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긴 비극
    [책소개] 『총을 든 아이들, 소년병』(미리엄 데노브/ 시대의창)
        2014년 06월 28일 06: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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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전쟁에 동원된 소년병의 수는 총 2만9616명으로 집계됐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도 있겠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강제 징집된 경우도 상당수다. 이 중 1만200명은 낙동강 전투 최전선에 투입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학도병은 7개월 만에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지만 소년병들은 길게는 3년 이상 만기복무하며 학업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소년병중앙회’가 조사한 결과 소년병 생존자는 6500명에 이르지만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한 사람만 5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내일신문, 2013년 6월 25일 자)

    반면, 총을 들지 않은 소녀 병사의 이야기는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중국 정부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및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에 따르면, 국가총동원법으로 강제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는 모두 40만 명으로 이 가운데 조선인이 절반에 가까운 16만 명에 이른다.

    14~19세 소녀들이 주였으며 16, 17세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한 여성은 열흘 동안 178번 인권을 유린당했다.

    이처럼 소년 병사, 소녀 병사 이야기는 전쟁을 겪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견되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묻히기 십상인 이들의 아픔을 잊지 않아야겠다.

    전쟁이 아이들에게 남긴 비극

    폭력과 무력충돌이 전 세계 수많은 아동의 일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아동 수백만 명이 전쟁의 잔학상을 목격해야 했거니와 상당수는 적극 가담자로서 분쟁에 휘말려 있다. 11년간 내전을 겪은 시에라리온이야말로 이러한 상황을 가장 똑똑히 보여준다.

    미리엄 데노브는 이 책에서 시에라리온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의 전직 소년병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과 소집단 토론을 실시하여 소년병이 폭력과 무력충돌의 복잡한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또한 아동이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종전 뒤에 자신의 삶과 자아상을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이들이 마주치는 어려움을 파헤친다.

    소년병

    이 책에서 시에라리온 소년병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려주며 언론과 대중 담론의 편협하고 제한된 이미지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 책은 우선, 소년병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전 세계 소년병 실태를 알아보고,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을 소년병 연구에 끌어왔음을 설명한다(1장).

    그런 다음 시에라리온의 무력충돌 역사(2장), 시에라리온 RUF에 몸담은 아동 76명(소년 36명, 소녀 40명)을 표본으로 삼아 2년 넘게 진행한 심층 면접과 집단 토론이라는 방법론(3장)을 소개한다.

    4장부터는 소년병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곳곳에 그대로 실려 있다. ‘소년병 만들기’부터 ‘소년병 되돌리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끌어온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은 절묘하게 아이들의 목소리와 얽히면서 ‘소년병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찌 됐든 책장을 덮고 나면 그들 목소리가 한참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분쟁이 있는 곳 어디나 소년병이 있다

    저자는 2007년 ‘파리 원칙The Paris Principles’에 따라 ‘소년병’을 정의한다. “아동, 소년 소녀를 포함하나 이에 국한되지 않는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여하한 능력의 군대나 무장단체에서 전투병, 요리사, 운반병, 전령, 첩보병, 성적(性的)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거나 과거에 모집되거나 이용된 적이 있는 자. 이 정의는 적대 행위에 직접 가담하고 있거나 가담한 적이 있는 아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년병 징집 금지 연대’가 2004년 발표한 《글로벌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 소년병은 25만 명에 이른다. 동원 건수가 최근 줄기는 했지만 징집을 중단한 게 아니라 분쟁이 줄었기 때문이다.

    시에라리온이 위치한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40년간 내전을 치른 콜롬비아(남미), 보스니아나 코소보 등 내전과 분쟁을 겪은 유럽 국가, 무장단체가 있는 아시아 국가에도 여전히 소년병이 존재한다. 분쟁이 있는 곳 어디나 소년병이 있다.

    이러한 소년병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들어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대개 위험인물과 무법자로 그려지거나 연약하고 불쌍한 피해자로 그려지기 일쑤다. 때로는 영웅으로 미화되어 AK-47 소총을 든 소년병이 패션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세계화와 변화된 현대 전쟁의 의미

    현대의 전쟁은 탈정치적이며 초국적이고 약탈의 형태를 띤다. 민간인을 직접 겨냥하기 때문에 대량 학살을 낳기도 한다.

