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의 추악한 마피아들
    언제나 존재하는 부패의 사슬
    [책소개] 『피파 마피아』(토마스 키스트너/ 돌베개)
        2014년 06월 14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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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 발휘하는 피파(FIFA)의 추악한 민낯

    최근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정과정에서 우리 돈 5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뇌물이 오갔다는 대형 스캔들이 불거져 전 세계 언론이 사막의 열기만큼이나 뜨겁다.

    애초 한국, 일본, 미국, 호주 등 막강한 후보국들을 제치고 변변한 경기장조차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막국가 카타르에 월드컵 개최권이 돌아간 직후부터 이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더구나 2018 러시아 월드컵과 쌍을 이뤄 한꺼번에 선정되는 과정 자체가 상당한 의혹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동안 피파(국제축구연맹)와 관련한 부패혐의는 심심치 않게 각국의 언론과 인터넷을 달군 단골소재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 20년간 피파의 심각한 부패상을 철저히 파헤쳐온 탐사전문기자 토마스 키스트너의 <피파 마피아>라는 시의적절한 책이 출간되었다.

    독일 신문협회가 매해 수여하는 기자상인 ‘테오도어 볼프상’을 수상한 키스트너는 2006년에 ‘올해의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선정되었으며, 스포츠 정치와 스포츠의 조직범죄라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베테랑 기자다.

    2012년에 독일에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미 유수한 매체들로부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책”이자 “올해의 책”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저자는 “피파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몇 안 되는 기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2006 독일월드컵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수많은 독어권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기억에 생생한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등을 둘러싼 숱한 의혹과 비판이 저자의 생생한 취재를 바탕으로 서술되어 있어 국내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특히 카타르와 러시아의 월드컵 개최국 선정과정에 대한 정황이 자세하게 밝혀져 있어 최근 스캔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에도 그만이다.

    “이 책은 여러분을 위해 써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탄생했습니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팬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성숙한 판단력을 갖춘 시민에게 이 보고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집필 의도를 밝힌 저자 키스트너는 이어서 ‘세월호’의 비극을 언급하며 이익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이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다는 점, 독립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족벌경영이 판을 치면서 이해당사자끼리 서로 이익만 키워주는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을 직시하자고 호소한다.

    바로 그래서 오락산업의 가장 통제받지 않는 부문인 프로축구 역시 인간의 인생을 지배하는 권력과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받아서는 안 되며 축구는 종교가 아닐 뿐더러 좋은 가치의 모범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스포츠 경제, 스폰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 공을 둘러싼 비즈니스일 따름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경기 그 자체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며, 만성적인 부패문제로 고질병을 앓고 있는 피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시민이 철저한 감시자가 되어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에 동참하자고 호소한다.

    피파마피아

    호르스트 다슬러: 오늘날의 피파를 만든 실제적인 주인공

    이 책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피파의 현 회장 제프 블라터는 물론이고 전 회장 주앙 아벨란제, 최근 스캔들의 주인공인 카타르의 빈 함맘, 사무총장 제롬 발케, 미셸 플라티니와 잭 워너, 축구영웅 펠레와 베켄바워, 회장 선거에서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스웨덴의 요한손, 미국 도박업계의 대부 척 블레이저, 2011년까지 피파위원을 지낸 정몽준 전 월드컵준비위원장, IOC 전 회장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 등등 작게는 일국에서부터 넓게는 거의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인물군들이다.

    이들은 몇십 년에 걸친 피파의 고질적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의 인물이 펼쳐가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스릴러나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흥미로운 점은 피파와 IOC 회장단, 사무총장들을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인물이 현대 스포츠 마케팅을 새롭게 구축한 가공할 위력의 소유자 호르스트 다슬러라는 점이다.

    그는 ‘아디다스’의 창업주인 아돌프 다슬러의 아들로서 아디다스를 세계 최대의 규모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수영용품 제조업체인 아레나를 창립한 인물이다.

