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무엇이 신자유주의인가
    [책소개]『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김성구/ 나름북스)
        2014년 06월 21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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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는 여러 문제를 논할 때 ‘신자유주의’는 그 원인으로 단연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됐다. 국내뿐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는 현재 자본주의 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고, 많은 이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신자유주의란 게 정확히 무엇이고,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래서인지 과거 한 대통령은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칭하기도 했다.

    너도나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게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사상이자 정책이다.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김대중 정부 이후 전면화한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현재의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은 이 같은 역설적 상황과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하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에 국내 대표 좌파 경제학자인 김성구 교수가 답한 칼럼집이다.

    책은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형성 등 그 개념을 살피고,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관철된 과정을 추적한다. 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향배에 관한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오해와 혼란

    전체 5부와 부록으로 구성된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은 1부(‘신자유주의의 개념과 역사’)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 이론사적 계보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책은 신자유주의와 구자유주의, 영미권 신자유주의와 독일권 신자유주의 등 생소한 신자유주의 관련 개념을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해설했다.

    저자인 김성구 교수에 따르면, 이론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1930년대 독일에서 오이켄에 의해 제시되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구서독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론으로 발전한 경제사상을 지칭한다.

    1930년대에 자본주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 속에서 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에 대한 자유주의의 대응은 사회적 자유주의로서 케인스주의와 오이켄의 신자유주의(질서자유주의)로 나타났다. 책은 (구)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구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의 일반적 조건(외적 조건: 사적 소유와 시장경제를 위한 헌법과 민법·형법의 제정, 화폐발행과 관리를 위한 중앙은행 제도의 정비, 사회간접자본 등)을 창출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창출되면 시장 경쟁의 자유로운 운동이 최적 균형을 달성한다고 주장하고, 그 이외의 국가의 개입을 일체 부정한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쟁의 자유로운 운동이 시장 경쟁의 조건 자체를 파괴하는 경향(독점화 경향과 계급 대립 경향)을 발전시키므로 국가는 이 경향을 차단하는 정책(반독점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으로 시장 경쟁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름 아닌 이 두 정책의 인정 여하가 구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의 핵심을 이룬다.” _p.32

    이처럼 이론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개입(반독점/ 사회복지 정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반독점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하면 신자유주의가 아니고, 일체의 국가 개입을 배제하면 신자유주의인 것처럼 왜곡된 채 개념이 통용됐다. 책은 이렇게 개념 사용에 있어 혼란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짚는다.

     신자유주의 공모자

    1970년대 케인스주의를 비판하는 새로운 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다시 유행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 구자유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구자유주의보다 더 극단적으로 국가 개입을 배제하는 형태의 자유주의로, 그 이론적 대변인은 잘 알려진 대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등이다.

    이들의 새로운 자유주의는 독일에서 1930년대 등장한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것이었지만, ‘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로 명명되었다. 이는 미국 강단의 세계적 헤게모니가 있어 가능했고, 덕분에 영미권의 속류화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따라서 김성구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영미권 신자유주의, 독일권 신자유주의라고 지칭해 용어 사용 자체를 구분해야 하고, 양자 간의 이론적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의 이런 차이에 주목하면, 1970년대 말 이래 독일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영미권에서는 자유주의적 공세가 지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980년대 초 다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독일의 신자유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경제 부흥을 지도한 신자유주의보다 자유주의적 색채가 보다 강화된 것이었다.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하게 되었나?

    이렇게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한국 민간 정권의 경제정책은 구자유주의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신자유주의에 포괄된다. 하지만 IMF 경제 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 이들 정부 인사들과 시민운동 진영은 자신들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해왔다.

    이 기간 한국에선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개념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됐고, 그 혼란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는 사이 두 정부를 거치며 신자유주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 개념과 역사에 관한 혼란은 민간 정권들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와 오늘날 이른바 반MB연합이라는 정치적 오류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혼란은 현재 유럽의 사민주의와 미국의 민주당을 신자유주의 경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또 우리의 이상으로 추구하는 망상의 토대이기도 하다. 또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지배가 계속되는 이데올로기적 토대이기도 하다.” _p.31

    책 2부는 김대중 정부로부터 현재의 박근혜 정부까지 계속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배에 관한 기록이며, 3부는 신자유주의 지배에 공모한 시민운동 등 ‘가짜 진보’와의 논쟁을 담고 있다. 저자의 비판엔 성역이 없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뿐 아니라 민주노총 등 진보 진영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책은 한편으로는 재벌 규제 등을 외치며 진보적 이미지를 취하고, 다른 한편에선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도모한 시민운동의 기만적인 이중성을 낱낱이 폭로한다.

    “재벌의 소유 및 경제력 집중에 대항해서 전투적으로 논쟁하는 진보적인(?) 경제개혁연대나 참여연대를 정말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자본의 담합과 인수 합병 그에 따른 집중과 계열 지배, 요컨대 독점 지배에 의한 경쟁의 왜곡을 비판하며 경쟁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하나의 핵심 요소다. 독일 신자유주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론에서 경쟁 정책의 지위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독점 정책은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반독점 정책으로 과연 경쟁 질서를 확립했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을 보면 20세기 이래 독점자본의 지배 구조가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요컨대 반독점 정책은 자본주의의 독점화 경향을 극복하기는커녕 완화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반독점 정책이 일종의 기만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참여연대가 권력에 들어가면 재벌 구조를 철폐하고 경쟁 질서를 확립할까? 단언컨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름 아닌 독점자본주의 100년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_p.139