    또 현대전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보다는 내전의 성격이 짙다. 왜냐하면 정당성과 권위를 잃은 실패한 국가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대규모 이주와 살인이 만연할 수 있는 토양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내전이 장기화될수록 빈곤이 심화되고 갈 곳이 없는 청년과 젊은이 들이 무장단체와 군대를 기웃거리게 된다. 세계화는 준군사집단의 통합, 연결, 공유를 가속화시켰고 무기가 국경을 넘나들게 했으며 동시에 소년병의 확산을 낳았다.

    시에라리온은 오랜 기간 노예무역으로 점철된 폭력의 역사를 밟아왔다. 뿌리 깊은 식민지적 억압은 다이아몬드 채굴을 둘러싼 영국과 족장의 이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통치자의 사적 지배를 뜻하는 ‘그림자 국가’가 제도화되었다. 시에라리온은 전통적인 사회체제가 주변부로 밀려나고 외국 기업과 탐욕스러운 지배 엘리트가 경제를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세계 체제에 편입되었다.

    게다가 불평등이 극심하고 젊은이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자 권력을 박탈당하고 환멸을 느끼는 소외된 청년층이 점점 늘었다.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가지려는 군벌이 만난 곳, 시에라리온

    반군 RUF의 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 ‘배제된 지식인 집단’ 그리고 ‘전인민회의당(APC) 치하의 부패와 농촌 소외에 반감을 품고 치밀하게 결성한 조직’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북부에 자리 잡은 APC 정권에 대한 (특히 청년층의) 환멸과 실망이 커져가는 틈을 타 시에라리온군 하사 출신의 포다이 상코가 라이베리아 군벌 찰스 테일러의 후원 하에 반군 RUF를 창설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탓에 간신히 읽고 쓸 줄 안 상코는 ‘룸펜’ 청년 문화에 깊이 빠져 있었고, 쿠데타에 연루돼 복역하고 나온 뒤에는 APC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라 있었다.

    상코가 가나에서 군사훈련을 받을 때 만난 라이베리아 전국애국전선(NPFL)의 찰스 테일러는 시에라리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다. 테일러는 RUF에 자금을 대고 훈련과 조언을 제공했으며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 수출 길을 열어주었다. 다이아몬드 때문에 내전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전이 격화된 것은 틀림없이 다이아몬드 때문이다.

    실제로 RUF는 여러 광산을 장악하고 민간인과 소년병을 동원해 채굴한 다이아몬드 불법 판매로 1년에 3000만 달러에서 1억 2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자유, 정의, 민주주의를 모든 시에라리온 국민에게”라는 희망찬 구호를 내세운 RUF의 활동은 ‘국민을 해방’하기보다는 농촌과 도시를 아우르는 무차별적인 약탈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납치를 비롯한 갖은 수단을 동원한 모병이 시작되었다.

    소년병 만들기와 되돌리기

    최근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여고생 200명을 납치해 파란을 일으켰는데, RUF 소년병도 대개 납치된 경우였다.(‘소년병 만들기’) 그들은 RUF 캠프 안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가사노동을 나누는 등 집단생활을 했다. 같은 문신을 새겨 소속감과 연대감을 키웠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반군이 반소매 혹은 긴소매로 민간인의 팔을 무차별적으로 절단하듯이, 소년병도 난폭할수록 보상이 많이 따르고 진급 등 사회적 지위를 약속받았다.(‘RUF로 살아가기’)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시에라리온 반군의 병사가 되는 것만큼이나 내전이 끝난 뒤에 무장단체에서 벗어나는 것(‘소년병 되돌리기’) 역시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과정이었다.

    민간인으로 홀로 선다는 것은 오랫동안 몸담아 익숙했던 삶(무감각, 폭력, 잔인함, 비인간성, 테러, 연대, 단결 등)과의 단절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리를 확립하고 재구성하는 일을 홀로 해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이가 어린 소년병의 경우 RUF를 사회이자 가족이자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 사례도 없지 않다.

    시에라리온에서는 앙골라, 모잠비크, 수단 등 다양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무장된 아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DDR 사업(무장해제disarmament·동원해제demobilization·사회복귀reintegration)을 운영했다. 무기를 반납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이 실효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소녀들은 참여율이 낮았으며 낙인과 처벌이 두려워 참여를 거부한 소년병들도 많았다고 한다.

    ‘행위와 사회구조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착목한 저자는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을 렌즈로 삼았다. 소년 소녀가 시에라리온 반군의 병사가 되고(‘만들기’) 내전이 끝난 뒤에 무장단체서 벗어나는(‘되돌리기’) 과정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매우 유용한 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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