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어문화축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기고]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써내려갈 것이다"
        2014년 06월 09일 04: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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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가시화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때문에 지난 6월 7일에 신촌에서 열린 이번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다른 때보다 더욱 소중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거리에 모여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세상에 보이는 행사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서로 삶의 이야기와 인권 상황을 공유하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외친다. 올해 축제 참가자들은 시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그러나 이번 퀴어문화축제는 온전히 진행되지 못했다. 보수단체와 극우기독교계 등,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축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껏 그래왔듯 “동성애는 죄”, “동성애는 질병”,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이제는 시국을 운운하며 “지금이 동성애 축제 할 때냐”고 축제 참가자들의 도덕성을 공격했다. 마침내 축제의 꽃인 퍼레이드 시간이 되었을 때,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앉거나 드러누워 축제 참가자들의 앞길을 막았다.

    이 날 출동한 경찰은 다른 집회에서는 들은 적이 없는 횟수의 너그러운 해산명령을 반복했고,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무려 약 4시간 동안 축제 참가자들의 발을 묶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축제 참가자들은 해가 떨어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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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 퀴어문화축제 모습 (출처”: 공익인권재단 공감 트윗)

    “추모정국에 동성애 축제가 웬 말이냐”?

    이번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주요한 비난 중 하나는 ‘시국이 이러한데 동성애 축제가 웬 말이냐’는 것이다. 일단 퀴어문화축제의 주체와 참가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이다.

    퀴어문화축제를 ‘동성애 축제’라고 부르는 것은 퀴어문화축제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물론 퀴어문화축제가 정말로 ‘동성애 축제’라 하더라도 시국을 근거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시국’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 그 이후의 정국을 말한다. 지난 4월 16일, 바다 한복판에서 산 사람 수백 명의 목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본의 이익과 책임자들의 책임 떠넘기기가 사람의 목숨에 앞섰다.

    분노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경찰이 막았다. 언론은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해 특종, 또는 돈을 물어다 줄 ‘떡밥’성 보도를 양산해내기 급급했다. 이 모든 과정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벌어진 일들 중 상당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곧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며,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5월 17일, 5월 18일 이틀 사이에 약200 명의 시민이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연행 당했다. 연행당한 시민들 중에는 내 친구들도 있었다.

    5월 19일. 나는 <안녕들하십니까> 네트워크 사람들과 함께 연행자들이 갇힌 경찰서를 방문한 뒤, 지난 이틀간 경찰에 의해 자행된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1인시위에 참여했다.

    나 역시 시국이 참담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를 모른 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국이 이러하니 퀴어문화축제를 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처음부터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복을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동성애는 물러가라” 노래를 불렀다

    성소수자에 대한 개념들 중 ‘커밍아웃’과 ‘아우팅’이라는 것이 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범위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아우팅은 성소수자 본인이 아닌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들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일상을 위협받을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

    성소수자의 자긍심과 인권을 외치는 일은 단순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불과 2년 전, 나는 종로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2011)을 겪은 뒤 지속적으로 외상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 2012년 봄. 응급실에 실려 간 나는 꾸역꾸역 삼킨 약물을 콧구멍 목구멍을 지나 뱃속에 닿은 호스로 빼내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내가 성소수자로서 겪은 참담한 일들을 이 한 번의 자살시도로 다 설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성소수자는 하나하나 사건으로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반(反)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잔혹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거리가 성소수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는 날은 1년에 단 하루, 퀴어문화축제 날이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세월호’ 추모 정국을 운운하는 동시에 퀴어문화축제를 ‘죄악에 물든 음탕한 타락자들의 축제’라는 식으로 매도했으며, 그러므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주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발언 그 자체로 매우 위협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함과 부패를 드러낸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미 전국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 사건은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그러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아닌 누구도 감히 당사자성을 주장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이다.

    그런데 이렇듯 명백한 타인의 아픔을, 또 다른 타인을 혐오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소비하는 주장은 너무나도 지독했다.

