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긴급 증언대회
    “과연 우리에게 국가가 존재하나”
        2014년 06월 26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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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슴푸레한 새벽, 경찰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컴컴한 구덩이 안에서 몸을 떨었다. 구덩이를 덮고 있던 천이 커터칼에 의해 찢겨져 나갔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칼들이 머리를 빗겨나갔다. 앳된 남자가 나를 향해 칼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어코 그들은 내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을 단숨에 잘라냈다. 구덩이에서 죽은 짐승을 건져내듯이 알몸의 나를 끌어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대한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25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폭력과 야만의 밀양을 증언한다-6월 11일 밀양 행정대집행 상황에 대한 긴급 증언대회’에서 참석한 밀양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6월 11일, 증언대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할머니들의 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4명의 할머니들은 참담한 그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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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폭력 증언대회 모습(사진=유하라)

    ‘소 돼지도 그렇게는 안 끌어낼 거다’

    129번 송전탑을 지켰던 한옥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밀양 주민들의 증언이 시작됐다. 발언 시간이 되기도 전에 눈물을 보이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옥순 할머니는 침착한 모습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옥순 할머니는 “국가가 우리를 죽이려고 미리 명령을 내린 것 같다”라며 “11일 새벽 6시에 경고도 없이, 경찰 2,000명이 구덩이 주변을 막고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했다. 생존권을 지키려고 옷을 홀딱 벗었다. 공무원도 아니고 경찰이 칼을 이렇게 쥐고 머리 위에서 찢기 시작하는데 악몽이 떠올라서 잠을 잘 수도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할머니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소 돼지도 그렇게 안 끌어낸다. 어떻게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지… 이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27번 송전탑의 정임출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밤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났다. 경찰이 오는 것 같더라. (경찰들이) 칼로 천막을 사방을 돌아가면서 다 찢었다. (경찰이 끌어내려 해서) 몸부림을 치다가 쇠사슬이 모두 끊어졌다.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옷이 다 벗겨져있었다. 병원에 실려 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래지어만 입고 있었다”며 “할머니는 “내가 죽더라도 병원에 싣고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내가 죽어서 철탑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죽고 싶다”며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언했다.

    또 “우리는 보상받기 위해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수십억 줘도 절대로 도장 안 찍어줄 거다”라고 전했다.

    김수환 밀양경찰서장, 폭행당하는 할머니들 보며 웃어… “과연 사람일까”

    115번 철탑 움막 아래 굴에 있던 김영자 할머니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구덩이 위에 올려놓은 허술한 판자 위에서 그 많은 병력들이 올라와 작업을 하는데… 아무리 사람 있다고 소리쳐도 듣지 않고 계속 판자를 부쉈다. 그 때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이 옆에 있는 경찰과 웃고 있더라. 평소에도 경찰서장은 씨익 웃으면서 우리를 비웃는다. 몸서리 쳐진다. 과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치를 떨었다.

    또 김영자 할머니는 “포크레인이 과수원 한가운데를 향해서 감나무, 매실나무를 다 부수고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는데 숨이 탁 막히더라. 그 과일나무들은 우리들 생명줄이다. 그걸로 자식들 여태 먹여 살렸는데… 과연 정부가 이럴 수가 있나. 협상도 필요 없고 무대포로 밀어붙였다”며 “이렇게 짓밟히는 게 국민인가. 우리들에게 국가가 있긴 한 건가.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이렇게 위협할 수 있나. 나중에 다시 가보니 콩들이고 들깨고 다 짓밟혀 있더라. ‘당신들(경찰)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우리들에게는 이게 생명이라고’ 아무리 말해 봐도 그들은 항상 방패만 들고 서 있었다”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현재 김 할머니의 집 앞에 송전탑은 다 세워지고 몇 개 남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른 주민들과 연대해 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을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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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할머니와 함께 115번 철탑에 있던 한 할머니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다가 오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의원회관 내 의무실로 이동했으나, 2시간 안팎의 증언대회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101번 송전탑의 송영숙 할머니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숨은 연대자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를 보호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2년 전에 장하나 의원 오셨을 때 감동 받았다. 희망을 가졌다”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정치인들이 올바른 목소리 내어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힘이 없어서 정치인들이 나서줘야 한다. 정말 현장에서 죽고 싶었지만, 죽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며 “위안부 할머니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 철탑이 다 들어서고 난 다음에 지켜봐야 할 의무가 생겼다. 나중에 이런 것들로 피해를 본 사람들과 연대의 끊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경찰, 고의적 취재 방해로 국민 알권리 박탈

    당시 행정대집행 상황을 취재했던 프레시안 최하얀 기자도 증언대회에 참석했다. 최 기자는 경찰이 고의적으로 취재를 방해한 사실을 지적했다.

    최 기자는 “움막 근처로 끌려나와 하소연하는 주민들 주변을 경찰이 둘러싸고 있었다. 주민들이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주민들의 상태를 어떤지 기록해야 했으나 경찰이 그 모든 것을 차단했다”며 “현장에 있던 모든 기자들이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했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고 증언했다.

    또 “밀양에 없는 사람도 밀양 관련 기사를 볼 때 최대한 팩트에 가깝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박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기자는 밀양경찰서와 경남경찰청 보도관리 시스템에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처음엔 언론사에 전화를 돌려 기자들의 안전을 시켜주겠다더니, 실제로 현장에선 기자들의 양팔을 잡고 끌어내며 말만 ‘위험하십니다’라고 한다”며 겉과 속이 다른 경찰 측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 기자는 이와 같은 경찰의 고의적 취재방해가 밀양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이 외에 현장에 함께 있었던 수녀들도 참담한 그날을 증언했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수녀 중 한 명인 마릴리나 수녀는 6월 11일 밀양을 전쟁터에 비유했다.

    “무서운 마음에 전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2시부터 경찰 병력의 불빛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데, 공포감 때문에 기도도 할 수가 없었다”며 “누군가는 수도자가 왜 거기에 있었냐고 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 사는 수녀들이 보기에도 사회 문제가 한계선에 달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장하나 의원 사회로 진행됐으며, 정청래 의원, 진선미 의원,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참석했다. 각 의원들은 밀양 송전탑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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