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의 그 정동진을 아시나요
    [기고] 또 하나의 세월호, 삼성... 6월 4일, <책 한 권, 빵 한 조각의 날>
        2014년 06월 02일 01: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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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으로부터 정확히 동쪽으로 내달으면 닿게 되는 아름다운 바닷가. 정동진을 아시나요. 일출을 보기 위해 새해 첫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곳. 정동진.

    1994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을 아시나요.  연인들이 다시 찾고 싶어하는 여행지 1순위 정동진을 아시나요.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역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정동진역을 아시나요.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최지우가 결혼신을 찍었던 정동진을 아시나요.

    아니면,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객 중 한 분이신 정태춘이 작사 작곡하고, 박은옥이 노래한 그 아득한 노래 ‘정동진’을 아시나요.

    하지만 이제 저는 그 모든 정동진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지난 5월 17일. 목숨을 끊은 한 청년을 아시나요.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해가 뜨는 곳’이어서 였다는 유서를 남겼죠.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승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램 때문이라고 적었죠.

    부모들께는 ‘저의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아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선택이 맞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장례를 치러주세요. 그리고 저의 유해는 남김없이 해가 뜨는 이곳 정동진에 뿌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겼죠.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는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어서, ‘절 바칩니다’라는 유서를 남겼죠.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고 적었죠. 고 염호석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정동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시신은 죽은 지 단 하루 만에 안치되어 있던 병원 장례식장에서 탈취 당했습니다. 삼성은 아비로 하여금 아들의 유언을 배반하도록 했습니다. 해선 안될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가족장을 하겠다고 나선 아비의 119 신고 10분 만에 수백 명의 무장한 경찰들이 기다렸다는 듯 군홧발채로 장례식장에 난입했습니다. 무슨 공무인지 말도 없었습니다. 막아서는 상주들 25명을 바로 연행했습니다. 시위 진압 무기인 캡싸이신을 마구 뿌려대었습니다. 전광석화같은 작전이었습니다.

    그런 물불 안 가리고, 전격적인 돌격작전이 세월호 참사 당시에 우리 이웃들에게 행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부산으로 시신을 유기한 공권력은 첩보 위장전술까지 썼습니다. 부산해동병원엔 영정만 모셔두고 시신은 다른 곳에 유기해 두었습니다.

    21일 화장이라고 말을 흘려두곤, 20일날 몰래 강제 화장을 시켜버렸습니다. 병원 관계자들 입막음까지 시켰습니다. 간신히 알고 찾아간 화장장에선 마지막 조문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곳 역시 경찰 병력들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가족장을 반대했던 그의 어머니조차 화장된 유골이 어디에 뿌려졌는지 현재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왜 죽어서까지 몸을 빼앗기고, 마지막 생의 의지를 빼앗기고, 상주를 빼앗기고, 유골마저 유린당한 걸까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국가의 지원과 작전과 호위를 받으며 갈 수 있는 사인의 죽음이 얼마나 있을까요.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요.

    죽은 염호석 님의 지지난달 월급은 고작 40만원, 70만원이었습니다. 살아서 그는 내내 삼성전자 명찰을 달고 다녔지만 비정규직노조를 설립하자 삼성전자는 당신과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조차 우린 당신과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고인이 일했던 부산 양산서비스 센터장은 우리가 무슨 권한이 있냐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도 본인들은 아무런 관계와 책임이 없다고 기만적이게도 노사교섭에 경총을 내세워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유령노동자들이 1만 명이었습니다. 평소처럼 대했다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왜 삼성전자는 그토록 빨리 관계도 없는 이의 죽음에 개입하고, 국가 공권력까지 무슨 용병 부리듯 긴급하게 동원해 전대미문의 시신탈취라는 만행까지를 저지른 것일까요.

    대한민국 공권력도 해괴합니다. 무슨 기업의 사병도 아니고, 한 유가족의 119신고 하나가 있었다는 빌미 하나로 며칠 동안 전국을 누비며 시신탈취와 유기, 강제 화장, 유골 은폐라는 전방위적 작전에 나섰습니다.

