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생활 삼년이 나를 다시 살려
    [이기순 생애 이야기-9] "아픔이 많아야 더 간절해지는 것"
        2014년 05월 30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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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8 링크

    (최현숙) 선배님의 삶이나 생각에는 기도 일과 세상 일, 두 세계가 구분되어 있는 거네요.

    (이기순) 기여~. 그럴 수밖에 읎어. 영혼과 육신이 다르고 신과 사람이 다르디끼, 기도 일과 세상 일이 다를 수 밖에 읎는 거여. 신 내린 사람은 그 두 가지를 같이 살아야 헝게, 사주팔자가 험하고 사는 게 힘든 거제.

    더구나 혼인까지 혀서 서방이랑 새끼들꺼정 있는 여자가 신내림을 받으면, 그걸 잘 간수허며 살기가 너무 고통스럽제. 우리 어무이도 그렸고, 나도 마찬가지여. 서방이 못 허게 하고 자식들도 싫어하고. 그려도 본인은 그르케 안 살 수가 읎는 거여. 신의 명잉게~

    그려서 내가 나중에 신령님께 원망 많이 혔어. 나를 점지를 하실거면 혼인하기 전에 점지를 혀 주셔서, 혼차 살면서 아무 걱정읎이 기도하고 일허게 하시지, 머하러 자식들 넷이나 낳고서야 신이 나려오셨냐고 원망을 많이 혔지. 서방이야 돌아서면 남이지만 자슥은 안 그런 거잔여.

    (최현숙) 그런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아프고 힘든 삶을 직접 살아 본 사람들이 신을 받아야, 사람살이를 더 잘 이해하고 보듬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신내림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받은 신을 세상 속에서 어떻게 펼치느냐가, 신내림의 목적일테니까요. 그리고 신내림이든 성령 체험이든 여자들에게 더 많은 것도,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더 많은 아픔과 상처를 겪어서일 거에요. 아픔이 크면 신에 대한 마음도 더 간절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물론 거기서도 대장이야 다 남자들이 많이 하지만, 하하하~

    (이기순) 최 선생은 천주교 신자람서, 신내린 사람들을 하대하는 게 읎네~. 그게 제대로 믿는 거여~.

    (최현숙) 그럼요. 저는 무속이든 기독교든 불교든, 하늘 뜻를 쫓고 이웃을 이롭게 하려는 믿음이라면 모두가 같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든 신과 사람에 대한 겸손한 마음으로 간절히 길을 묻는 사람들은, 신의 일부를 직접 만나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지금까지 들은 선배님의 삶과 고난, 집을 나와 입산해서 신을 만나는 과정들이, 더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져요. 물론 당사자인 선배님은 너무 큰 아픔을 겪으셨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신을 찾고 만나게 하는 길이지요.

    (이기순) 기여~, 아픔이 많아야 더 간절해지는 거여, 그래야 영혼이 맑아져서, 신을 만나는 거지. 그려서 계룡산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대둔산으로 들어간 겨. 거기는 기도하는 보살님들도 많고, 일 맡기러 온 사람들도 많더라고. 그렁게 살기는 편혀. 사람들이 가면서 밥이니 반찬이니 쌀이니를 쏟아주고 가면, 그걸 먹으면서 기도를 하는 거여.

    나헌티 기도를 부탁허는 사람들도 생겨서, 돈을 찔러주고도 가고. 추우니께 천막도 치고 밥해먹을 자리도 대강 만들어서 기도를 하는 거제. 근디 사람이 많고 일이 많으면, 암래도 마음을 딲는 디는 안좋지…. 그려도 기도를 하는 이유가 사람들 살피자는 것이지. 근디 그 두 가지를 같이 하기가 힘든 거여….

    어느날 전주 보살 하나가 백일기도를 할 총각을 데리고 왔어. 그 총각이 돌멩이를 주워 구들을 깔고 천막을 치더라고. 근디 그 천막을 치고 부텀은, 기도만 하면 산에서 돌멩이들이 굴러 내려와 그 총각 천막으로 떨어지는 게 보이는 거여, 소리도 들리고. 나가보면 실지로 그러지는 않는데. 그라구 쥐가 양은솥을 훑고, 솥뚜껑을 홀딱 뒤집고, 쌀단지를 뒤지고 하드라구. 그라더니 그 보살을 딱 눕혀놓고 꼼짝을 못허게 하는 거여.

