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옷차림을
    트집잡는 비열한 시대
    [기고] 박유하 논란에 대하여
        2014년 06월 27일 10:3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르게 되면 으레 저질스런 주장이 그림자처럼 뒤따르곤 한다. 바로 “네 옷차림이 문제”라고, 점잖게 훈계하는 인생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필자는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잘못했을 수도 있다? 어림 없는 소리. 거기에 무슨 옳고 그름이 있겠는가. 오로지 범죄자와 피해자가 있을 뿐이다. 이런 사건은 범죄자를 처벌하고 상처를 치유함과 더불어 2차 가해가 오지 않도록 피해자를 잘 보살피는 데에 전념하면 되는 일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 말을 늘어놓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 때문이다.

    박선아 소송 사건이라고 하면 좋을지 아니면 박유하 소송 사건이라 하면 좋을지 아니면 나눔의집 고발 건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라는 학술서적을 둘러싸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논쟁 말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 서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알다시피 좀 오래 전의 일이다.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비교적 진지한 서평의 대상이었는데, 이는 연구 내용의 학술적, 사회적 가치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분위기는 매우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연구자로서 박유하의 의견과 주장이 사법적 대상, 범죄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양대 박선아 교수와 나눔의 집은 해당 도서를 아예 금지시키려 하고 있으며 연구자로서의 그녀의 표현을 범죄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9명은 서울동부지검에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고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판매금지를 법원에 요구했다.

    필자는 현실적으로 세상의 모든 발언과 주장이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 분위기는 뭔가 비정상적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구호 아래 사실은 그나마 정상적이었던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 지금 이 논란속에도 그와 같은 야만과 천박함이 재현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박유하를 소송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되자 갑자기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박유하의 연구에 흠결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개중에는 진지하게 읽어볼 만한 것들이 아예 없진 않았으나 대체로는 함량미달의 것이 많았으며 다분히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비유와 추정들이 난무했다. 학자답지 못한 글들이 횡행했으며 기껏해야 양비론의 축에나 겨우 끼워줄 수 있는 수준의 글들이 많았다. 연구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다가 말미에는 ‘아직 책을 읽지는 않았다’는 비정상적 고백도 속출했다.

    난세가 오면 영웅이 만들어지기 전에 기회주의자들이 먼저 속살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사회적 금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지한 연구에 대해 법적 소송이 들어가고 있는 와중에, 연구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 이들에 의해 일방적인 매도와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판국에서 “네 옷차림이 문제”라는 저열한 언사와 하등 다를바 없는 주장들이 지식인들의 혀놀림으로 펼쳐진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맥락이라는 단어를 모르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이야기가 균형잡힌 주장이 아니라 2차 가해에 다름아니란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박유하를 향해 쏟아지는 사회적 폭력 앞에 갑자기 ‘너도 원인 제공자’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것이 가능한 그 심리상태가 매우 궁금하다.

    과거 한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어느 펑크밴드가 나와 생방송 중 바지를 홀딱 벗어내린 적이 있다. 지금 이상 가는 사회적 논란이 이어졌고 그들은 결국 경찰서 신세까지 지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클럽 검열이 운위되는 등 인디씬은 난세에 빠져들었고 카메라는 평론가들을 향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평론가들 중에는 손해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그들을 옹호했던 ‘용감한’ 동료들도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서 약싹빠르게 동료의 불행에 올라타 자신의 실속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는 착한 노출과 나쁜 노출이 있는데 이들은 나쁜 노출이므로 처벌이 정당하다, 뭐 이런 식의 말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 놓으면서 말이다. 지금 박유하의 글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받는 이들은 이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박유하의 연구가 나쁜 연구인가. 처벌당해 마땅한 연구인가. 사회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연구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탐구하는 연구자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를 어서 되찾기 바란다.

    박유하와 자신의 사상이 어떻게 다른가를 애써 증명하는데 발 벗고 나설 것이 아니라 학문적 오해를 풀어주고 할머니들과의 소통과 이해를 돕는 일에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이것이 사회적 논란으로 커다랗게 증폭된 것은 박유하 연구의 학문적 엄밀함 여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 당신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당신들 역시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은 비극이라고 덧붙이지 않았는가.

    다시 한번 말해두건대, 제발 “네 옷차림이 문제”라는 방식으로 이 국면을 호도하는 주장은 당장 거두어주길 바란다. 맥락을 상실한 뜬금없는 비판은 2차 가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필자소개
    전주대 연구교수, 라디오관악FM 이사 머리는 좌익, 마음은 보수, 동네 음악인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