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일만에 유골 없이
    치러진 염호석 열사 장례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열사 약속 지켰다
        2014년 06월 30일 0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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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41일동안 무기한 노숙 농성을 벌인 끝에 지난 28일 결국 삼성 무노조 경영 신화를 깨고 노조로 인정 받아 처음으로 임단협을 맺었다. 노조를 결성한 지 350일만에, 염호석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45일 만이다.

    고 염호석 조합원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 분회장으로 지난 5월 17일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정동진 바다 앞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그는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저희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삼성측과 경찰은 유족의 요청이 있었다며 장례식장을 침탈해 그의 시신을 탈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노조는 염호석 열사의 뜻을 잇기 위해 무기한 노숙농성을 벌인 끝에 76년의 삼성 무노조 경영의 고리를 끊고 끝내 임단협을 쟁취했다. 그야말로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승리였다.

    30일 염호석 노동열사 전국민주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앞에서 9시 발인제를 갖고 이어 10시 영결식을 이어갔다.

    유골이 없던 탓에 조합원들은 빈 유골함과 고인이 생전에 착용했던 신발과 양말, 바지, 모자, 늘 가지고 다녔던 명함, 사원증, 묵주 등을 손에 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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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결식에 참여한 조합원들과 노동자들(이하 사진은 장여진)

    신승철 “열사를 가슴에 묻는다는 것, 열사가 원하던 세상 위해 투쟁하는 것”
    전규석 “삼성 자본, 노조 분열시키려 기회 노릴 것…승리할 때까지 투쟁할 것”

    이날 영결식에서 남문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임금도 받지 못했고, 과로사로 죽어야 했고,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표적 감사, 노조탄압으로 최종범 열사에 이어 염호석 열사까지 잃어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자식의 유골만이라도 돌려달라는 생모의 간절하고도 애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마저 져버린 삼성과 경찰은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 치를 떨게 했다”고 말했다.

    조사에 나선 백기완 선생은 “저는 염호석 동지를 바다에 묻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삼성의 이건희와 박근혜 정권이 합작해 우리 염호석 동지를 죽였다. 뿐만 아니라 염 동지의 마지막 당부도 져버리고 시신까지 탈취했다”며 “오늘 이 자리가 장례식이라면 삼성 재벌과 박근혜 정부를 바다에 묻는 장례식이라고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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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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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선생 조사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거짓과 탐욕의 세상을 깨뜨리고 투쟁으로 우리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저들이 보기에는 작은 성과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본이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투쟁으로 얻어낸 성과물이기 때문에 결코 그 승리가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조합원들을 향해 “열사를 가슴에 묻는다는 것, 그것은 기일 때마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열사가 원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며 “염호석 열사의 뜻을 받아 이 땅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특히 신 위원장은 눈물을 삼키며 “일상으로 돌아가 재벌에 양심을 팔아먹는 노조가 아니라, 자본의 당근에 양심을 굳히지 말고,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야 한다”며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각자 또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세상을 바꾸자는 우리들의 투쟁의 구호가 갈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는 “오늘 열사를 가슴에 묻었지만 재벌의 탐욕을 끝장내는 날까지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힘 있게 투쟁해 나가자”며 “그것이 열사를 편히 가슴에 모시는 길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민변의 권영국 변호사 역시 조사를 통해 “염호석 동지여, 화려하게 높이 치솟은 거대한 삼성 자본의 건물이 아니라, 그 거대 자본을 지키는 경찰의 구역질나는 차별이 아니라, 76년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파열음을 내고 기뻐하는 동지들의 모습,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마침내 임단협을 쟁취한 자랑스러운 동지들, 정동진을 가자고 성화였던 당신의 동지들이 꼭 이겨서 당신을 보러 가겠다던 동지들이 여기 있다”며 “더이상 누구의 희생도 누구의 아픔도 볼 수 없다던 당신의 진정한 마음이 당신의 동료들을 일으켜 세웠다.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이 두려워 방관하고 있던 우리 동시대인들을 삼성 본관 앞으로 불러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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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권영국 변호사 조사

    권 변호사는 “경찰의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시신을 탈취당하고 유골을 탈취 당했을 때, 삼성 자본과 박근혜 정권이 결탁한 패륜의 현장을 목격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참담했나”라며 “산 사람의 소원도 아니고 죽은 사람의 유언조차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죄책과 미안함으로 당신의 동료들이 41일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투쟁해 마침내 삼성의 입으로 당신의 죽음을 말하게 만들었다. 애도한다고 말했다. 노조를 인정한다고 했다. 마침내 우리가 삼성 무노조 신화에 균열을 만들고야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간다. 비록 당신의 유골은 탈취 당했지만 당신의 진정한 마음을 만나러 간다”며 “동료들을, 그리고 고단한 우리 노동 사회를 끝까지 지켜달라. 이제 먼길 가벼이 편히 가시라. 아니,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은 “염호석 동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평생 안락한 삶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젊은 노동자가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는 열사가 염원했듯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며 “결국 우리 누구도 밟아보지 못했던 삼성 자본 앞에 금속노조 깃발을 꽂고, 민주노조를 사수했다. 임단협을 쟁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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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조사

    그는 조합들을 향해 “그러나 우리는 이 승리가 완성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며 “삼성재벌은 열사가 목숨 바쳐 지킨 노조를 호시탐탐 엿 볼 것이다. 경쟁과 교육의 이름으로 동지들의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고 회유와 억압으로 민주노조를 핍박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염호석 동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하라고 했다”며 “승리의 그날까지 투쟁하겠다. 하지만 금속노조에게는 진정한 승리는 아직 멀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 나아가 이 땅의 모든 금속노노동자들을 금속노조 깃발 아래 모을 때까지 진군해 나갈 것이다. 결국 노동해방이라는 것을, 너나 할 것이 평등한 세상을 기필코 쟁취하겠다”고 소리 높였다.

