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스나가와 사건'
    전 피고인들 재심 청구
    아베, 당시 판결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근거로 삼아
        2014년 06월 18일 05: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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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년 ‘스나가와 사건’의 전 피고인 쓰치야 겐타로 씨(79, 시즈오카시) 등 4명이 17일, 1심 무죄 판결을 최고재판소(대법원)가 파기하고 반려한 뒤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고 교도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추진하면서 ‘스나가와 사건’에 대한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있다”고 방송에서 말하며 이 사건을 집단적 자위권의 사법적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당시 재판에서 최고재판소와 미군 측의 협의와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1심의 무죄 판결을 최고재판소가 뒤집는데 양측이 협의했다는 공문서 자료들이 2011년에 공개된 것이다.

    스나가와

    1955년 9월, 미군 구 다치카와(스나가와) 기지 확장공사에 반대해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 (자료사진)

    ‘스나가와 사건’은 1957년 7월 도쿄도(都) 스나가와(현재의 다치카와<立川>시)의 미군 비행장(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 학생 등이 철책을 끊고 기지 영역으로 들어갔다가 미·일 간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른 형사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1심을 담당한 도쿄지법은 1959년 3월 ‘일본 정부가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것은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 2항에 위배된다’며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받은 검찰 측이 항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최고재판소에 ‘비약적 상고’를 했고 최고재판소는 같은 해 12월에 “미군기지 확대는 헌법이 금지한 전력에 해당하지 않으며, 미일 안보조약은 사법적 권한의 밖”이라고 유죄 취지로 파기했다. 1963년 최종적으로 벌금 2천 엔의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2011년 연구자들의 정보공개 요구로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2세 주일 미국 대사와 최고재판소의 다나카 고타로 장관(1974년 사망)이 따로 접촉해 최고재판소 판결 내용을 암시하며 협의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도쿄신문은 11일 이와 관련해 스나가와 사건의 판결을 한 달 가량 남겨둔 1959년 11월 5일 맥아더 대사가 미국 국무장관 앞으로 외교문서를 보내 다나카 장관이 “(1심을 담당한 도쿄지법) 다테 아키오(1994년 사망) 재판장이 헌법상 쟁점에 관해 판단을 내린 것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

    쓰치야 씨 등은 새롭게 밝혀진 이런 정보를 근거로 당시 판결이 공정한 판결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또 최근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 서둘러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또한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의 역대 내각이 스나가와 판결까지 고려하고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33년 전에 결정해 유지하고 있는데도 아베 총리가 이를 무시하듯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스나가와 판결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개별 자위권의 범주이며, 집단적 자위권은 헌법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30여년간의 일본 정부 입장이었는데, 아베 총리는 스나가와 판결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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