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분노를 위해
[기고] '시위의 연행 사진'들을 보며
    2014년 06월 20일 0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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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서 항상 부딪히는 것은 일선의 경찰들이다. 그들의 폭력에 대해 분노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좀 더 다른 맥락에서 일선에서 늘 부딪히는 경찰 개개인이이 아니라 폭력의 숨은 주인공을 잊어서는 안되며, 그들 숨은 폭력의 주인공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방안을 고민하자는 글을 서윤씨가 보내와서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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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학생운동 때 군에 의해 처참한 몰골이 된 학생과 민간인들의 사진이나, 요즘 시위를 하다 경찰들에게 연행되는 사진, 몸싸움을 벌이는 사진이 요즘은 썩 자주 보입니다. 시절이 이 모양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사진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시위, 연행 그리고 사진

그러한 사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첫번째 이유는 그렇게 연행되는 사람이 부지기수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개된 사진들은 연행이 얼마나 잔인하고 몰인정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드러내는데 주로 역점을 두고 있는데요. 제게는 연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연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 자체가 문제로 보입니다.

세상에 인도적인 강제 연행은 없습니다. 아무리 정중하게 가마 태워 모셔간다 하더라도 연행은 연행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그릇된 것입니다. 시민이 자기 할 말 하는데 잡아가는 것 자체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기본이 되는 권리가 침해되는데 다른 권리인들 지켜지겠습니까?

물론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니 다른 권리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은 아닙니다. 이건 다른 이유들을 쓰면서 함께 설명해나가겠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설령 이 나라에서 백만의 시민이 연행되어 온 사방천지의 구치소가 미어 터진다 해도 움직이지 않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만난 모 진보정당 당원분들과도 이야기를 했던 것이고 만민공동회를 다녀와서 느꼈던 점이기도 한데요, 집회와 시위를 억압하는 방식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내를 다녀본 분들이면 아실 겁니다. 특히 종로와 광화문 근처요. 전경들을 채워 넣은 버스가 온통 길을 가로막고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위는커녕 사람도 모이지 않았는데도요. 그들이 대체 시위를 방지하려는 것인지, 놀고 있는 시민들을 감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시민들을 향해 시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소위 ‘닭장차’라고 비꼬아 부르는 경찰버스들이 그러고 서 있는 건, 집회와 시위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이건 말하자면 바람 핀 아내 혹은 바람 핀 남편이 아닌 그 상대를 책망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대상이 어긋나버린 심리이지만 이게 인지상정이요 상당한 현실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그런 사진들은 우리와 같은 시민인 경찰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 경찰을 움직이는 권력의 수뇌부들에 대한 반감-우리가 마땅히 품어야 할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에 대한 반감을 일으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사람의 폭력성이란 ‘원래부터 그러한’ 것이기보다 상황에 따라 증폭되는 성향이 많습니다. 현장에 나온 경찰들이 어떤 의도에서였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집회를 진압하다 보면 마음 한 켠에 자리하던 폭력성이 마음 전체로 번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부도덕하고 폭력적이기에 연행 과정에서 폭력적 행위를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한 번 어떤 특정 패턴의 행동을 저지르게 되면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닙니다. 연행 후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저는 이런 견지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진들은 우리로 하여금 도덕주의적으로 경찰을 비난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경찰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개하게 되는 것이죠. 연행에서부터 구치소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그들이 폭력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 또한 명백한 인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이 점은 뒤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여튼 위 세 가지 이유로 인해 그런 사진들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라면 저는 분기와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분기는 말 그대로고요, 분열은 전선의 넓어짐을 의미합니다.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패, 부정한 폭압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지를 되도록이면 좁고도 정확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연행사진

이명박 정권 때의 시위 후 대학생 연행 자료사진(사진=노동자연대)

경찰의 폭력, 핵심을 공격해야

병략에서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때는 지리적 여건만 못하고, 지리적 여건은 인화력만 못하다는 얘깁니다. 병력에서도 밀리고, 시기상으로는 언제나(진보는 늘 보수 속에서 생성되니까요) 밀리고, 인화력에서도 밀리는 입장에서 저항하는 쪽은 전선이 넓어질수록 불리해집니다.

지리적 이점과 병력의 우위, 응집력까지 고루 압도적인 적을 상대하는 병법으로 ‘성동격서’와 ‘조호이산’이 있습니다. 성동격서는 동쪽 문을 열어놓고 서쪽을 친다는 것으로, 전선을 구축해놓고 은밀하게 본진을 쳐 없앤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또 조호이산은 적의 전략지를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가 적의 중심을 깨버리는 전술입니다. 조호이산의 경우엔 전쟁보다는 전투에서 쓰는 전술로 볼 수 있는데요, 이럴 때 손무는 힘을 모아 신속하게 그 중심이 되는 곳을 흐트리거나 혹은 적을 분열시키는 방안으로 유효하다 하였습니다. 즉 ‘이이제이’와 같은 여러 전술이 필요한 전략에 쓰이는 방법론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권력의 폭압에 맞서 싸울 때 우리는 구별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폭력을 휘두르는 물리적 책임자와 그것을 방기하거나 조장하는 총책임자를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힘을 모아서 치고 들어가야 할 목표지점과, 그 목표지점으로 가는 동안 걸림돌이 되는 다른 요충지의 구별 같은 것 말입니다. 경찰의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선 강력하게 항의하고 따져 물어야 할 일입니다. 이점은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화를 낸다는 것은 일종의 에너지 소모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무한정으로 에너지를 발휘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때때로 이런 사진이 아직 행동하지 않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이끌어낼 공산이 있음은 부정하지 않으나, 대개의 경우 분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실제 행동에 나서는 시민들의 경우 경찰이 연행과정에서 폭력성을 보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실제 행동에 나서는 것은 분기보다는 두려움과 공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장사진의 무분별한 공유보다는 이점에 대한 방안을 고민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항의 움직임에 이제는 전략과 전술을 구별하여 차분하고 신중한 숙의와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의제를 협소하고 명확하게 설정하고 설정된 의제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까지 이루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음 의제를 또 그렇게 해나가야 하겠죠. 물론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하나의 단위집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절차입니다.

시민운동과 정당정치의 결합 필요

이야기가 좀 커집니다만, 그대로 더 밀고 나가보겠습니다. 의제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까지 이루어나가는 것은 단순한 시민운동만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정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따금씩 정당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피력하는 분들을 보곤 하는데요, 그 마음은 이해가 되나 저는 그 회의감이 일종의 좌절감에 의한 ‘탈정치화’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의 층위와 정당을 통한 의제 실현의 층위는 다르지만 같이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처럼, 그리고 상당수의 국가에서 채택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는 그렇게 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분기가 딱히 도움될 것은 없습니다. 분기와 사기를 혼동하게 되면 싸움은 지속성을 띨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기에 의해 받은 탄력은 지속적인 동력원이 될 수 없으니까요. 언제나 분기로 싸움터에 나가는 군대는 전투의 승리는 몰라도 전쟁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법입니다.

분열까지는 단지 제 생각일 뿐이니 어떨는지 몰라도, 적어도 글의 서두에서 말한 사진들이 분기를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사진들이 제게는 다소간 ‘불필요하다’고까지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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