    누가 그려~, 산신령이지. 그르다가 내 입에서 그 보살헌티 ”여기 구들 돌이 산신각에서 가져온 거냐?“고 묻더랑게. 보살은 모른댜~. 그려서 총각헌티 물으니, 아~ 글씨, 기다는 거여. 산신각 앞에 널쩍한 돌이 있어서, 하나 갖다 썼대는 거여. 그렁게 내 입에서 “아이고~ 큰일났네, 이거~ 큰일났네” 그라고는, 얼른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호통을 쳐. 총각이 놀래서 얼른 갖다 놓더라구.

    그라고는 일 보러 산 아래 다녀오겠다는 사람헌티, “여기 시방 상문 쪄서 큰일 나겄어유. 올 때 꼬추 서근을 사 오셔유.” 그러는 겨. 사람이 죽어 나가겠다는 거제. 내가 말을 하는 게 아니구,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거여. 사 온 꼬추에서 일단 한 근에 불을 놨어. 그라구는 다 죽게 된 그 보살하고 총각을 꼬추 불 앞에 딱 무르팍을 꿇려놓고, “미련한 중생들이 몰러서 그런 거니, 살려만 주십시요~”, 싹싹 빌며 기도를 허는 거여.

    그 꼬추 어쩌는 거를, 내가 알던 게 전혀 아니거든. “이 도량에서 아무 일이 읎어야, 사람들도 끌어들이고, 할아부지도 이름나고 제자들도 이름나서, 좋은 일 많이 항게, 용서하시고 살려주세요. 용서하시고 살려주세요.”하고 기도가 나오는 거여.

    근디 한 근을 다 태우도록 꼬추 탄내가 안나. 그르니 두 근을 마저 다 부어 태우는 거여. 땅바닥에다 태우는 거제. 한참을 넋 나간 듯 기도가 터지드만, 느닷읎이 기도할 때 쓰는 칼을 주서 들고는 마악~ 칼춤을 추드라고. 그 두 사람을 짤르고 찔르고 내리치고 하는 숭을 내면서. 그게 어쩐 거냐면, 내가 그런 말이랑 몸짓을 하는 거를 알기는 아는데, 그게 내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누가 내 입으로 말을 하고 내 몸을 움직이는 거여.

    그르케 한참 칼춤을 추고는, 그 불에다 침을 세 번 탁탁 뱉고는, 두 사람을 천막으로 들어가라고 하드라구. 총각이 환자 보살을 업고 들어갔지. 그라구는 보살이 살아나기 시작을 혀서 몸이 다 낫고, 낭중에 총각이랑 산을 나려갔어.

    근디 보살이 얼마 안있어 다시 왔드라고. 죽었다 살아서 집을 들어서자 마자, 친정오매가 “너 죽을 뻔 혔지야? 그 보살 못 만났으면 거그서 송장돼서 나왔다” 그러드랴. 그 오매가 신 받은 사람인디 그 때는 보살을 안혀도 앉아서 천리를 보는 사람이라드라고. 그러면서 ‘가서 고맙다고 하라.’며 되돌려 보내드랴. 그 야그를 허며 고맙다고를 수도 없이 허고는, 돈 맻 푼을 두고 가더라고. 나중에라도 자기 집을 꼭 오라고 주소도 주고. 안 가봤어 그라고는~.

    동짓달이 되았는디, 거그가 곧 유원지가 된다고 남자들이 들락거리매 기계를 들고 재고 해쌌드라구. ‘유원지가 되면 갈 데가 읎으니 걱정이다‘ 생각허며 기도를 허는 디, ”걱정말어라 걱정말어라, 낼 귀인이 와서 도와줄 거다“ 그랴.

    이튿날 남자 하나가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와서는, 자기 마누라가 암인디 병원서는 못살군다구 했대는 겨. 그려니 자기 산이 있응게, 나보루 글루 와서 마누라랑 같이 지내면서, 기도를 혀주면 안되겄느냐고 혀. 좋다고 가보자고 허고는 따라 갔어.