    아돌프는 ‘푸마’의 창업주인 친형 루돌프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인 인물이었으며 서로 피를 볼 정도로 평생 숙적이었던 두 집안의 증오는 아들 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호르스트와 사촌 아르민은 경기장의 선수들보다 더 격렬하게 싸웠다.

    호르스트는 1974년 당시 피파 회장 스탠리 라우스를 몰아내려는 부패의 원조 주앙 아벨란제를 도와 그를 회장 자리에 앉혔으며, 1982년에는 스포츠 에이전시인 ISL을 세워 피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내 호르스트 다슬러는 스포츠용품 시장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좋은 목표를 찾아냈다. 아예 스포츠 자체를 거래품목으로 만들어버렸다. 남은 일은 스포츠 행사를 마케팅하는 것뿐이었다.

    다슬러 사람들은 곧 새로운 경쟁 분야를 만들어냈으며 연맹 귀족들을 지배하는 일 외에도 갖은 수단을 동원해가며 음모를 꾸몄다. 국제스포츠연맹은 면세특권과 더불어 사실상 부패추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스위스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날 스위스에 국제스포츠연맹들이 그토록 많이 몰려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연맹들에서는 그때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세계가 구축되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자율적인 스포츠라는 육중한 철문 뒤에 오늘날까지도 잘 숨겨져 있다. 방송 중계권과 광고권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은 임원들의 자신감을 한껏 부추겼다. 1980년대 이후 스포츠연맹의 정상급 인사들은 풍족하고도 화려한 인생을 누렸다.

    이후 끊임없이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고 이로써 자리를 늘리며 자문역과 전담인력을 선정하고 배정하는 등 무수한 꼼수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기생 인간들의 네트워크가 짜였다. 바로 이들이 국제스포츠의 부패 온상을 이룬다.

    속내를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 오늘날 세계 스포츠는 전모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인맥이 숱하게 가지를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겉보기는 기만일 따름이다.

    실제로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이들은 다슬러가 1970년대부터 키우고 구축해온 인맥이다. 소수의 인물들에 장악당한 국제스포츠연맹들은 오늘날 전 세계적인 비난의 과녁이 되고 있다. ‘투명성’과는 아예 담을 쌓은 만성적인 부패와 족벌경영, 갈라먹기, 엿듣고 엿보기 관행이 일상화된 난장판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피파 관계자 어느 누구도 회장의 연봉이 정확히 얼마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며(심지어 부회장마저 그렇다),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으로 벌어들이는 40억 유로(!)의 지출내역조차 투명하게 밝혀지는 일이 없는 이 조직은 이미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기는커녕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부패상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에 영국 <선데이 타임스>의 폭로로 다시 불거진 카타르 뇌물 스캔들과 블라터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2015년이 과연 분수령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개최국의 월드컵 법마저 바꾸게 하는 마피아의 위력

    2014 브라질 월드컵이 곧 개막됐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책에 서술된 브라질 현지의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내 월드컵은 교육과 건강이다!” “우리는 월드컵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과 교육이다!” 월드컵에 반대하는 브라질 국민들의 분노에 찬 시위에서 터져 나온 구호는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브라질에서 열린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 이후 값비싼 축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항거가 줄을 이었다. 현지에 진출해 있는 현대-기아 자동차의 피해도 언급되어 있다. 실제로 벨루오리존치에 있는 기아자동차 공장은 시위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거듭 시설이 파괴되는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현대 지점 역시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는 멀쩡했다.

    키스트너는 이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밝힌다. 현대와 기아는 고객의 ‘축구 열정’에 맞춰 마케팅 전략을 짰지만 이번만큼은 브라질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브라질 국민들을 이토록 화나게 만든 것은 바로 정치가와 축구 행정가들이 서로 결탁해 피파를 위한 월드컵 법을 상정함으로써 피파를 식민지 점령군처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특별법안’은 무엇보다도 자국의 소상인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고, 특정 피파 스폰서 기업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 수 있게 허락해주었다. 지나칠 정도로 격정적인 관중 때문에 벌써 오랫동안 경기장에서는 철저히 음주를 금지해온 법을 단숨에 허물어버리고 피파 스폰서에 특혜를 준 것이다.

