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청춘 바친 공장과 기계
    [현장편지] 차광호의 굴뚝일기(1)
        2014년 06월 19일 05: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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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이며 공장 굴뚝농성에 올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차광호씨가 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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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땡볕 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아침부터 햇빛이 강렬하게 굴뚝을 비친다. 45m 굴뚝에 올라온 지 24일,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 몸을 많이 상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운동을 한다.

    굴뚝의 하루는 길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느리게 흘러간다. 아침저녁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집회시간, 멀리서 찾아온 동지들을 내려다보며 짧게 하는 통화 시간과 식사시간을 빼면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많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책을 들어보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굴뚝에서 바라보는 구미의 풍경이 새롭다.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보이는 산 밑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스물다섯에 스타케미칼의 전신인 한국합섬에 들어와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청춘을 꼬박 이 공장에 보냈다.

    스타케미칼

    스타케미칼 굴뚝 농성 모습(사진=진보넷 속보게시판)

    한국합섬 입사할 때도 이렇게 더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구미공단은 광고판, 전봇대 할 것 없이 붙일 수 있는 곳은 모두 구인 광고로 도배되던 시절이다.

    지금의 구미는 예전과 완전히 바뀌어 일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나오는 일자리는 여지없이 비정규직에 최저임금을 받고 12시간 맞교대하는 나쁜 일자리뿐이다.

    스물다섯 시절 구미의 여러 섬유회사들에 입사원서를 냈다. 친구들과 2박3일 일정으로 동해안 여행을 갔다가 차가 많이 막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채 면접을 봐야 했다. 그랬는데도 출근하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고민 끝에 여성노동자가 많은 한국합섬으로 결정했다.

    한국합섬이 잘 나갈 때였다. 한국합섬 1공장에 입사해 공정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하루는 현장에서 고함소리가 나고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2공장 가동을 위해 전출을 해야 하는데 반장이 일방적으로 사람을 지목해서 보내려는 것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중재에 나섰고 결국은 내가 2공장으로 전출 가는 것으로 현장은 조용해졌다.

    얼마 있다가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조건이 안 맞는지 몇날 며칠을 일을 해도 정상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툭하면 타부서에 지원을 나가서 가서 상노동을 한 달 가량 해야 했다. 그제서야 폴리에스텔 원사가 나왔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과 신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 대의원을 맡아 달라는 섭외가 들어 왔다. 노동조합을 전혀 몰랐지만 선후배가 같이 한다는 것과 바른 말은 참지 못하는 성격에 승낙하고 노조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합섬 입사와 노동조합 입문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던 젊은 나이였다.

    나와 동료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회사는 경쟁력 있는 특수섬유를 개발하는 일은 소홀히 했고, 원사의 대량생산에만 매달렸다. 잘 나가던 회사가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04년 금강화섬에 이어 2007년 한국합섬이 폐업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는 일자리를 잃었다.

    다행히 스타케미칼이 회사를 인수했다.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900억이 넘는 공장을 399억에 인수하고 공장을 돌렸다. 그런데 2년 만에 회사가 어렵다며 회사를 폐업했다. 회사는 기계설비를 팔아 300억 원 이상을 챙겼고, 고철과 전선 매각대금 200여억원을 챙기려 하고 있다. 그러고도 400억 가량의 공장 부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나와 동료들의 20년 청춘과 피땀이 배어있는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들이지만 버틸 것이다. 돈이 제일인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존중받고 노동이 대우받는 세상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필자소개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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