    대전 근처 오대산 어딘디, 기도하기에 산이 깊고 좋아. 바위 밑에서 물도 솟는다고 하고. 들어가자마자 기도함서 ‘여그가 뉘 터전이냐?’고 물응게 ”여기서 자리를 잡아라“ 그랴. 근데 봉게, 바위고 어디고 얼음이 얼어서 마땅히 앉아 기도할 데가 읎어. 으뜨케 해 볼 가늠이 안서, 한 겨울잉게. 아저씨도 날이 풀리면 부인을 데리고 오겠다며 먼저 갔고.

    근데 거기서, 전에 나랑 같이 백일기도 들어갔다 말문 안 트인 그 보살하고 아자씨 하나를 만났어. 그 사람들도 글루 기도를 왔던 거지. 세 사람이서 얘기를 하다가, 날 좀 풀리면 다시 오기로 하고, 우선 안면도로 같이 갔어. 안면도는 이북이 가차워서 파출소에다가 주민증을 맡기고 들어가는 거여. 밤에는 바깥을 나오면 안돼. 총을 쏴~.

    사람 읎는 집을 하나 얻어서, 밤에는 집에 있고 낮에는 바위 위서 기도를 혔어. 삼일째 기도를 하는데 ”얼른 니 터전으로 가서, 천막이라도 치고 기도를 허며, 니 사람을 받어라“ 그러는 거여.

    그려서 혼차서 다시 그 오대산을 들어가서, 구들 맨들고 비닐 치고 나무 꺾어다 불을 피고 지내며 기도를 혔어. 근디 그 추운 겨울인디도, 손님이 연이어 들여지는 거여. 많이는 아니고 안끊이고 오는 거지. 나를 글로 데려간 남자도, 부인을 데꼬 와서 칠일을 기도를 허고, 많이 좋아져서 가고. 쌀 단지를 두 개를 놓고 있었는데, 한 단지가 비고 다음 단지 먹는 동안, 빈 단지 채울 손님이 계속 이어지는 거여.

    그르케 단지 두 개가 다 차지도 않고 다 떨어지지도 않게, 손님이 들여지더라고. 다른 데 쓸데가 읎으니 돈도 자연이 모타지구. 그르케 모타진 돈으로 포도밭을 하나 얻어서, 포도 농사도 지으며 기도하며 살았어.

    낮에는 동네 가서 모 심어주고 삯도 받고, 산 돌아다니며 고사리도 따고, 약초도 많이 캐고. 죽을 병으로 오는 사람들헌티는, 기도도 해주고 약초로 약도 하게 허구, 그러면 신기허게 많이 낫드라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 산을 돌아댕기면, 내 앞에 밝은 불이 탁 켜져. 별도 달도 읎고 어떤 날은 비까지 오는데~. 밝은 빛이야. 무섭도 않아, 오히려 ‘산신령님이 내 길을 밝혀주는구나’ 해서 마음이 좋제.

    만신

    김금화 만신의 일생을 다룬 영화 ‘만신’의 한 장면

    산신령이 나를 점지한 거여

    나는 뭣 보담도 내 말 트이는 걸 봐서, 산신령이 나를 점지허셨다는 걸 따악~ 믿은 거여. 내가 싹 뒤집어진 거잖여. 내 저기로는 안되지. 그러다봉게 딱히 신령님 말이 아니드라도, 해야 할 말들을 알게 되고, 그 말을 할 용기가 생기는 거여.

    시방도 다른 말들은 잘 못혀. 동네 사람들이나 어디 모임 가서도, 말을 잘 못혀. 그르니 듣고만 있고 말은 통 안하는거제. 최선생이랑 이거 하자믄서두, 하고는 자픈데 그게 걱정이었든거여. 근디 하다봉께 배고픈지도 목마른지도 모르고 이렇게 술술 나오는 걸 보니, 이게 또 신령님이 만든 자리구나 싶구먼.(오전 10시에 선배님 집에서 시작한 1차 인터뷰가 점심시간을 훨씬 넘겨 오후 3시가 넘는 데도, 선배님은 밥도 물도 마다시며, 줄줄이 구술을 풀었다. 필자만 과일과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첨에 백일기도 안내 혀준 보살있잖여. 그 보살이 자기 서방이 환갑을 못챙기고 얼마 전에 죽었었어. 그런 사람은 사갑(祀甲. 환갑 전에 돌아가신 분의 환갑 날 가족과 친지들을 모아 여는 잔치. 사갑제(祀甲祭))을 해주는 게 좋아. 환갑 날짜에 간단하게라도 음식을 혀서 사람들도 멕이고 상도 간단히 챙기고 허는 거가 사갑이여.

