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의 시대'에서 '도시의 시대'로
    [책소개] 『푸드 앤 시티』(제니퍼 코크럴킹/ 삼천리)
        2014년 06월 07일 1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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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테라스에서 로즈메리나 바질 화분 몇 개에 물을 주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면 가던 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오랜 버릇이 있다. 한참 동안이나 극성스러울 정도로 맞장구를 치며 어떤 흥미로운 식용작물을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해 수다를 떨고는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제라늄이나 로벨리아 화분만 있던 아파트 발코니에선 철제 난간 주위를 감고 있는 토마토나 오이 덩굴이 점점 더 많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후 몇몇 유별난 집주인들이 집 앞 잔디밭을 파헤치고 덩굴제비콩이나 완두콩, 당근을 심어 깔끔하게 정돈된 밭이랑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시 조례를 그렇게 교묘하게 무시하지 않으면서 뒷마당에서 닭이나 꿀벌을 치고 있었다. 마침내 내 고향뿐 아니라 내가 방문한 다른 도시에서도 왜 공동체텃밭의 면적이나 개수가 나날이 급증하는지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푸드 앤 더 시티》 서문에 저자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자연스레 변화해 온 도시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캐나다 애드먼턴에서 겪은 저자 개인의 경험이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언제까지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에 의존할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나라일 뿐 아니라 도로 포장률이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산업화된 국가이다. 그만큼 식생활도 급격히 산업화되었고 식량자급률에 적신호가 들어온 지도 오래다.

    주말이면 카트를 끌고 대형마트를 순례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었고, 식당 메뉴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멀리 전 세계 농장과 바다에서 온다. ‘없는 게 없다’는 마트 진열대에서 먹거리를 선택하여 카트에 넣지만, 우리는 종류도 모양도 규격화된 ‘산업적 식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수동적 소비자일 뿐이다.

    이 책의 특징은 어떤 강력한 주장이나 논리보다, 눈앞에 드러난 진실을 통해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하고 설득한다. 사람들이 예전에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하고 물었다면, 이제는 “오늘 저녁에 먹을 것은 어디에서 올까?” 하고 묻고 있다.

    위험한 도시, 불안한 식량안보

    포장식품과 패스트푸드가 넘쳐나고 농약과 항생제, 방부제로 좋은 빛깔을 내는 산업적 식품은 이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환경과 에너지, 생태계, 안전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와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한 관심사를 반영하듯 구제역,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유기농, 웰빙, 무상급식 같은 이슈는 언제나 미디어의 단골 메뉴이다.

    이제 지구 어느 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배경에는 십중팔구 식량이 있다는 주장이 마냥 과장된 말은 아니다. 2007년 말과 2008년에 걸쳐 무려 30여 국가가 식량 폭동을 겪었다. 미국에서 어린이 1,720만 명을 포함해 인구의 15퍼센트인 5천 만 명이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

    푸드 앤 시티

    글로벌 식품 체계와 지속가능성

    《푸드 앤 더 시티》는 그저 답답한 도시 공간에서 살며 생명이 깃든 흙을 밟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책의 전반부는 글로벌 식품 체계와 생산, 소비자, 식량 위기의 현실을 각종 통계와 자료를 통해 한눈에 보여 준다.

    몬산토와 카길을 비롯한 ‘빅 애그’(농업 대기업), 월마트와 코스트코 같은 대형 체인점, 이른바 녹색혁명과 유전자혁명이 20세기 내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급격한 변화는 그저 ‘먹거리’의 차원을 넘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에너지, 자원, 지구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선진국일수록 비만, 당뇨, 심장병 등 음식 관련 질병에 들어가는 의료 예산이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시농부, 양계와 양봉까지

    이 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식품 체계의 대안을 찾아 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다. 도서관이나 책상이 아니라 5년 걸쳐 전 세계 노시농업과 먹거리 혁명의 현장을 찾아내고 발로 뛰며 인터뷰하고 메모하고 사진 찍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인류의 식생활과 도시의 모습을 얼마나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 생생하게 다가온다.

    다국적 농업회사와 대형 식품 체인점에 포위된 지구 곳곳의 시민과 혁신적인 지방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그런 힘겨운 ‘싸움’의 결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그저 화단 가장자리나 화분에 오이나 상추를 길러 먹는 일뿐 아니라, 닭을 기르고 꿀벌을 치고 포도를 수확하여 판매용 와인을 생산하는 일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조명하는 세계 주요 대도시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찬란한 현대 문명의 상징이 아니다. 바야흐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의 주요 대도시에서 텃밭과 과수원을 가꾸고, 닭과 돼지를 기르고 꿀벌을 치고 있다.

    국가의 시대에서 ‘도시의 시대’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특별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를 보여 주는 장면일 뿐이다.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깊어지고, 도시농업의 형태와 내용, 아이디어도 훨씬 다양해졌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는 확산되고 있고,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에 밀려난 농민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도시농업이 그저 한때 반짝하는 녹색 ‘유행’이 아니며, 이 운동의 열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은이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3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본다. 식량 생산과 체계를 혁신하는 일이 시민운동의 차원을 넘어 이제 도시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업과 식량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광역 자치단체의 관할이었다. 21세기에는 국가나 국민적 의제보다는 도시 문제가 변화의 새로운 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도시농업은 도시가 계획되는 방법, 도시가 작동되는 방식, 도시의 외관과 인상, 냄새까지 모두 바꾸게 될 것이다. 이른바 ‘도시 혁명’이다.

