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화해의 문제
피시스트는 화해가 아니라 단죄의 대상
    2014년 06월 05일 03: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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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면, “역사”란 어느 정도 현재성이 강한지 당장에 알아차리게 됩니다.

우크라이나의 중부 (키예브 지역)까지도 휩쓴 서부 우크라이나 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두 개의 “아이콘”이라면 바로 시몬 베틀류라 (1879-1926)와 스테판 반데라 (1909-1959)입니다.

전자는 일종의 “민족적 사민주의자”로 출발했다가 러시아 내전의 상황에서는 서방 지향적인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수반으로서 주로 폴란드의 하위 파트너로서 쏘비에트 적위군과 교전했다가 결국 패주하고 망명하게 된 정치입니다.

후자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지닌 인물인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 (OUN)의 우두머리로서는 처음에는 폴란드령 서부 우크라이나에서 테러리스트적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가 그 다음에 파쇼 독일 점령 시에 파쇼군과 적극 협력하면서 홀로코스트 등 초대형 반인륜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쏘련군 포로 학살 등에 적극 가담한 그의 조직이 특히 죄질이 나쁘다는 판단으로 쏘련 특무기관이 그를 전후에 계속 찾아내려고 애썼다가 1959년에 망명지 독일, 뮨헨에서 그를 처단하고 말았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이 두 개 “아이콘”은 예컨대 우크라이나에서 사는 소수자나 동부의 러시아계 주민, 아니면 좌파로서는 과연 무엇인가요?

베틀류라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반러적인 내지 반유대적인 성향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군대”라기보다는 차라리 깡패조직을 더 방불케 했던 그의 무장조직들은 내전 시기에 러시아인에 대해서도 또 특히 유대인에 대해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잔혹한 학살들을 벌였습니다.

전체 피해자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5만 명, 많게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실은 1926년 망명지 파리에서 베틀류라를 백주대낮에 처단한 학살 피해자의 친척이자 이디쉬 시인인 슬로모 슈바르츠반드 (관련 글 링크)가 이 “테러” 후에 불란서국 경철에 바로 붙잡혔다가 결국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날 정도로, “베틀류라 시절의 학살”이 악명 높았습니다.

파리의 배심원 입장에서는, 군 지도자로서 그 학살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지녀야 했던 베틀류라에 대한 이와 같은 보복성 테러가 당연했다는 것이죠.

반데라 같으면 베틀류라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경우에 속합니다. 베틀류라는 그나마 이론적으로 독립된 우크라이나를 다민족 국가로 생각할 정도로 상식이 있었지만, 반데라는 철저한 단일민족국가론자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유대인들을 “동화가 불가능한 민족”으로 지목하여 “유대인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 학살이나 추방만을 생각했습니다.

파쇼 독일 점령시에 파쇼들과 협력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이 더더욱 과격해져, 유대인/공산주의자/쏘련의 관계자와 함께 일체 폴란드계 주민들을 추방도 아닌 고문과 학살의 표적으로 지목했습니다.

국내에서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43~44년간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의 갈리치야/볼르니 지역에서의 폴란드인에 대한 학살의 희생자들은, 남녀노소를 포함하여 약 9~10만 명에 이릅니다 (관련 글 링크).