    그 보살이 서방 생일날 사갑을 안하고 남의 일을 들어갔던 거여. 근디 그 굿을 허다 신장대(무당이 신장(神將)을 내릴 때에 쓰는 막대기나 나뭇가지)에 맞아서 씨러졌댜. 그려서 중환자실로 실려갔는디, 낫지를 않고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돈만 들어간다더라고.

    그 말을 내게 기도 들어온 사람헌티 들었어. 어쨌든 가봐야지 정상이잖아. 홀대는 혔지만 그려도 스승인디. 근디 왠지 맘이 안나서는 거여. 그러고 있는디, 해볼 거 다 해보고 안되서 포기를 하고, 집에 와 있는 말을 또 들었어. 그 말을 듣고서야 가보고 싶은 맴이 생기더라구.

    포도 한 박스를 따서 싸들고 그 집을 갔어. 나를 알아보고 방가워는 혀~. 근디 나를 붙잡고 며느리가 돈을 훔쳐낸다느니 으쩐다느니 억지소리를 하는 거여. 큰아들네랑 같이 살고 있었거든. 그려서 ‘나를 따라서 산으로 갑시다‘ 항게, 선뜻 그러쟈~. 근디 막상 일어서면 안가겠다는 거여. 그걸 맻 번을 하더랑게. 나쁜 귀신이 못 가게 막는 거제.

    그려서 내가 아들 며느리헌티 ”어무이를 나헌티 맞겨 보소. 다행히 고치면 좋고, 못 고치면 내 기도가 모자라 그런 거니 할 수 읎고, 어쨌든 맞겨 보소“ 했더니 큰아들네랑 순경하는 작은 아들이 어무이를 구슬러서는 산으로 같이 갔어. 제물을 사고 내가 쌀 빻서 떡도 쪄서, 산신 앞에 제물을 올리고 기도를 헌 거여.

    도와주는 사람 하나가 챙겨주고 축원을 올리고. 나는 곱대를 열두고개를 잡고 기도를 허는디, 죽은 영감이 나헌티 와서는 얘기를 하는 거여, 쭈욱 역사 얘기를. 자기 마누라가 어쩌고 저쩌고, 자기 환갑을 못혀서 어쩌고. 그리다가 큰며느리가 딸만 있고 아들을 못 낳는데 죽어서도 그 걱정이 크대는 거여. 큰아들 불쌍허다고도 허고. 그라다가 내가 그 큰아들헌티, ’엄니가 법당을 이십년을 혔는디, 아들이 법당 앞에 절 한 번을 안했냐?‘고 막 야단을 쳐. 그니께 아들이 얼른 잘못혔다면서 절을 하드라고.

    보살헌티는 삼칠일을 기도(21일간의 기도)를 하라고 시켰어. 그러겄다고 하더라고. 근디 보살이 잡신 땜에 무서운 게 내가 어딜 가든 쫓아오고, 화장실을 갈라도 쫓아와서, 그 문앞에 서있는 거여. 쬤겨날 거를 알고 잡신이 보살을 시시탐탐 노리는 거제.

    첨에는 며느리랑 아들들이 산을 왔다갔다 하다가 열흘이나 됐을 때 내가 못오게 혔어. ”어무이 병 고칠려면 발 딱 끊어라.“, 그르니께 안오는 거제. 그라니 보살이 ”약도 다 떨어져가는데 안온다.“며 자식들 원망을 하는 거여, 약에 의지를 허고.

