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의 미덕 버린
    인간들에게 주는 메시지
    [그림책 이야기]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글 그림)
        2014년 06월 17일 10: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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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스스로 말을 걸다

    새로 출간된 책들을 읽다 보면 오래 전에 읽었던 고전이 문득 새롭게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희곡이나 소설을 즐겨 읽는 분들에게는 괴테의 <파우스트>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고전이겠지만,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멋진 뼈다귀>나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같은 작품이 바로 잊지 못할 고전입니다.

    특히 요즘은 1999년에 한국에 소개된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책이 스스로 말을 건다면 누가 믿을까요? 하지만 <프레드릭>이 제게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 보지 않고서는 도통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일하지 않는 프레드릭

    그림책 <프레드릭>은 일하지 않는 들쥐 ‘프레드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모을 때, 프레드릭은 먹을 것을 모으지 않습니다. 그런데 프레드릭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걸까요?

    다른 들쥐들이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을 때, 분명 프레드릭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먹을 것 대신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몸이 먹을 음식은 몸으로 만들 듯이 마음이 먹을 음식은 마음으로 만듭니다. 프레드릭은 가만히 앉아 영혼을 위한 양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프레드릭은 겨울이 되자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지치고 무료한 들쥐들에게 자신이 모았던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영혼의 양식을 나누어 받은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시인’이라고 칭송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레오 리오니가 만든 ‘들쥐들의 세상’이 대단히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어떤 들쥐도 ‘프레드릭’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도 프레드릭에게 자신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존재하는 그대로 프레드릭이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한 것입니다.

    또한 다른 들쥐들과 달리 프레드릭은 먹을 것을 전혀 모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드릭은 계속 살아남아 있습니다. 다른 들쥐들이 프레드릭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들쥐들이 프레드릭을 먹여 살린 이유는 프레드릭의 예술을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예술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이 가족이고 친구이며 같은 들쥐이기 때문에 나누어 먹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들쥐들은 예술가를 존경합니다. 겨울이 되고 프레드릭이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나눠주자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시인’이라고 칭송합니다. 들쥐들은 친구인 프레드릭이 시인인 줄 몰랐을 뿐 원래 ‘시인’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들쥐들처럼

    안타깝게도 인간들의 세상은 프레드릭과 들쥐들의 세상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편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프레드릭과 친구들에게서 배우면 됩니다. 조금만 배우면 우리 인간들도 들쥐들처럼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선 들쥐들은 서로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이 보기엔 일을 안 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난을 받는 사람은 예술가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발명가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당장은 아무 것도 이뤄놓은 게 없는 백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스타일로 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 프레드릭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 세계에서는 많은 예술인들이 생계를 걱정합니다. 생계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예술인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불안해합니다. 사실은 우리나라를 보든, 지구를 보든, 먹을 게 부족하진 않은데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누구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나누어 먹으면 됩니다. 인간은 자연계서 나눔의 미덕을 버리고 불안이라는 악덕을 발명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일 것입니다.

    프레드릭은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들쥐들은 프레드릭과 시와 예술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찬사를 보낸 것입니다. 들쥐들은 예술이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예술이 어떻게 영혼을 위로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도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프레드릭의 예술

    이제야 그림책 <프레드릭>이 제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겠습니다. 그림책 역사상 가장 사랑스런 예술가인 프레드릭은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제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그림책 <프레드릭>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살짝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글을 읽는 것만으로 이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직접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부디 안단테로 읽어 주세요.

    프레드릭이 커다란 돌 위로 기어 올라가더니, “눈을 감아 봐. 내가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 줄게. 찬란한 금빛 햇살이 느껴지지 않니…….” 했습니다. 프레드릭이 햇살 얘기를 하자, 네 마리 작은 들쥐들은 몸이 점점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레드릭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요? 마법 때문이었을까요?

    -본문 중에서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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