우크라이나

슈바르츠반트(왼쪽)와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의 폴란드인 학살 추모비

파쇼들에게조차도, 아이들을 환도로 두 개로 토막내고 임산부 배를 총검으로 찌르곤 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최악의 냉혈한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2010년에 서부 우크라이니식의 민족주의에 경도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체느코가 반데라에게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를 추서하자, 러시아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국제 유대인 조직들도 일제히 항의에 나섰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마이너리티들에게는 반데라와 그 추종자들은 어쩌면 독일 파쇼들보다 더 끔찍한 존재로 기억 속에 낙인돼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실상 동서부 사이의 내전이 진행되고, 그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동서부의 상호이해와 화해가 필요합니다. 화해를 위해서 결국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종의 공동의 역사의 윤곽을 잡아야 하고, “기억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봐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양쪽에서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당수가 러시아계 내지 러시아화된 동부 주민들은, 그런 화해를 위하여 아마도 러시아 제국 안에서의 우크라이나어 금지 조치라든가 우크라이나 문화에 대한 탄압책, 그리고 스딸린 이후 쏘련에서의 우크라이나 언어/문화에 대한 일종의 하위 배치, 하나의 “시골 문화”로서의 대접 등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족이 러시아족 중심의 다민족 국가에서 약간이라도 괄시를 받았다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도 레닌까지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한 저항 민족주의로서의 특색을 일부 가질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을 놓치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 속의 화해”에 노력한다 해도, 동부 주민으로서는 한 가지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을 것입니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끔찍한 학살의 기억을 남긴 베틀류라나, 우크라이나식 파시스트이자 제노사이드의 이념가인 반데라를, 아무리 “화해를 위한다” 하더라도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이나 우크라이나의 마이너리티들이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정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베틀류라의 추종자나 반데라주의자들의 행위는 “저항”의 범위를 한참 넘어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최악의 가해로 치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데라의 파쇼 독일에의 부역 행위 등은, 동구인 대부분의 입장에서는 “화해”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치명적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화해는 좋은데, 학살자들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파시스트, 일본 파시트트…이들에 대한 옹호에 반대한다

저는 요즘 우크라이나에서의 베틀류라와 반데라 논쟁을 추적하다가 문뜩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2013)가 떠올랐습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서평을 다음의 과제로 미루어야 하겠지만, 간단히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반데라나 베틀류라 류 민족주의와의 화해가 불가능한 이유와 똑같습니다.

화해는 아무리 중요해도, 파시스트적 범죄를 좋게 봐주면서까지 “화해”를 추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 책에서 시도된 일본 황군을 위한 일종의 변론이 아닌 변론은, 제 눈에서는 꼭 베틀류라나 반데라를 합리화하는 방식을 방불케 합니다.

후자 같으면 “반데라는 독일군과 갈등한 적도 있었다”든가 “독일군과 관계가 악화됐을 때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일부 유대인 피해자를 돕기까지 했다”든가 “쏘련군 관계자에 대한 학살은 쏘련군의 잔혹성에 의해 촉발됐다” 등의 논변이라면 전자는 “위안부가 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라기보다는 조선인 모집책에 의해 취업사기 비슷한 형태로 인신매매 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황군이 위안부를 단순히 성적 착취만 한 것이 아니고 일종의 구성원 취급했다, 보호까지 해준 경우가 있었다” 등의 논리를 펼칩니다.

문제는, 그 어떤 늬앙스도 사안의 핵심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데라와 독일군의 관계가 굴곡이 많긴 많아도 그는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이었고 독일 파시스트들의 하위 동반자이었습니다. 그의 피해자나 그 피해자 후계집단들은 그만큼 그의 유령과 그 어떤 “화해”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황군과 조선인 모집책들의 역할분담이 어떻게 됐든, 또 황군이 그 성노예들을 좋은 방식으로 관리했든 나쁜 방식으로 관리했든, 궁극적으로 군에 의한 여성들의 강제적 성노예화는 전례가 없는 초대형 전쟁범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일제시기 관료들이 “반공주의자”로 변모하여 세운 국가도 별다른 도움을 준 적이 없지만, 특히 피해자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거절해온 일본국과의 어떤 “화해”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아래로부터 가능합니다. 결국에 가서는 서부 우크라이나와 동부 우크라이나 가난뱅이들이 서로 손 잡을 날, 그리고 과두 재벌들과 함께 투쟁할 날은 언젠가 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강정마을과 오키나와, 한국 탈핵운동이나 밀양송전탑 반대 운동과 일본의 탈원전 운동가, 한일 비정규직 운동가들은 이미 잘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화해, 연대는 결국 민족주의의 타파를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의 국가범죄나 파쇼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을 합리화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과거에 대한 공동의 단죄와 재발방지만이, 화해와 연대의 기반이 됩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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