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휘자는 어떻게
    음악계의 독재자가 되었나
    [책소개] 『거장 신화』(노먼 레브레히트/ 팬타그램)
        2014년 06월 28일 06: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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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 신화>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위기를 120년에 걸친 지휘계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쇠락의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작곡가 궁전의 겸손한 하인이었던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인으로 신분이 상승했는지, 어떻게 음악계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오늘날의 마에스트로(거장) 이미지를 만들어 냈는지,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어떻게 자신들의 종족이 멸종으로 가는 길을 닦아 왔는지, 그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세밀하게 추적하고 분석한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클래식 음악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이는 대중의 외면, 성장이 저지당한 젊은 지휘자들, 지휘 전통의 와해,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 생존이 급급한 오케스트라, 음악회 관객과 음반 판매의 감소, 정치권력에 좌우되는 지휘 권력의 약화 등에서 알 수 있다.

    <거장 신화>는 이 같은 클래식 음악의 쇠퇴를 한 세기에 걸친 지휘자의 절대 권력화 추구, 그 결과로 도래한 지휘계의 위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거장신화

    권력과 물질에 탐닉한 제트족 거장들, 음악계의 양극화

    저자는 위대한 지휘자에 대한 숭배 즉 ‘마에스트로 현상’이 각 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 및 20세기에 급격하게 성장한 거대 음악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음반 산업의 팽창이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지휘자들 개인의 권력욕, 우상을 바라는 대중의 심리와 결합하여 권력과 돈, 명예를 독식하며 ‘제트족 지휘자’라 불리는 소수의 스타 지휘자들을 양산하였고, 이것의 위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나아가 ‘위대한 지휘자를 지휘하는 음악계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권력’ 로널드 윌포드(콜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의 회장) 같은 대형 에이전트의 등장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들이 유명 지휘자를 독식하고, 연주자들의 계약과 활동을 관리하며 클래식 음악계를 주무르는 현재의 상황을 깊은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로 인해 음악가들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새로운 지휘자의 등장을 원천 봉쇄하고 있으며 연주의 질이 표준화되고 천박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클래식의 위기와 지휘 권력의 상관관계를 분석

    이 책의 목적은 지휘자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또한 위대한 역대 지휘자들의 테크닉과 해석을 엄밀하게 분석한 예술 비평서도 아니며 역사적인 지휘의 ‘거물’들에 대한 또 하나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아니다.

    <거장 신화>는 지휘의 메커니즘을 파고들어서 지휘라는 무한히 매혹적인 전문 분야의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경제적 역할을 규명한다. 이를 통해 지휘자 권력의 기원과 본질, 오늘날 클래식의 위기와 지휘계의 쇠퇴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 것이다.

    20세기는 분명 지휘자의 시대였다. 이런 점에서 레브레히트가 지휘의 역사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위기를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크다.

    저자는 방대한 조사와 뛰어난 문체를 통해 ‘신비화된 지휘’의 역사를 재미있고 명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의 종말이 회자되고 있는 오늘날 이 같은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클래식 음악이 대중들 속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고 있는 논쟁적인 질문과 결론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레브레히트가 지휘의 역사를 둘러싼 사회·정치·경제적 속살을 훌륭하게 드러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음악 책

    <거장 신화>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이야기될 정도로 초판 출간 당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평론계에서 관례적으로 옹호되어 왔던 음악 거장들의 치부와 권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비판으로 가득한 밀도 높은 문장, 위트 넘치는 통렬한 폭로로 클래식 음악과 120년 지휘의 역사를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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