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요버스와 저상버스
    [에정칼럼] 문화적 관행과 승하차 인프라도 신경써야
        2014년 06월 09일 1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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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무상교통을 내걸었던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본선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그리고 세월호 사태를 거치며 지방선거 분위기가 정책경쟁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시내버스 관련 이슈들도 언론과 시민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졌다.

    시내버스의 공공성이 문제가 다각도로 의제화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무척 아쉬운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타요버스는 계속 달렸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조용하고 돈 안 쓰는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서울시의 ‘타요버스’는 정말이지 그런 몫을 톡톡히 해낸 존재였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타요버스의 배차 시간을 파악해서 투어에 나서야 했다. 타요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중고등학생, 심지어 이삽십대 직장인들도 환호를 지르며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저 버스의 앞면과 내부에 만화캐릭터의 눈과 입 표정의 스티커와 장식을 붙인 것뿐이고 그것도 서울시가 특별히 예산을 투여한 것도 아님에도, 타요버스는 박원순 후보의 공감과 소통 능력을 과시하는 듯했다.

    타요버스

    타요버스(방송화면)

    우리가 잘 아는 또 다른 버스가 있다. 장애인운동 진영이 10여년간 싸워오면서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저상버스다. 지금 비교적 도입율이 높은 서울시도 아직 30% 수준이다. 그런데 도입율 자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제 얼마나 이용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실은 나도 장애인이동권 투쟁 때 말고는 휠체어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오르는 것을 며칠 전 처음 보았다. 서울에서도 장애인 시설이 많은 곳은 더 잦은 이용이 있을 것이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저상버스를 타는 휠체어 장애인은 무척 드물 것이다.

    몇 초간 신호음이 울리고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램프를 타고 올라왔지만, 승객들은 이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휠체어 장애인석에 앉아 있었다. 자리를 비켜주고 좌석을 접어야 한다고 말하고 나섰지만 나 역시 휠체어 고정과 결박 위치를 제대로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버스기사님이 와서 자리를 챙겨주고 행선지를 물어본 후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고 출발하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이 승객은 저상버스를 탄 경험이 많아 보였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오르는 것은 서울 시민에게 아직 낯선 일임을 보여준다.

    저상버스는 대략 세 대에 한 대 꼴로 오는 것이니 휠체어 장애인이 이를 기다리는 것도 불편하고, 러시아워의 만원버스라면 휠체어를 가지고 오를 엄두가 더욱 나지 않을 것이다. 일부 성마른 승객들의 시선도 의식될 수 있고, 혼자 승하차와 요금 수납을 담당하며 정시 운행을 책임져야 하는 기사가 지게 될 부담도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서울시의 휠체어 장애인들 다수는 저상버스 보다는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선택한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레 해결되려면 한국의 도시와 시민들의 삶이 보다 여유로와지는 수밖에 없는데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지방정부의 자세와 의지도 여전히 중요하다. 지난 해 서울시는 폐차 대상의 저상버스가 60대 생겨나면서 이 분량에 대해 계단이 하나 있고 대신에 리프트를 장착한 ‘중저상버스’ 도입을 검토한 바 있었다.

    일반 버스에서 저상버스로 전환할 때는 국고 지원이 되지만 폐차시에는 그런 지원 기준이 없고, 완전 저상버스 보다 중저상버스가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예산 제약 속에 저상버스 보급율을 올리기 위해 그런 고민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리프트가 있다 하더라도 휠체어 승하차 시에 훨씬 시간이 더 들고 위험할 수 있는 중저상버스를 저렴하다는 이유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이에 반발한 장애인 단체들이 박원순 시장과 면담을 가졌고, 박 시장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수긍하여 완전 저상버스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 시절부터 신규 도입된 버스인데도 차체 구조는 저상형인데 출입구에 램프 대신 계단이 설치되어 투입된 경우도 있었음을 보면 서울시의 저상버스 정책은 박 시장 이전부터 빈틈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 운동도 제때 문제제기를 못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타요버스에 비할 수 없는 긴요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저상버스는 그러나 타요버스 만큼의 관심과 환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도 쉽게 오르는 타요버스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이제까지는 서울시도 장애인 운동 진영도 주로 설비와 제도의 도입에만 신경을 써 온 게 아닐까? 휠체어 장애인이 실제로 이용 빈도를 늘리고, 그것을 기사와 비장애인 승객에게 일상으로 만드는 실천을 고민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저상버스 몇 대 도입 예산 얼마, 도입율 몇 퍼센트라는 목표와 더불어 휠체어 장애인의 저상버스 이용을 실제로 가능케 할 승하차 인프라와 문화적 관행까지 세심히 논의하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장애인운동 진영에게만, 선거 때에만 주어질 질문들은 아닐 것이다. 타요버스가 아이들만 타는 버스가 아니듯, 저상버스도 우리 모두가 요구하고 발전시켜야 할 버스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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