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족적 진보좌파 넘어서야
    [기고] 설레던 첫 마음만 두고 모든 게 새로워져야
        2014년 06월 23일 01: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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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부터 학교보다는 당에 드나드는 게 더 편했던, 이제는 20대가 된 청년이 진보정당의 현재,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느낌와 마음의 글을 보내왔다. 짧지만 진보정당의 부활을 바라는 절절함이 느껴지는 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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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름 청소년기부터 패배가 익숙한 진보정당 당원이었는데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이번처럼 무력한 마음이 들었던 건 유래가 없다. 낮은 지지율 때문만은 아니다. 그거야 오랫동안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결과의 함의가 그렇다.

    선거를 통해 보건대, 이제 힘 있는 여당 대 견제의 야당 구도도, 유능한 보수 대 개혁적 진보의 구도도 다 끝난 듯하다. 지역별로 따지고 들어도 이 구도로 구축되었거나 성과가 있었던 선거판은 별로 없다.

    거기에 좌파를 넣어도 마찬가지. 직접 후보로 뛰었던 조승수를 포함해 소위 스타 정치인이라고 하는 ‘노심조’ 모두 실제 득표로 이어지게 하는 힘이 있는지에 관해선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이 결과가 진보세력에게 진정 무력감을 안겨다 주는 것은, 정치에 대한 희망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거시적인 세계관, 통찰력 있는 비전 등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자잘한 생활의 변화와 그야말로 실사구시적인 면들을 챙기라는 것, 그러니까 당장 우리 집 앞 청소라도 해놓으라는 것이 이제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대인 듯하다.

    민노당 창당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의 자료사진

    박원순, 조희연 당선 등 민주, 진보세력의 부분적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을 중심으로 분화되어 있는 진보정당들이 죄다 몰락한 것은, 유권자들이 ‘사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보정당을 못 찍은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당당히 안 뽑았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앞으로 진보정당은, 진보라는 이름을 버리는 건 물론 내가 좌파라는 걸 스스로도 망각할 만큼 자신을 속여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진보좌파세력이 내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공염불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엄혹한 현실이다.

    이 때 좌파임을 망각하라는 소리는 당에 구현한 우리의 이념을 후퇴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지킬 이념이 없다. 지역에서 행하는 진보적 활동에선 당의 이름을 내거는 것이 손해만 끼치고, 내가 속한 노동당에서만 보자면 가장 실천적인 당원들과 심지어 몇몇 당 간부들까지 평소에는 청년좌파, 알바연대, 평화캠프 등지에서 활동하다 선거 때만 당의 이름으로 그 활동을 연장한다.

    정파적으로 오독하실까 덧붙이면 나는 이들이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헌신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두둔하지만, 어쨌건 객관적인 사실은 이 ‘당’을 이념적으로 추동하는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게다. 오히려 이 당이 ‘선거’정당이라는 건 평소 진보적 활동에 가장 헌신적인 당원들로 증거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엄밀히 말해야 할 것은 수많은 ‘좌파’ 당원들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이 ‘당’을 ‘좌파적인 정당’이라고 증명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선언”만이 있을 뿐.

    굳건히 지켜낼 당의 이념도 없고, 평소의 헌신적인 활동이 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차원에서, 여전히 진보‘정당’을 하려는 사람들은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필요로 묶여야 한다.

    앞으로 진보정당 재편의 과정에서,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필터는 ‘민주주의’가 되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는 ‘보편적 복지’여야 한다.

    루소의 말처럼, 다수결의 원칙으로 가동하는 민주주의는 애초에 그걸 하겠다는 만장일치를 전제해야만 한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원칙 하에서나 우리는 확장이 가능할 것이다.

    정작 우리가 그동안 진보정당에서 봐왔던 패망의 역사는 ‘이념’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파이든 좌파이든 ‘이념’을 볼모로 잡고 ‘민주적 절차’를 흔드는 당원들의 모습에서 기인했다. 정파 따질 것 없다. 내보기에 당헌, 당규, 당의 민주적 질서, 민주집중적 통치를 죄 무시하는 건 누구도 진보진영을 따라올 자가 없다. ‘민주 시민’이 되는 것부터, 우리는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진보라는 이름을 다시는 쓰지 않아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단어가 오용되고 있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마도 김경욱 작가였나, 그 양반 말마따나 “‘눈’에 대한 가장 훌륭한 시는 ‘눈’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오는 시”이다.

    단지 우리가 진보좌파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자족할 게 아니라 세상을 좋게 만드는 이들이 ‘진보좌파’임을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이념적 지향이다. “바로 우리가 너의 안전/생계를 지켜주겠다” 이 말 한 마디만 갖고 모든 복지세력들이 뭉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뭉칠 수도 없고, 뭉쳐도 각개격파 당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야 다음번 선거에서 당장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전망이 일거에 밝아질 거란 생각 따윈 애초에 버렸다.

    다만 노동조합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바로 ‘당’의 필요를 되살리는 것, 여전히 제도 정치를 바꿔내는 것에 희망을 갖고 더 건강하고 더 민주적인 진보적 색채의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 현존하는 진보정당은 진보정치의 꿈을 아직까지 버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런 전망을 다시금 제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처음 입당 할 때의 설레던 마음 하나만 남겨두고, 모든 것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 필자 :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태어나 열일곱, 학교 대신 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노동당 울산시당 편집위원.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생과 논술 강사를 병행 중.

    필자소개
    노동당 울산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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