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안전처가 우리를 구원할까
    [에정칼럼] 지금 한국에서 가장 불안한 건 '핵 발전소'
        2014년 05월 29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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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입에선 말이 나오지만, 누군가의 입에선 똥이 나온다. 뭐, 그것도 하나의 능력일 테니 너른 마음으로 그러려니 하고 싶어도 그 똥이 누군가를 범벅으로 만든다면 고이 듣기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같이 똥을 내뱉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이럴 때가 사람대하기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월호 사고가 그랬다. 감당하기 힘든 시간과 고통을 목도하고도 오히려 유족을 공격한다든가 국가 전복을 운운하는 걸 보면 세상 참 똥통이구나.. 하는 생각을 버리기가 어렵다. 강원도에서 출마한 모 정당의 후보자가 “이민을 가든가, 대한민국을 바꾸든가”라고 내건 슬로건에 눈물이 울컥할 정도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한 달 동안 우리 사회는 공황을 겪었다. 전국민이 심리상담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고양에서 작업장 폭발사고로 또 사상자가 발생했고, 어제 아침엔 용두동에서 또 화재가 났다. 지하철이 멈추는가 하면, 선로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들 역시 세월호 사고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상은 아닐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고, 거기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는 무능력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젠 뭘해도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하는 패배의식까지 꾸물꾸물거리는 것 같다. 정부가 행정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안전처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5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에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흡수통합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 국무총리실 산하의 법제처가 국가보훈처, 마찬가지로 새롭게 신설되는 인사혁신처와 달리 장관급을 배치했다.

    예산권을 주는가 하면 안전점검 공무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까지 부여했으니 외형만 보자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매머드급이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외형뿐이다. 내용을 보자면 과연 의도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통합적 안전관리가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 당시 무능한 국무총리의 극단을 보았다. 국무총리실은 청와대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해 관계부처를 통솔할 능력이 없음을 증명했고, 심지어는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된 보고를 올리는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엉성함을 보여줬다.

    그런데 국가안전처가 청와대 직속이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로 결정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가안전처가 유사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가동시키려면 총리실이 거기에 걸맞은 힘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또 뒤로 숨기에 바쁜 청와대만 바라보며 정부의 무능함에 절망하게 될지 모른다.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몸집만 불리는 건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과 다름없다.

    게다가 청와대는 안전행정부와의 싸움에서도 져서 대통령이 이전을 약속했던 정부조직 권한을 안전행정부에 그대로 남겨뒀다. 이런 상황에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뒀으니 이제 믿어 달라고 하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는다. 관피아를 해체하고, 책임총리제를 만드는 것 없이 국가안전처는 안녕하지 못하다.

    원전사고

    더 뜨악한 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관한 조치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가 불안한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많은 시민들이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주던 원전을 손에 꼽았고, 원전은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후쿠시마 사고 피해의 공포심이 세월호 사고와 중첩되면서 원전 안전 문제가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국가안전처 신설에도 불구하고 원전 안전위원회는 아예 통합을 위한 논의조차되지 않았다. 만약 불의의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국가안전처가 담당하지 않겠느냐는 반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원자력 안전위원회에는 방사선방재국이 있고, 해당 실국 업무에는 “방사능재난 상황의 종합 관리”, “중앙방사능방재대책본부 등 비상대응조직 유지 및 관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국가안전처가 만들어지더라도 유사시 원자력 안전위원회가 사고 대응을 담당한다. 원전과 방사능 문제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기능 이전에 따라 사라지게 되는 소방방재청의 업무는 특수하지 않은 걸까?

    가뜩이나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하는 원전 안전위가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는 건 어느 모로 생각해도 마뜩치 않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안전 시스템을 갖추게 되는 기회를 놓쳤다. 그것도 원전이라는 가장 큰 똥을 남겨둔 채.

    안전이란 예방이 최우선 과제다. 사고 후 구조나 구난을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능력은 후순위의 문제다. 하지만 산업부 장관이 국가안전처로 이관시키고 싶다고 말했던 한국가스안전공사와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정부의 보도자료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안전처는 재난 예방은 담당할 생각이 없나보다. 물론 후속조치로 이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예방과 구난을 이원화하고, 구난을 우선시하는 시각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흔히 에너지․기후변화 위기의 시대라고 얘기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가안전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 믿진 못하겠다. 정부는 그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민방위까지 국가안전처로 이관하지 않았느냐고. 에라이~.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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