    퀴어문화축제 당일. 예고된 대로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퀴어문화축제 현장에 나타나서는 축제를 방해했다. ‘동성애는 죄악’, ‘동성애는 질병’ 따위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던 사람들, 축제 참가자들에게 ‘회개하라’며 통곡 기도를 하던 사람, 퍼레이드를 앞둔 참가자들 사이를 괴성을 지르며 가로지르던 사람,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특히 나를 소름끼치게 한 건 상복을 입은 한 성소수자 혐오자 무리였다. 그들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퀴어문화축제 행사장 곳곳을 거닐면서, “동성애는 물러가라 물러가라~”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를 흥겨이 불렀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축제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축제’가 아닌 ‘퀴어(queer)’였다. 정작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축제 시작 전에 공식적인 묵상의 시간을 가졌고, 축제 장소 입구와 각 부스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거나 서명에 동참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퀴어문화축제 일부 참가자들의 복장이 “노출이 많고 불량하다”며 화를 냈다. 일단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이 남의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복장이 단정해야 한다며 꾸중하는 모양새부터가 황당하다.

    또 나는 이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가 아닌 다른 축제, 행사, 또 일상과 사회에 만연한 선정적인 정보들과 성 상품화 등에 대하여, 본인들이 퀴어문화축제에 가하던 것과 같은 수준의 비난을 가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은 ‘노출’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노출’이다. 오히려 퀴어문화축제의 의의와 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오직 남의 ‘노출’, ‘항문’, ‘섹스’, ‘체위’ 등에만 집착하는 이 사람들의 머릿속이야말로 문란하기 짝이 없다.

    이 날, 경찰은 누구를 어떻게 보호했나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끔찍한 만행보다 더욱 나를 분노케 한 것은, 퀴어문화축제 당일 경찰의 행동이었다. 경찰은 축제 참가자들을 보호한다며 축제 장소 곳곳에 주르륵 서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시비를 걸고 다니는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만행을 수습하기 위해 축제 기획단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일동이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아스팔트 바닥에 앉거나 드러누웠다. 경찰이 이들을 곧 둘러쌌다. 그런데 이 상태가 4시간 넘게 지속되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참가자 행렬의 맨 앞과 맨 뒤를 거듭 왕복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록 상황은 그대로였다. 경찰은 그저 성소수자 혐오자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경찰이 길 막은 사람들 연행한다더라”는 소식이 들렸지만, 경찰은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일동의 퍼레이드가 가로막힌 상황을 해결하지는 않았다.

    퍼레이드가 가로막힌 지 약4시간이 지났을 즈음. 참가자 행렬 뒤쪽에 서있던 내 시야에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참가자 일동이 선 길의 인도와 도로 사이에 벽을 치듯 우르르 몰려왔다.

    나는 경찰에게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하고 물었다. 첫 번째 경찰은 “저도 몰라요”하고 대답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불뚝 화가 난 내가 “아니 경찰이 설명을 못 하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고요?”라고 묻자, 두 번째 경찰이 내게 “여러분을 보호해드리려고 이러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는 뭐 한 거냐고요. 4시간 동안 뭘 한 거예요?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내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는 경찰은 없었다.

    늦은 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축제 참가자들은 경로를 변경하여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축제 참가자들은 어둔 밤거리를 밝히며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외쳤다. 신촌 밤거리를 한 바퀴 돌고 오는데, 퍼레이드를 막고 있던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여전히 아까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나는 이 날 행사가 모두 종료된 이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퍼레이드를 한 건 한 거고,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가시화된 지 20주년을 맞은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경찰이 보여준 행동에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가 걱정이다. 내년 퀴어문화축제는 무사히 열릴 수 있을까? 아니, 내년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달 말에 있을 대구 퀴어문화축제는 무사할까? 경찰들에게 있어서 성소수자는 시민이기는 한 걸까?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직접 거리로 나와 자신들만의 성전을 치르고 전의를 불태웠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과격해질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사랑이 혐오를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성소수자를 괴롭혀서 없애든, 저들이 늘상 말하듯 ‘교정’ 내지는 ‘치료’ 하든, 결과적으로 성소수자들이 이 사회에서 사라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퀴어문화축제 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말로만 듣다가 직접 목격한 시민들은 열정적으로 각 부스의 서명에 동참했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엽기적인 축제 방해 행동은 그들이 이성이 마비된 폭력배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일동은 이 날의 축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을 축제 기획단은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퍼레이드 공연 차량 위에 올라간 참가자들은 길이 막힌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참가자들이 지치지 않게 계속 노래하고 춤을 췄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만행과 이에 대한 경찰의 방조에도 불구하고, 축제 참가자들은 끝끝내 신촌 밤거리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 제 글을 실어주신 레디앙, 그리고 글의 검토를 도와주신 김후주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필자소개
    트랜스젠더 · 바이섹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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