    유서를 통해 장례를 위임받은 노조원들과는 단 한 번의 상의도 없었습니다. 청해진해운 회장을 눈앞에 두고도 놓친 후 근 한달 동안 전국을 시끄럽게 하며 헤매는 대한민국 공권력입니다. 세월호에서 구조신호가 도착하고도 장장 1시간 30여분동안 온 국민에게 생중계를 하며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해주지 않고 모두를 생 수장시킨 공권력이었습니다.

    죽은 자에겐 어떤 인권도, 권리도 없는 걸까요?

    인간이 위대한 것은 역사적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독립유공자들은 국립묘지에 묻혀 오늘도 우리와 더불어 역사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5.18유공자들은 망월동 국립묘지에 묻혀 지금도 역사적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쟁 중의 적이라 하더라도 전사자의 유해 송환은 가장 기본적인 인도적 요건입니다.

    전 당연히 죽어간 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적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함부로 침해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건 살인보다 더 중대한 인권유린입니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삶의 권리, 자신의 역사적 삶에 대한 선택의 권리를 살해당하고 유린당한 진짜 살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선택과 자유의지는 시신이 탈취되며 비로소 살해되었고, 다시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시신이 유기되어 두 번째 살해당했고, 어미조차 접근할 수 없는 화장장에서 강제 화장당하며 세 번째 살해당했고, 그 유골조차 어디에 안치되어 있는지, 뿌려졌는지 모르는 채로 네 번째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자신의 꿈을 가질 수조차 없는 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마저 항의마저 저항마저 가능치 않은 잔혹한 세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사후 세계까지 뒤쫒아와 몇 번이고 삶을 강탈하고, 감금하고, 짓밟는 사장님과 공권력의 세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계 굴지의 다국적 재벌 삼성전자와 세월호 사고를 국가적 재난으로 만든 무능한 정부가 손을 맞잡고 너무도 신속하게 처리한 일입니다.

    아는 바대로 삼성전자는 본인들이 제품료에 포함해 선불로 받아 갔기에 당연히 지불해야 할 서비스 부문을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자회사에 외주화했습니다. 대한민국 세월호가 해운관리 감독을 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에 외주화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청해진해운이 17명의 선원 중 12명을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으로 고용해 싼값에 선박안전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많은 해경과 해군과 특수전요원들과 최첨단 군사장비들을 두고도 구조 업무를 언딘마린인더스트리와 같은 외주업체에 넘기는 이 국가와 너무나 닮아있는 일입니다. 더더욱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160여개의 외주업체를 모아 더 싼값에 서비스를 외주화했습니다.

    160여개 외주업체들은 다시 1만여명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떡고물을 나눠 먹었지요. 그 2중 3중의 다단계 아래에서 전국 1만여 명의 삼성전자 서비스 기사들은 월급제도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비수기 때는 법정최저임금 정도 벌기도 힘들었습니다. 방문수리용 차도 개인명의였고, 기름값도 본인 부담이었습니다. 연장도 본인이 구입한 개인장비였습니다. 고객이 수수료를 입금하지 않으면 수리를 담당한 기사의 노임에서 깎여 나갔습니다. 고객을 최우선으로 삼는 초일류기업 삼성전자가 행한 일입니다.

    삼성전자 제품 몇 개씩은 안고 사는 우리는 모두 매번 만나게 되는 그들이 삼성전자의 진짜 직원들인 줄만 알았죠. 왜냐하면 우리는 늘 삼성전자에 전화해 서비스를 요청했고, 늘 그들은 “띵똥띵똥, 삼성전자에서 나왔는데요.”라고 했으니까요.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배고파 못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다.” 작년 10월 ‘별’이라는 갓 돌을 맞는 예쁜 아이를 두고 자결한 최종범 님의 유서 내용이었지요. “전태일 열사처럼은 아니지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의 노동의 대가와 소비자들의 권리는 위로 빨리고 빨려 이건희 부자의 재산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청해진해운의 유병언 회장 정도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이 모든 것은 세월호에서처럼 법으로 보장받았습니다.