    나는 시방도 그 약이 무슨 약인지를 모르는디, 내가 막 야단을 치면서 ”어디 기도하는 사람이, 신령한 산 속까지 뱀가루를 가지고 와 먹으면서 기도를 허느냐?, 당장 서낭에 내다 버려라“ 하매 막 호통을 치는 거여. 그니께 보살이 약을 다 서낭에다 쏟아 버리드라구. 아그들도 안오고 남은 약도 버리고 그런 거제.

    나는 계속 칼로 쳐주면서 기도를 하고. 난중에 삼칠일이 되어가는 날, ’내가 가서 삼칠일 제물을 마련해서 올테니께 혼차 있으라‘고 항게 그러겄다고 허드라구. 인제 무서운 게 좀 읎어진 거제.

    그려서 아들며느리를 만나서 삼칠일 굿 의논을 하고, 제물을 마련해서 기도를 하며, “아들 낳구 싶제?” 그렁게 그 아들며느리가 “그렇다”고 합창을 허드라구. 아들 하나 점지해줄텡게, 와서 용공기도를 하라고 일러줬어. 내 말로는 그 장담을 못혀지. 결국 그 보살도 병을 낫고 아들며느리도 일년이나 있다 아들을 낳았어. 그렁게 두 아들이 거그다가 돈을 많이 내서 절을 짓는다고 혀서, 그런 저런 의논이 오고 갔었제.

    그라는디 어떤 기집년 하나가 보살이라며 기도처를 와서는, 으뜨케 내 주민등록 번호를 알아내서는 곰을 파가꼬 영감이랑 연락을 헌 거여, 애들 아부지 말여. 보살은 말로만 하는 거고, 사기 쳐서 돈 뜯어내고, 남자들이랑 놀러나 다님서 등쳐먹고 허는 년이여. 내가 ‘너 그런 짓 헐 거먼 여기는 오지도 마라’고 야단을 치고 하니, 앙심을 품었던 거여.

    그 년이 애들 아부지헌티 모함을 헌 거여. ‘기도는 무슨 기도냐?, 맨날 관광차 타고 다니면서 노래나 하고, 남자들이랑 놀아난다’ 그럼서, 지 허는 짓을 내가 헌다고 거짓말을 친 거지.

    산으로 기도 오는 여자들이나 보살들 중엔, 세상에서 참 기막히게 서럽게 살다 온 사람들이 많거든. 주로는 나만치로 바보 저리가라 허게 착해 빠진 사람인디, 부모나 서방을 잘못 만나 애닯고 서럽게 살다가, 오갈 데 읎이 그리로 도망 온 사람들이 많어. 그르니 그 약점들을 알고 그런 사람들 등쳐먹고 사는 년인 거제,

    그 년이. 하루는 동네 아는 보살집을 나려갔는디, 어떤 영감이 와서 나를 묻길래 모른다고 혔다는 밀을 혀. 잘했다고 고맙다고 혀먼서, 예감이 이상혀서 생김새를 물으니 딱 서방인 거여. 알아보니 그 년이 나 있는 기도처까지 알려줬었던 게벼.

    그려서 동네고 기도처고, 사람들 입단속을 부탁혀 놨어. 한 날은 어디를 갔다 기도처를 올라가는 디, 그날따라 공연시레 다른 길로 가고자파서, 늘 가던 길로 안가고 삐잉 돌아서 뒤로 들어갔어. 근디 바로 전에 한 영감이 와서 나를 찾았댜~. 그런 사람 읎다고 하니 그냥 갔다는 거제. 다니던 길로 왔으면 그 서방놈이랑 부딪치는 거였제.

    난중에 동네 와서 들으니, 애들 아부지가 그 년헌티 방도 얻어주고, 식객도 해주고 어쩌고 하기로 혔다는 말이 들리드라구. 그 놈도 그 년헌티 속은 거제. 어느 날 마을 정류장을 지나다가, 내가 먼저 그 년을 본 거여.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섰더라고.

    득달같이 달려가서는 그 년 모가지를 딱 잡아 채고 “이 썅년아, 이 년아~. 내 오늘 니 년 다리 몽뎅이를 뿐질러 버릴란다” 그럼서 머리끄뎅이를 잡고 내동댕이를 쳐버린 거여. 내 기운이나 승질로는 그러지를 못혀. 그런 욕도 못허고.

