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올린의 명장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클래식 음악 이야기] 연주자의 혼과 악기의 혼이 어울려야
        2014년 06월 27일 04:1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말. 말. 말.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과르네리는 강간해야 한다.”(아이작 스턴)

    “바이올린이 사람의 섬세한 마음까지 전해줄 수 있는 악기이다.” (하이네)

     보에티우스(Anit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475-525)는 <음악의 원리 De Institutione Musica>에서 음악을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 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악기의 음악(musica instrumentalis)으로 구분했다.

    “우주의 음악”이란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를 말하며, “인간의 음악”이란 소우주인 인간의 정신과 육체 간의 조화를 뜻하며, 마지막으로 “악기의 음악”은 인간이 직접 연주하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언급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음악에 대한 이러한 정신은 르네상스의 인본정신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악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즉흥곡, 춤모음곡, 변주곡, 협주곡이 등장하면서 바로크시대를 맞이한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감정을 객관적으로 분류하여 특정 감정은 특정 음형과 연관되며(음형이론) 한 작품의 특정선율과 화성이 특정 감정과 연관된다는 감정이론까지 생겨났다.

    특히 바로크 예술가는 슬픔, 종교적 황홀경, 기쁨, 열정, 절망과 같은 감정 상태에 대해 강한 관심을 보였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감정을 음악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시대가 바로크시대이다.

    이 시대에 드디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조성(調性)이란 것이 생겨났다. 즉 장조로 된 음악은 우리를 즐겁게 하거나 기쁘게 하며, 단조는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음악의 굉장한 힘이 느껴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렇게 우리의 감정을 자극시키며 감동을 주는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는 그의 즉흥성을 발휘하여 다양한 장식음을 넣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사실 대부분의 바로크시대의 악보에는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템포, 박자, 다이내믹, 운지표 등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유에는 연주자의 재량과 해석에 맡기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오직 6개의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정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놀라움, 사랑, 증오, 희망, 기쁨, 슬픔이다. 다른 모든 감정들은 이 여섯 가지 중 몇 가지가 결합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철학자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바로크 음악을 “화성은 혼란스럽고 전조와 불협화음으로 가득하며, 선율은 거칠고 부자연스러우며, 억양은 어색하고, 진행은 제한적이다.”라고 했다.

    음악이란 인간의 감정 즉 내적인 상황, 분위기를 모방하여 표현하는 것만은 아니다. 음악은 감정 이외에도 천둥,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종 소리 등의 다른 음악 외적인 요소를 음악적으로 재현하는 능력이 있다. 음악의 모방미학관이 이렇게 엿보여지는 시기 역시 바로크 시대이다.

    이 즈음에 등장한 악기가 바로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이다. 이러한 자연의 모방, 인간의 내면을 모방하여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게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가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였던 것이다.

    스트-과리

    스트라디바리우스(위)와 과르네리(아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바로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1505-1577)가 그의 제작 기술을 아들 안토니오 아마티(Antonio Amatio, 1540-1607)와 지롤라모 아마티(Girolamo Amati, 1550-1630)에게 전수하고 지롤라모 아마티의 아들인 니콜라 아마티(Nicolò AMati, 1596-1684)에 이르러 그의 제작 기술이 절정에 다다른 것과 연결된다.

    니콜라 아마티의 제자들이 바로 오늘날 명기 제작자인 안드레아 과르네리(Bartolomeo G. Guarneri, 1698~1744)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인 것이다.

    이러한 명기들의 탄생과 더불어 당대 수많은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이 현악기를 위한 곡들을 작곡하고 연주했다.

    “음악의 아버지”인 J.S. 바흐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그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Sonatas and Partitas for Solo violin, BWV 1001-6)(1720)는 춤곡 중심으로 된 무곡으로 반주가 없는, 오로지 바이올린의 고유의 음색만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곡이다.

    바로크 협주곡의 대가이자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사계>(1725)는 독주 협주곡으로 다양한 자연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봄이 기쁨에 가득하다. 새들은 행복하며, 냇물은 흐르고 바람에 이끌려, 달콤하게 속삭이며, 흐른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아오고, 천둥과 번개가 봄이 왔음을 알린다…)

    동시에 전 악장을 거쳐 독주 악기와 관현악 앙상블의 음색의 대조를 보이는 리토르넬로 (ritornello)(1악장과 3악장)와 서정적인 아리아(2악장)이 전체 작품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호했다고 한다.

    “음악은 감정의 표현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인간 내면의 감정을 호소한다는 점이 바로크시대와 낭만시대의 공통점이다. E.T.A. 호프만은 “…음악이 모든 예술들 중 가장 낭만주의적”이라고 했다.