    경제학 지식이 없더라도, 이제 신자유주의 비판은 시민적 상식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도 지배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신자유주의에 지배당하게 된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IMF 경제 위기 이후 본격화했고, 김대중-노무현 두 번의 민간 정권에서 결정적으로 확산 고착됐다. 이는 ‘비판적 지지’ 혹은 ‘반한나라당(새누리당)’의 명분하에 이들 정권과 결탁한 시민운동과 개혁 언론 등의 공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김성구 교수의 주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관철되고 신자유주의 비판이 확산되는 속에서도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이들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다수적 입장이었으며,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다수적 입장은 신자유주의를 영미권 신자유주의로만 이해함으로써 자유주의 민간 정권들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비판적 지지를 변호했다.” _p.31

    경제민주화 논쟁, 과연 진보적인가?

    책 4부는 국내의 경제민주화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김성구 교수는 한국에서의 보수-진보 간 경제민주화 논쟁은 본질적으로 영미형 신자유주의와 독일형 신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의 두 개의 유형 간 논쟁이었고, 때문에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쟁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전망이 없다고 평가한다.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보수파와 진보파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동맹 관계에 가깝다.

    특히 김 교수는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두 논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경제민주화론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보다 시장주의에 기반을 두고 재벌 개혁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과 국가의 결탁을 통한 독점 이윤의 획득에 대한 대중의 통제와, 독점과 국가의 조직화에 입각한 계획과 조절의 확대와 통제라는 역사적인 경제민주주의론의 문제 제기와 달리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주로 소유의 분산과 시장경쟁의 강화를 통한 재벌 지배 체제의 해체 또는 약화를 지향했다.” _p.268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해설서

    2008년 불어 닥친 금융 위기 이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예측들이 제기됐다. 국내 진보 진영 일각에선 종말론처럼 자본주의 파국을 점치는 논자들도 등장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반복되는 경제 위기나 공황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주류 경제학엔 공황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이 없다. 주류 경제학의 경기순환론에선 불황과 호황이 있을 뿐 공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체제에 내재하는 위기란 없고, 경제 위기는 모두 외부의 충격으로 발생했다는 게 주류 경제학의 설명이다. 이 점이 바로 세계적으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다시 읽는 붐이 일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독점자본주의론과 공황론으로 독점자본주의의 정체 경향을 이론적으로 논증해 박사 학위를 받은 김성구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황론 전문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을 통해 현재의 위기뿐 아니라,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자본주의 미래에 관한 혜안을 제공한다.

    김성구 교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공황론에 입각해 자본주의하 경제 위기를 ‘주기적 위기’와 ‘구조(조절) 위기’로 나눠 분석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과잉자본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주기적 위기에 직면한다. 이와 함께 이 주기적 위기를 넘어선 구조적 위기가 있다. 구조 위기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따라 발생한다. 생산력이 고도화될수록 이윤율이 저하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이다.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은 새로운 기술 혁신과 노동 통제, 독점과 국가 독점의 발전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제3차 구조 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가 가져온 위기다. 1970년대 이래 현대 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통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핵심은 케인스주의의 해체 위에서 자유화·세계화·금융화·투기화·유연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환과 재편은 케인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오리려 성장의 둔화와 대량 실업을 고착·심화시키고 위기를 세계화시켰다.

    자본주의 현재의 위기는 제3차 구조 위기의 지속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고유한 위기이며, 이는 제3차 구조 위기로부터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이전의 구조 위기에서와 달리 새로운 장기 성장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를 넘어설 대안은 없는가

    주기적 공황은 과잉자본이 해소되면 끝나지만, 구조 위기는 주기적 공황의 반복으로 과잉자본 해소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구조 위기의 극복은 구조 재편과 자본주의의 단계적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김성구 교수의 주장이다. 김성구 교수는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지양과 사회화(socialization)가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보면, 생산력의 고도화와 위기의 심화에 대응하여 자본주의는 실로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일정하게 지양해서 소유의 사회화와 사회적 조절을 확대·강화해 왔다. 독점과 주식자본 그리고 국가 부문의 확대가 다름 아닌 자본주의하에서 사회화의 진전을 표현하는 것이다. 20세기 이래 현대 자본주의는 독점과 국가를 통한 시장의 조직과 조절 없이는 존립할 수가 없게 되었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자유 경쟁 질서는 현실에서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국가개입주의가 제도화되었고, 국가에 의한 공황의 구제와 관리가 자본주의 생존의 절대적 조건이 되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서도 본 바처럼, 자본주의의 위기는 국가의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과 유동성 공급 그리고 대은행과 독점기업의 국영화라는 자본주의적 사회화를 통해서만 관리될 수 있다. 또한 지난 위기는 역으로 케인스주의라는 사회화 형태를 해체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사회화의 역사 과정에 역행하는 것이고, 그 대가가 얼마나 막대한가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_p.305

    김성구 교수는 국내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다. 지금이야 보수 정당도 신자유주의를 얘기하는 시절이 되었지만, 김 교수가 최초로 신자유주의 문제를 제기한 1995년엔 비판은커녕 개념 자체가 낯설었다. 이후 20여 년간 저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공황론을 토대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다양한 주제와 현실 이슈에 개입해왔다.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은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와 싸워온 저자의 지적 투쟁의 기록이자,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신자유주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와 공모자들>엔 저자와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자본》을 두고 <미디어오늘>에서 진행한 논쟁 전체본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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