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고향의 월성원전
    불안, 불안을 달고 산다
        2014년 06월 23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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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인 양남에는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그때가 1970대 후반이었는데 양남면 그 시골에 “황금쌀롱”이라는 카바레 비슷한 쌀롱까지 있었고, 지금 해안가 주상절리로 유명해진 읍천에는 외국인아파트까지 들어서 있었다.

    그때 내 고향 양남 땅에 그런 풍경이 있었던 이유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설 때문이다. 당시 캐나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하다보니 캐나다인들이 상당수 들어와 있었고, 발전소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던 것이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이렇다.

    1973년 11월 –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립계획 확정
    1975년 5월 – 월성1호기 착공
    1983년 4월 – 월성1호기 상업운전
    1997년 7월 – 월성2호기 상업운전
    1998년 7월 – 월성3호기 상업운전
    1999년 10월 – 월성4호기 상업운전
    2012년 7월 – 신월성1호기 상업운전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5개의 원자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다가 최근에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뒤편 야산에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공사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 방폐장(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은 ​2008년 8월 경주시 양북면(양남면 경계지역) 봉길리에 건설하기로 했지만 그동안 안전성 논란으로 2차례의 공사 중단을 거쳤다가 2014년 6월, 6년 만에 1단계 사업을 끝냈다. 1단계 사업이 끝난 이곳에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1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규모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주))은 이곳에다 2단계로 12만5천 드럼 규모의 천층 방식의 처분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앞으로 60년간 214만㎡ 부지에 원전, 산업체, 병원 등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폐물 80만 드럼을 처분하는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동국대학교 김익중 교수(경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4월 8일,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의 정기총회에서 “경주 방폐장 방사능 100% 누출된다”고 확언을 했다고 한다.

    김교수는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지하수가 오염될 것이고, 오염된 지하수는 양남, 양북, 감포 주민 1만5천 명의 식수로 사용되고, 오염된 지하수는 동해 바다로 유입되어 국민의 식탁으로 올라올 것”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달 20일 경찰은 경주시 양남면의 중·저준위 방폐장 공사와 관련해 하청업체들과 시공사, 해당 공단으로 이어지는 수억 원대의 뇌물상납 커넥션을 적발해 관련자 19명을 검거 입건했다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원전마피아”들의 부정과 비리 실태를 보노라면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끼고 사는 울산시민, 아니 나 같은 양남면 석읍리 원주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경주방폐

    (2011년 3월 17일 경주핵안전연대 기자회견에서 제출된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농도분석’에 대한 자료에 의하면 양남면 나아리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는 평균 23.6Bq/L(리터당 베크렐)로 이는 시내지역 경주시민 (0.919Bq/L)보다 25.7배나 높은 수치이다.)

    불안, 불안, 불안, 불안… 불안을 달고 산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는데, 내 기억으로는 월성원전이 가동된 지난 30년 동안 월성원전 주변 내 고향 주민들은 아직까지 월성원전에 대한 반대투쟁을 극심하게 한 적이 없다.

    그동안 한수원으로부터 지역개발비를 지원받아 동네 농로를 넓히거나 마을 미곡창고를 짓거나, 이런저런 사업들을 하면서 가끔 동네 어른들이 동원되어 월성원전 앞으로 데모를 하러 가시는데, 갔다 오신 어르신들 이야기 들어보면, 한전 정문 앞에 도착하면 한전 직원들이 미리 장만해준 삼계탕이나 음식들을 잘 자시고 오는 게 전부였다.

    또한 월성원전과 관련된 시골 어르신들 이야기 들어보면 “어느 동네 이장은 똑똑해서 한수원 지원금을 많이 챙긴다더라”, “어느 동네 이장은 어리버리해서 지 몫도 못 챙긴다더라” 뭐 이런 종류의 말씀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월성원전이 있는 동네, 나아리에 사는 친구 한 명을 만났는데, 이 친구 이야기가 참 심각하게 와 닿는다.

    이 친구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부지에 살았던 원주민들이 바로 옆 동네인 나아리로 이전해서 살고 있는데, 이 동네 어르신들이 70대 초반에 대부분 사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의 원인은 거의 100%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친구 이야기에 따르면 나아리 그 동네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하수를 뽑아서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는데, 최근에 갑자기 경주시와 한수원 등에서 상수도를 설치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 친구 이야기로는 “동네 어른들이 70대 초반에 줄줄이 암으로 죽어 나가는 원인이 지하수 때문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사망자들의 실태조사나, 원인조사, 수질검사, 방사능 피폭등 기본적인 조사나 대책들 세운 적이 없냐?”고 물으니, “그렇게 나설 사람이 누가 있노?”이러고 만다.

    그 친구랑 이야기를 나눈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자신부터 고향땅에 지어진 월성원전과 경주방폐장 문제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다는 반성이 뒷골을 때린다.

    나라도 나서서 반핵단체나, 환경단체에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볼 요량이다.

    다행히 오는 24일 양북면사무소 복지회관에서 경주방폐장의 안전성에 대한 ​긴급토론회를 ‘월성원전 방폐장 민간환경 감시기구’가 주최를 한다니 관심을 갖고 찾아봐야겠다.

    ​매번 울산을 떠나 동해안 도로를 지날 때면 달리는 차 안에서 해안가 풍경을 즐기게 된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가 월성원전이 만들어진 곳에서 도로는 바닷가를 벗어나 내륙으로 굽이돌아 터널을 지나게 된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울산에서 차로 달려 30분 거리인 이곳에 저 괴물 같은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지 않고, 그 옛날 어촌마을로 남아 있었다면, 울산 정자바다에서 출발해 읍천 주상전리를 지나 문무대왕암으로 이어지는 동해안의 그 아름다운 풍경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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