    낭만시대의 음악은 모든 면(음향, 색채, 음색등)에서 확장 발전되었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천재’로서 추대되었고 개인의 주관성이 강조되었던 시기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음악가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 많은 자신들의 기교를 만들고 대규모 청중들을 확보하여 공공 음악회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거장(virtuo)인 파가니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과르네리 델 제수 캐논)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작품의 특성에 맞게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파격적이고 현란한 테크닉과 기교를 그의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24 caprice for solo violin, op. 1)(1802-1817)에서 격렬하게 느낄 수 있다.

    “집시의 노래”라 불리 우는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의 <지고이네르바이젠 Zigeunerweisen, op. 20>(1878)은 소위 집시의 삶의 애환과 기쁨을 담은 곡이다. 그런데 작품에 내재해 있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그 당시에는 완전히 그려 낼 수 있는 연주자가 없었다고 한다.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는 사라사테는 두 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명연주자는 명기를 알아보는가보다.

    어느 날 파가니니가 외형이 똑같은 “가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무대에 올라와 연주를 끝냈다. 예전과 같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그는 바이올린을 내팽개쳐 밟아 부숴버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는 “가짜” 바이올린으로 훌륭하게 연주를 한 파가니니의 연주 실력도 대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의 환호는 역설적으로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위력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밝혀진 몇몇 연구결과에서 이 명기들은 소빙하기(Little Ice Age, 1645-1715) 때의 한파에 성장이 느려진 나무의 촘촘한 나이테로 인해 밀도가 높아진 나무결로 만들어져 오랜 기간 동안 그 소리가 변하지 않았고 악기에 사용된 목재들이 산화광물질에 포함된 액체에 삶겨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 나아가 악기의 울림통에 있는 서로 약간 어긋나 있는 f 형 역시 명기만의 비밀이라고 한다.

    파가니니가 자신의 바이올린 기법을 비밀리에 붙여 그의 테크닉과 기교가 전수되지 않은 것처럼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의 제작기법 역시 더 이상 전수되지 않고 있어 많은 연구자들이 이 명기들의 복제술과 소리를 복원하는 데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현존하는 명기는 이제 540여개가 남아있다고 한다.

    1977년의 실험에서는 복제술이 일정하게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실험은 BBC 3 라디오에서 행해졌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2001)과 핀커스 주커만(Pinchas Jukerman,1948- ), 그리고 바이올린 전문가 찰스 베어(Charles Beare)가 참석했으며 자신들의 소리 테스트만을 기다리고 있는 네 대의 바이올린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델 제수, 프랑스 유명 복제 카피스트 뷔욤(Jean-.Baptiste Vuillaume, 1798-1875))(1846), 영국제 바이올린(1976)이었다.

    결과는 아무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의미는 뛰어난 복제술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명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심리적 위축에서 마음껏 켜대지를 못했을 것이다. 반면 싸구려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은 마음대로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었으리라.

    아무튼 베일에 싸인 명기에서 나오는 소리의 비밀은 화학적, 물리적, 과학적 연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연주자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마다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듯이 각 악기도 그것이 탄생되는 순간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연주자들은 이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각 악기의 개성과 자신의 개성에 맞는 특정 악기를 선호하는 연주자들도 있다. 살바토레 아카르도(Salvatore Accardo, 1941- ),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1904-1992), 아이작 펄먼(Itzhak Perlman, 1945- ),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1947- )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호했고,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1987),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등은 과르네리를 선호했다고 한다.

    바로크 음악과 낭만 음악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위대한 이 아름다운 악기가 바로 이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이다.

    보에티우스의 음악에 대한 거대한 사상이 이 작은 악기들에 내재해 있다니, 그리고 그 작은 악기가 품고 있는 소리를 우리 인간이 끌어낸다는 것 또한 경이롭지 아니한가. 멀리 고대 그리스 정신을 되살려준 장본인이 바로 이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이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말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탐나는 악기인가. 그 정도의 악기라면 소리를 끌어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울고 싶을 때 땅바닥에 탁 퍼져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하고 겸손한 농부라고 할 수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여성적이며 과르네리는 남성적이라고 한다. 현재 제노바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파가니니의 “과르네리 델 제수”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연주할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 우승자는 그 악기를 받아드는 순간 아마도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전율을 느낄 것이다.

    연주자의 혼과 악기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혼과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그때야 비로소 위대한 음악이 탄생된다. 물론 작곡가의 혼도 불러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말이다. 공기에 너무나 많은 혼들이 떠돌아다닌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