    정부는 2008년 연안여객선의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주었습니다. 2012년 청해진해운은 아무 걱정 없이 18년 된 노후 선박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불법개조 역시 합격판정을 받았고, 불법과적 역시 늘 합법의 서류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삼성전자의 서비스 부문 하도급 역시 명백한 불법하도급으로 직접고용 정규직화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재빨리 마치곤 혐의 없음 판결을 내려주었습니다. 이 국가는 이미 2007년 비정규직 양산법을 ‘보호법’이라는 미명 아래 풀어놓았습니다. 이 법에 따라 90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원청 사용자성을 묻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이제 다시 몇 년을 끌지 모릅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판결까지 기다리는 데만 8년여가 걸렸습니다.

    그런 대한민국 세월호 안에서 삼성은 가장 높다란 선실에, 가장 안전한 선실에, 가장 풍요로운 선실에 앉아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도 따라갈 수 없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출될 필요도 없고, 탄핵당하지도 않고, 세습이 자유로운 영원한 권력입니다.

    수많은 삼성장학생들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형식적인 3권 분립조차 거추장스러운 진정한 권력입니다. 대통령도 무섭지 않은 진보 언론들, 지식인들조차도 삼성 앞에서만큼은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합니다.

    가난한 우리 모두가 삼성을 구매하고 소비하며 키워왔고, 키우고 있는데, 어느 틈에 역전되어 삼성이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신화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미 삼성은 절반 이상의 대주주가 다국적 자본들임에도 ‘국익’이라는 가면은 벗겨지지 않습니다.

    이런 삼성의 신화를 위해 오늘 대한민국의 법과 윤리가 기울어지고 침몰해가고 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와 절대다수의 노동자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복원력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입니다. 하지만 삼성은 지금도 무노조 신화를 얘기하며 최소한의 사회적 복원력을 부정해왔고 거세해 왔습니다.

    이젠 최소한의 공동체의 윤리마저 짓밟고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기념식이 열리는 5.18에 장례식장에 난입해 한 노동자의 시신을 탈취하는 야만까지 사주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마저 비웃고 유린한 것입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윤리와 역사의식마저 상실한 자본과 공권력은 더 이상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몰아낸 자리에 새로운 복원력들을, 평형수들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현재 이런 삼성과 부정한 국가권력에 맞서 1000여명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8일에는 이들을 위로하고, 연대하는 <밥 한 그릇, 양말 한 켤레>의 자리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사람의 마음들을 확인하고 나누는 참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책한권-웹자보

    이어서 이번 주 수요일인 6월 4일에는 <책 한권, 빵 한조각>을 나누는 자리를 가져보자고 합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이 버린 1만여명의 삼성전자 서비스 수리기사 분들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주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참 많이 만나왔습니다. 늘 웃으며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던 이들이 이처럼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 모든 것을 삼성이 해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 분들의 땀과 피눈물이었습니다.

    삼성의 주인은 삼성을 이만큼 키워 온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함께 나서서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아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이들의 안전이 뿌리뽑힌 자리의 도처에 들어선 탐욕의 이윤들을 보았습니다. 그 탐욕이 우리들의 이웃들을 몰살시켰음을 보았습니다. 그 최고의 정점에 삼성이 있습니다.

    삼성을 바로잡는 것은 모든 평범한 이들의 삶이 기울어가는 우리 시대의 복원력을 회복하는 진정한 일입니다. 이 엄청난 자본 과적의 삼성에 눈감고 세월호를 반성한다는 말은 박근혜 씨와 똑같이, 우리도 한판 그럴듯한 눈물쇼로 세월호를 잊겠다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당신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책 한 권, 아끼던 책 한 권을 들고 지방선거를 마친 6월 4일 저녁 7시,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 선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나눠먹을 빵 한조각을 들고 선 소중한 우리 모두의 복원력을 만나고 싶습니다.

    5월 24일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 당시 연행되는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지만, 그날만큼은 택시라도 불러 타고 저도 나가볼까 합니다.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동료의 시신을 빼앗기고, 갈비뼈 정도가 아니라, 심장 전체가 도려내지는 아픔을 안고 노숙을 하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갈비뼈 하나의 통증 정도가 무슨 대수겠습니까.

    이 투쟁이 다하는 날, 그의 바램대로 삼성전자서비스 1만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이건희 이재용 부자의 탐욕에 맞서 승리하는 날, 그의 유서를 안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정동진엘 가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내일엔 어떤 해가 떠오르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세월호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술 한잔도 거기 놓아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세월호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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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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