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조선의 지배층을 이루고 있으니, 양란 이후 조선이 제대로 성장할 리가 없습니다.

조선 양반의 자존심 vs 지금 국사책의 자존심

이 시점에서 선조들만 보지 말고 지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국사책 다시 한 번 잘 보실래요? 154쪽을 보면 북벌운동을 포기한 이후 이야기가 나옵니다.

③ 조선으로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청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였고, 이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교류도 빈번해졌다. 그런가 하면, 18세기 후반에는 청의 발달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었다.
④ 이 무렵, 만주 북부의 헤이룽강 부근의 러시아가 침략해오자, 청은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은 두 차례에 걸쳐 조총부대를 출병시켜 큰 전과를 올렸다. 이를 나선 정벌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대략 느낌이 오나요? ① 복수하려 했는데 못했다. ② 왜냐하면 청의 힘이 너무 쎘기 때문이다. ③은 무슨 말인가요? 복수 대상인 청과 놀아야 했다는 말입니다. 엄청 짜증 낫겠죠? 자존심 엄청 상했겠지요? 왜 청과 놀아야 했을까요? 복수하겠다고 인상만 쓰고 있으면 혼날까봐서, 앞에서 알랑방귀를 뀌어야 했다는 말이지요. 맘에 들지 않지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청이 무식한데 힘만 쎈게 아니라 문화 수준도 높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 청을 보고 배우자는 주장까지 나왔다는 말입니다. 이제 복수는 완전히 물건너갔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글은 ④입니다. 청이 조선에게 러시아를 공격해달래서 조선이 조총부대를 보내 두 번 크게 싸워 이겼다는 말이지요. 마치 청이 러시아를 당할 수 없어서 조선에 도와달라는 것처럼 쓰여져 있습니다. 러시아가 청보다 강한데 조선이 러시아를 이겼다면, 조선이 청보다 훨씬 쎈 거 아니예요? 그럼 청에게 복수를 바로 하지, 왜 복수는 안하고 러시아 공격하는 청을 도왔을까요? 이건 진짜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고 불리한 이야기는 안하는, 정말 유치한 이야기 아닌가요? 여러분, 이런 경우 잘 알지요?

나 : 엄마, 나 놀러나가도 돼?
엄마 : 숙제는 했냐?
나 : 예.
엄마 : 정말 했어?
나 : 예.
엄마 : 다 했어?
나 : 아니오…

거짓말을 한 건 아닙니다. 숙제를 했냐?고 물으니 했다는거지요. 조금이라도 하긴 했으니까… 놀러나가고 싶어서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고 불리한 이야기는 애써 피하는 겁니다. 우리 국사책도 그렇습니다. 어느정도인지 조금만 더 살펴볼까요?

④번 글의 첫 단어 “이 무렵”이라는 구절의 앞뒤를 잘 보세요. 도대체 이 무렵이 언제일까요? 병자호란 직후이겠어요? 아니면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18세기 후반”이겠어요? 글의 배치로 보면 18세기 후반이 맞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맞다면, 내용상 복수가 한참 물건너 간 후에 청의 요청으로 나선정벌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옆에 있는 지도를 잘 보세요. 1차 나선정벌과 2차 나선정벌이 몇 년이라고 되어있나요? 1654년과 1658년입니다. 병자호란은 언제 일어났지요? 1636년입니다. 간단히 말해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20년만에 청의 요청으로 나선정벌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18세기 후반의 이야기까지 다 하고나서 나선정벌 이야기를 넣었을까요? 알겠지요? 맞아요. 쪽팔려서 그런거지요. 사실대로 말하면 어떻게 되나요?

병자호란 때 쪽팔리게 항복했다
=> 복수하려고 군대를 길렀다
=> 그러나 복수는커녕 청의 지시대로 러시아와 싸워 이겼다
=> 청에 대한 복수를 사실상 포기했다…
=> 청으로부터 보고배우자는 주장도 생겼다.

이게 사실이고 진실이지요. 그런데 이걸 교묘하게 바꿉니다.

병자호란 때 쪽팔리게 항복했다
=> 복수하려고 군대를 길렀다
=> 그러나 청이 너무 세서 복수를 못했다.
=> 청에 대한 복수를 사실상 포기했다…
=> 청으로부터 보고배우자는 주장도 생겼다.
=> 러시아와 싸워 이겼다.