    2008년 유엔 인구기금(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 농촌보다 도시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같은 선진 공업국 인구의 80퍼센트가 이미 도시에서 살고 있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은이는 바로 지금, 도시농업이 도시 공간을 설계하고 이용하는 방법, 식량을 공급하는 방법, 식량 생산자와 지구를 대하는 방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전 세계 도시농업 혁명의 현장을 가다!

    “나는 오랜 노력과 긴 여행을 통해 열정이 넘쳐흐르는 젊은 초보자뿐 아니라 도시농업 운동에 투신해 온 진보적인 선구자들을 찾아냈다. 캐나다 토론토의 뒷마당에서 닭 몇 마리를 치는 사람들, 뉴욕과 런던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원, 도시농업을 국가 식량 체계의 주춧돌로 받아들인 쿠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도시 먹거리 혁명의 씨앗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24쪽)

    # 파리

    도시농업의 발상지 파리 시 행정구역 안에는 여전히 포도밭이 10곳 있고, 파리 시 공식 웹사이트에는 58곳이나 되는 공동체텃밭 사이트가 올라와 있다. 파리 시청,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그랑팔레 옥상, 에펠파크 호텔 발코니에 설치된 벌통에서 꿀이 채취되어 판매되고 있다.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는 루이 14세 때 조성된 ‘포타제 뒤 루아’(왕의 채소밭)에 아직도 채소 400종과 과실나무 5천 그루가 자라나고 있다.

    # 런던

    찰스 황태자가 도시농장·공동체텃밭협회의 후원자이고, 런던 도심에 도시농장이 9곳 있고, 런던 대도시권에 16곳 운영되고 있다. 런던 시에서 지원하는 ‘캐피털 그로스’ 네트워크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먹거리 재배 공간 2012곳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영국 전역에 걸쳐 공동체텃밭인 ‘얼로트먼트’ 33만 곳에서 연간 247,500톤의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얼로트먼트를 임대받기 위해 10만 명의 경작자가 대기하고 있다.

    # LA

    가장 빈부 격차가 큰 도시이며, 무절제한 소비가 판을 치는 LA는 시민 1백만 명이 식량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의 ‘기아 진원지’이다. 1990년대 내내 페어뷰가든스 농장을 지키기 위한 마이클 에이블먼의 투쟁과 2006년 LA 산업단지 한가운데에서 당국에 맞서 식량을 재배하기 위해 이주자 농부들이 벌인 투쟁을 살펴본다. 이런 투쟁의 전설적인 도시농부와 인터뷰하고, 새롭게 희망을 일구는 도시농업의 꿈을 소개한다.

    # 밴쿠버

    캐나다 환경운동의 발상지이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밴쿠버에서는 도시농업이 일반화되어 있다. 식량보장, 영양, 농지 이용, 도시계획 간의 복잡한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풀뿌리 단체인 ‘밴쿠버 푸드 태스크 그룹’(Vancouver Food Task Group)이 창립되었고, 2003년에는 밴쿠버 시의회가 ‘밴쿠버 시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식량 체계’의 개발을 지지하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도시영농의 새로운 모델인 ‘스핀’(소규모 집약) 농업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도시로 확산시키고 있다.

    # 토론토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토론토는 세계 최고의 다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운 지방에서 온 이민자들이 사과처럼 망고도 흔히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체계를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먹거리는 곧 다문화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푸드뱅크, 푸드쉐어, 커뮤니티푸드센터, 녹색 헛간, 공공 과수원 같은 선구적인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단점유 텃밭’이나 ‘불법 양계,’ ‘도시 과일 줍기’처럼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명랑한 혁명이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 밀워키

    지렁이와 흙에 흠뻑 빠져 있는 ‘거리의 농부’ 윌 앨런을 집중 조명한다. NBA 프로농구 선수에서 존경받는 사업가, 저명한 도시농업 전문가가 된 윌 앨런은 미국 전역에 걸쳐 15개 부지를 소유한 비영리 사회적 기업 ‘그로잉파워’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먹거리는 매우 강력한 조직화 도구”라고 강조하는 앤런은 인종적 격차를 비롯하여 문맹, 범죄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하는 사회혁명의 중심에 먹거리 혁명이 있다고 본다.

    # 디트로이트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서 1950년대 인구 200만을 헤아리던 디트로이트는 끝없이 쇠락하여 지금은 전성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지난해 디트로이트는 파산했다). 도시 인프라가 무너져 내리고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전국망을 갖춘 식료품 체인점이나 대형마트가 하나도 없는 미국의 거의 유일한 대도시이다. 폐허처럼 널려 있는 공한지를 매입하여 도시농업 비즈니스 모델로 경제혁명과 도시 재생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한츠농장의 분투를 소개한다.

    # 시카고

    바빌론의 공중정원 이래 꿈꿔 왔지만, 빌딩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수직농장’은 도시농업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흙이 필요 없는 수경재배와 기무재배, 물고기 양식과 작물의 순환 체계를 활용한 양어수경 같은 실험을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더플랜트.’ 노후화된 식품공장 건물을 재활용한 이 수직농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 쿠바

    쿠바는 국가 차원에서 도시농업이 꽃을 피우고 탈산업화된 식량 체계가 확립된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하며 두 차례나 쿠바로 갔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와 미국의 봉쇄로 직면한 ‘특별시기’에 쿠바는 탈석유, 탈산업을 선택했다. 정부와 과학자들은 인간의 노동력과 값싼 유기물만 투입해 수확량을 높이는 시스템을 지원했고, 오늘날 쿠바 전역에는 오르가노포티코(유기농장)에서 신선한 먹거리가 생산되고 있다. 농민들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민시장’과 농산물 소매점이 활성화되고 있는 최근의 모습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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