    월드컵 법령은 더욱더 어처구니없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지자체에 월드컵을 위해서라면 법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빚을 끌어다 써도 좋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피파와 스폰서에 면세혜택까지 주어진다.

    어려운 경제 사정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내팽개친 채 특권층의 주머니 불리기에만 급급한 이런 행태가 과연 브라질만의 일일까? 월드컵은 진정 누구를, 무엇을 위한 축제인지 전 사회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식이라면 월드컵은 “가장 강력한 감정발전기”인 축구를 이용한 부패세력들의 어마어마한 돈 잔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축구를 둘러싼 비즈니스 세계와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기

    블라터의 후계자가 될 야망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제롬 발케는 축구라는 세계가 현실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브라질에서 완벽하게 대변했다. 이미 발케는 축구 임원의 냉소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실언을 한 바 있다. “월드컵을 조직하는 데 좀 덜한 민주주의가 훨씬 더 낫다!”

    발케는 ‘강한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수장, 이를테면 2018 월드컵의 푸틴과 같은 국가 수장’을 갈망했다. 안정적인 민주주의는 아무런 마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스포츠 이벤트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라는 독재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견해다. 민주주의는 거치적거린다! 이게 국제축구를 주무르는 무리의 주장이다.

    그 무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경구가 바로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의 것이며 서로 뒤섞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과 정치적 무지가 결합한 결과, 그들은 휴머니티와 인권, 상식, 법 따위는 깨끗이 무시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회장 선출과정이나 월드컵 개최국 선정에는 늘 어지럽게 돈 봉투가 오가며 심지어 ‘장마리 베버’라는 돈 가방 전문 배달부조차 두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비밀정부 역할을 하는 보안업체까지 가동해 상시적으로 비밀요원과 스파이를 활용하며 도청과 협박, 폭로, 회계조작, 각국 심판과 피파위원 매수 등 온갖 추악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

    스포츠 권리와 관계된 각종 회사와 재단을 통해 수많은 비밀계좌로 돈을 빼돌리는 한편, 세금 오아시스인 스위스는 그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알프스 산골 마을 비스프에서 태어난 제프 블라터는 스위스 취리히 시당국이 자신과 피파에 매우 우호적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스위스 국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2010년 ‘올해의 어불성설’로 ‘피파 윤리위원회’를 꼽았다. 블라터 체제하의 피파는 이미 부패의 동의어가 된 것이다.

    피파라는 거대 조직이 오늘날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이권만이 최고의 가치인 비즈니스 세계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다시 뇌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카타르 문제를 짚어보자. 특히 그동안 수많은 의혹의 도마 위에 오르내린 ‘카타르 투자청’은 가장 공격적인 아랍 국가 펀드로 꼽히며, 최소한 750억 달러를 외국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가스’나 ‘카타르 재단’과 같은 다른 흥미로운 기관도 많다. 플라티니의 아들이 회장을 맡은 스포츠 기업 ‘카타르스포츠 인베스트먼트’QSI는 물론이고 스포츠 보안업체 ICSS도 주목의 대상이다.

    카타르는 막강한 재력으로 지구상의 어느 나라와도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며, 액화가스의 생산은 카타르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독일에서 카타르는 폴크스바겐과 포르셰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스위스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최대 단독 주주다. 잉글랜드에서는 바클레이스뱅크의 대주주이며, 런던의 쇼핑 성전 해롯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도하를 통해 에너지를 확보한다.