    근디 먼 저기로 그렸는지, 그르케 욕을 함서 산으로 질질 끌고가는 거제. ‘이 년 오늘 내가 죽여버린다’ 하매. 그르다가 그 년이 도망을 갔어. 그러고는 무서웅게 동네에 나타나지를 안혀. 더 어쩌다가는, 지 명에 못죽겄다 싶었겄제.

    서방이 집을 알았으니 다시 올 거는 분명허잖여. 하루는 넘 일을 갔다 오는디, 갑자기 맘이 불안하고 집을 옮기고 싶은 거여. 마침 나랑 간담을 보이는(아프고 쓰린 사연을 함께 나누는) 여자를 길에서 만났어. 그려서 내가 맘이 불안하고 어쩌고 함서, 집을 옮기기는 해야겄는디 어디 갈 데가 읎다고 걱정을 했어.

    그렁게 걱정말라고 자기가 알아본다고 하더니, 하룻만에 와서는 복숭나무 과수원에 빈집이 있다고, 주인이랑 얘길 혔으니 거그 가서 있으라는 거여. 그려서 그날 밤에 당장 짐을 옮겼어. 기도하던데서 멀지는 않은디, 그려도 한참을 나려오는 데지. 근디 그 이튿날 서방이 또 찾아온 거여. 그르니 나를 못만나고 그냥 간 거제.

    산 들어간지 한참 되서 은제, 어무이헌티는 내가 연락도 하고 머한다고도 말을 혔었어. 나 연락 안되는 걸로 큰 걱정을 허실텐게. 어무이는 ‘니가 그르다가 아주 산사람이 돼 버링게, 나려와라 나려와라’ 그렸지.

    나는 삼년은 채우구 나려가겠다고 혔어. 산을 나려온 거는 만 삼년이 훨씬 넘어가던 때여. 우리 엄니는, 사위 비기 싫으니 내 새끼들도 다 비기 싫다고, 아그들을 한동안 안보고 살았어. 난중에 내가 아그들이 무슨 죄냐고 좀 따숩게 좀 하시라고 혀도, 암말도 안하시더라고. 돌아가실 때꺼정 우리 애들을 별라 안이뻐라 혔어.

    나는 혼인으루는 어무이 원망을 안혀. 어무이야 내 혼인을 막을려고 혔제. 사돈될 집까지 쫓아가서 깨자고도 했었고. 아부지가 아닌 줄 알믄서두 체신 따지며 밀어넣은 거여. 밀다고 들어간 나두 멍청이구. 삼산을 떠돌며 기도하던 삼사년간이 마흔에 들어가서 마흔 서너살에 나려왔으니, 천구백팔십육년에서 구십년 그 때 쯤인가벼.

    산 생활이 나에게 의미하는 건

    (최현숙) 선배님은 산에서 사는 그 삼사년 동안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에요??

    (이기순) 츰이야 바보같이 맞구만 살다 새끼들 버리고 나온 독한 년이었지만, 나중에는 신 받은 보살이었제. 혼인이 나를 나락으로 떨군거라면, 산에서 삼년은 나를 다시 살군거여. 그것두 아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군거제.

    아직 신내림굿은 안혔지만, 신의 점지를 받은 거여. 하필 나같이 못배우구 못난 여자를 택했나 싶기도 혔지만, 세상에 부러울 것 읎이 감지덕지혀고 좋았제. 나중에야 고생이 많고 팔자가 씨다는 걸 알았지만, 그려도 신령님이 나를 불러준 거잖여. 신의 사람으로 쓸려구.

    세상 사람들이 천허게 생각허는 걸 알기야 혔지만, 말 그대루 신바람이 났던 거여. 그른디다 그게 으뜨케든 내가 혼차 살아갈 방도가 되는 거여. 돈을 벌겄다고 작정을 혀서가 아니고, 기도로 살다보면 필요한 거는 어뜨케든 해결이 되더라고. 하산을 허면서도 신을 모시고 살 생각을 헌 거여. 산에 있는 동안은 독허게 맴을 먹구 자식들한테는 연락을 안혔었어. 그거 보면 내가 독헌 게 있나벼. 이년 너머갈 쯤에 어무이한테만 연락을 한 거구. <계속>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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