거짓말은 없습니다. 다만 배열의 순서를 바꾸고 불리한 얘기를 좀 빼고 단어를 유리하게 쓴 것 뿐입니다. 아마 청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지 않았을 겁니다. 청의 역사책에는 “조선에게 러시아를 공격하라고 명령하였다”라는 식으로 되어있을 겁니다. 굳이 거짓말이 있다면 “이 무렵” 정도일까요? “이 무렵”이라는 단어도 참 애매한 말이라 굳이 넓게 해석하면 병자호란 직후라고도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이 부분은 불리한 것을 빼느라고 글의 흐름이 참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싸워 이겼다는 나선정벌이 영 생뚱맞아요. 사실 나선정벌은 자랑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반성해야 될 일입니다. 그런데 반성은 안하고 자랑을 하려니, 글의 배치와 흐름이 이상하게 된 거지요.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게 지금 우리 국사책의 자존심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쪽팔리는 우리 역사를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이런 식입니다. “아들아, 딸아, 이 애비는, 이 에미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 안해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산다. 너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할 것을 불리한 것 빼고 유리한 것만 말하느라고 이렇게 된 거지요. “나는 학교 다닐 때 백점 맞았는데, 너는 왜 이러느냐?”고요. 언제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백점을 맞았는지 찾아보니,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 할 때 한 번 백점 맞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말을 잘 새겨들어보세요. 거짓말은 안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흐름 상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자식이 따지지요. “엄마 아빠는 백점 맞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러고 살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 양반, 특히 서인들의 자존심 잘 보셨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국사책의 자존심도 잘 보셨지요?

여러분, 저는 자존심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그나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청에 어쩔 수 없이 항복했지만 내 원칙이 ‘친명배금’이면 속으로라도 복수를 준비하는 것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 상황만 보면 오히려 칭찬을 해 줘야 할 일일겁니다.

문제는 그 자존심을 실제로 현실화시키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자신을 자꾸 합리화한다는 것입니다. 콜버그란 사람이 주장한 도덕성 발달단계라는 게 있는데요, 7단계입니다. 이를테면 제일 낮은 1단계는 처벌받기 싫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거구요, 2단계는 보상을 받기 위해 도덕적으로 행동하구요, 3단계는 타인에게 비난받기 싫어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식입니다.

저는 자존심 발달단계 같은 거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1단계는 자존심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남인 겁니다. 아기가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조선이 스스로 동국이라고 하는 식입니다. 2단계는 나만 옳은 겁니다. 남이 하는 건 다 틀린 거고, 내가 하는 건 다 옳거나 어쩔 수 없었거나,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겁니다. 3단계는 남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교묘하게 말을 꾸며서 결국 내가 옳은 겁니다.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양란 전후한 조선의 양반들의 자존심은 2단계쯤 되고, 그 사실을 전하는 지금 우리나라 어른들, 구체적으로 국사책 저자의 수준은 3단계 쯤 되겠습니다. 여러분 경험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수준인가요? 5-6학년 수준인가요?

결국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언행일치라고 봅니다. 지조를 지키려면 딸과 며느리에게만 자결하라고 하지맗고 자신도 목숨을 걸고 싸웠어야 합니다. 자기 말대로 자기가 실천하기 어려우면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말로는 지조를 지키는 게 옳지만 그 지조를 아무도 지킬 수 없게 되면 지조를 지키자는 말은 공중에 붕 뜬 말이 되고 맙니다.

청에게 항복할 거면 애초에 양다리 외교를 한 광해군을 비난 할 일이 못됩니다. 광해군의 양다리 중립외교는 좋게만 보면, 처음부터 광해군이나 북인이 기회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실천해 보니까 양다리를 걸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은 하늘에 있는 도덕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양다리 외교와 지조를 지키는 외교는 처음부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이 아니라 실천해 보아야 옳고 그른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언행일치를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말한 대로 실천하자, 또 하나는 실천해보고 말하자입니다. 중요한 건 말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실천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겁니다. 이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 국사책의 자존심 수준을 좀 높여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한때 전교조 중앙에서 교선실장을 했었고 또 오랫동안 전교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을 맡았다. 지긍은 영림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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