    염호석 열사 생모 “우리 아들, 가는 길 한 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왜…”
    곽형수 “호석이의 승리하라는 명령 받들어 우리가 해냈다”

    염호석 열사의 생모인 김정순 여사는 “마음에 묻었던 내 아들을 이제 영원히 묻어버리게 됐다”며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한 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경찰이 왜 그랬는지 정말 분통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석이 떠나는 길, 훨훨 날아가게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호상인사에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행은 “호석이는 우리에게 승리하라고 명령했다. 흩어지지 말라고 명령했다. 흔들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이 그 명령 받들어 흔들리지 않고 멈추지 않고 이곳까지 달려왔다”며 “호석이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문했고, 우리가 해냈다. 76년 무노조라는 삼성에서 임단협을 쟁취해냈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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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행의 호상 인사

    그는 “이 승리에 먼저가신 3명의 조합원이 있고, 여기에는 남아있는 모든 조합원이 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삼성이 노동조합 앞에 무릎을 꿇은 날이다”라며 “호석아! 삼성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 싸움이 끝이 아니다. 이 싸움 이제 시작한다. 우리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철저히 무너트릴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송경동 “내가 가져올 것은 추도시가 아니라 분노였다”

    추도시를 맡은 송경동 시인은 시 낭송에 앞서 “딱 한 번 제 마음의 시를 열사에게 드리고 시 낭송을 시작하겠다”며 경찰이 차량 통행을 위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집어 들어 던지기 시작했다. 경찰 역시 제지하지 않아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모두 제거한 뒤 영결식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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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동 시인의 조사

    송 시인은 다시 무대에 올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경찰이 시신을 탈취하던 상황 앞에서 도저히 ‘이 선을 넘지 말라’는 경찰 폴리스라인 속에서 열사의 추도시를 읽을 수 없었다”며 “제가 가져와야 했던 것은 추모시가 아니라 이 분노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약 700여명의 참석자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과 소지품을 들고 삼성전자 본관을 한 바퀴 빙 둘러 행진 했다. 다시 영결식 장소로 돌아온 삼성 조합원들은 삼성본관 사옥을 향해 “삼성전자는 들으라, 삼성은 들으라! 더 이상, 노동자를 착취하지 말라. 노조탄압을 하지 말라. 노동자를 사람답게 대접하라”고 외쳤다.

    약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영결식을 끝으로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조합원들과 참석자들은 모두 정동진으로 향했다. 정동진에서 노제를 진행한 뒤 양산에서도 한 차례 더 노제를 진행한 뒤 양산시 솥발산 열사묘역에서 하관식을 진행한다.

    우리들의 정동진
    – 염호석 열사 열전에 / 송경동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정동진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정동진으로 가는 차비는 얼마인가요

    힘겹게 장바구니를 들고가는 임산부에게
    바삐 출발하려는 화물차 운전수에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 회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동자들에게도 밝은 해가 떠오른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자본가가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그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길거리 노점상에게 서울역 노숙자께
    무료하게 가게 앞에 앉아 있는 상점 주인에게
    표를 팔고 있는 철도원에게 물어보고 싶다
    혹시 혼자 그곳을 찾아가겠다는 사람을 못 봤나요
    젋고 씩씩한 사람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그리워하며 외로움 잘 타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늘 빛이 그리웠던 사람이었는데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어서
    자신을 바쳐서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혼자 쓸쓸히 길 떠나던 한 사람을 보셨나요

    정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이렇게 가만히만 있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건지
    언제까지 이렇게 착하게 대기하고만 있으면
    누군가 반드시 구해주러 오는 건지

    오늘 당신께 가서 물어봐야겠다
    왜 바보같이 그랬는지
    왜 우릴 두고 먼저 갔는지
    왜 우릴 위해 당신이 갔는지
    그렇게 좋은 곳이면 함께 가자 해야지
    왜 혼자만 갔는지

    그런데 정말 그 정동진은 어디에 있나요
    노동자민중의 신새벽이 떠오르는 곳
    거짓된 역사를 찢고 새로운 역사가 떠오르는 곳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지 않고
    만인이 만인의 행복이 되는 곳
    누구도 누구의 위에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차별하지 않는 곳

    그런 정동진을 아시나요
    그런 최종범을 염호석을 아시나요
    삼성 무노조 76년의 벽을 깬
    그런 기쁨을 슬픔을 아시나요
    그런 노동자민중의 새날 정동진 푸른 바다에
    자신의 유해를 남김없이 후회없이 뿌려달라고 했던 사람을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을 아시나요
    최종범 염호석 당신들이 간 그 아름다운 길을
    눈물겨운 길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오늘 다시 떠오르는 이 뜨거운
    결의를 분노를 약속을 아시나요

    우리들의 어제는 어둡고 힘겨웠지만
    우리들의 어제는 외롭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맑은 날
    우리 모두가 천 개의 뜨거운 해가 되어
    만 개의 천 만 개의 밝은 해가 되어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마지막 날을 만나러 가는 날
    당신의 영원원 날을 만너러 가는 날
    사랑합니다. 동지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의 정동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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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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