    세계 챔피언이자 유럽 챔피언인 스페인에서 카타르는 심지어 터부를 깨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클럽 ‘FC 바르셀로나’는 100년 넘게 지켜온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유니폼 광고를 시작했다. 클럽 회장 산드로 로셀은 카타르 재단의 매력적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FC 바르셀로나’는 2011년 여름부터 2016년까지 2억 5,0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이는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스폰서 계약이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이권이 걸린 알짜배기 사업을 잃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피파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갑질’을 계속해올 수 있었다. 물론 비즈니스의 기회주의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 일부다.

    경제계의 막강한 스폰서들은 월드컵이라는 상품, 곧 그 주인인 블라터와 그 무리 앞에 겸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이 상품이야말로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광고효과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굴다가는 언제라도 광고주가 뒤바뀔 수 있다. 그것도 시장의 직접적인 라이벌에게 빼앗긴다면 정말 치명타를 입는다. 그만큼 경쟁자들은 끝 모를 줄을 서서 블라터 군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돈을 주는 광고주는 임원들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도 그저 조용히 넘어가려고만 한다.

    사정이 이런 한, 피파 귀족들은 거리낌이 없다. 막후에서 기업에 광고를 빼앗길 위험이 크다고 압력을 행사한다. 의심이 가고 아니꼬워도 스폰서는 광고를 포기하느니 부패한 임원의 비위를 맞추는 쪽을 택한다. “코카콜라가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면 피파는 펩시에 아양을 떤다. 아디다스나 소니가 실제로 광고를 빼겠다고 하면, 나이키와 삼성이 이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반면 피파의 최고 스폰서인 에미레이트항공은 왜 피파 같은 조직을 지원하느냐는 승객들의 부정적 반응에 스폰서 관계를 2014년을 넘어 연장하지 않을 것을 심각하게 검토하는 중이라고 한다. 피파와 일하는 게 오히려 브랜드에 장기적인 피해를 안길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각국의 과잉경쟁도 문제다. 이를 빌미로 피파는 그들 패밀리를 위한 거의 초법적 수준의 특혜(특별한 환율 규정 보장, 입출국 시의 무조건적인 승인, 각국 정부의 특급기밀에 속하는 정보까지도 접근할 수 있는 권리 요구, 돈세탁 방지법에 예외조항 둘 것 등)를 요구하며 각 나라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묵인, 방조해왔다는 사실은 경각심을 일깨운다.

    키스트너는 이렇게 역설한다. “사안은 정치가가 스포츠의 오만방자한 권력욕에 얼마나 깊숙이 연루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회 유치를 위해서라면 그저 눈 질끈 감고 모든 걸 받아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우상을 떠받들기 바쁜 세상에서 누가 흥을 깨는 역할을 자청하겠는가? 민족주의에 취한 스포츠 열기는 국가를 떠받드는 모든 합리적 가치를 질식시키고 만다.”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를 키운 원인으로 꼽는다.

    또한 미디어의 행태도 문제다. 저자에 따르면 미디어가 덧칠하는 축구의 이미지는 워낙 강렬해서 교양과 지성이 균형추를 잡아주지 못한다. 게다가 미디어, 심지어 공영매체조차 정작 배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시청자를 열정적인 축구팬으로 바꾸어놓는 일이 훨씬 더 간단하고, 무엇보다도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경기중계는 영웅 만들기나 감동의 눈물 짜내기, 국가 간의 경쟁심을 부추기는 쪽으로 강세를 옮겨갈 뿐이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스포츠 기자는 일반인보다 속내를 좀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 뿐, 팬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부패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은 드물다. 기자는 축구를 마치 자기 일인 양 열정적으로 보도해 블라터의 천국놀이를 더욱더 높이 끌어올릴 뿐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 모든 부패에 눈을 감는 대가로 소중한 혈세의 낭비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의 건강한 현실감각이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전 세계는 지금 축구 때문에 그야말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국제축구사업은 너무나도 큰 악마적 매력을 발산한다.

    “블라터 휘하의 국제축구는 그 어떤 종교도 능가하는 차원에 올라섰다. 우리 시대에 축구는 최대의 블랙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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