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영혼을 지닌 로봇?
[그림책 이야기] 남강한의 <우리 아빠는 알 로봇>
    2014년 05월 28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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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되겠니? 다들 비싸고 멋진 걸 가지고 올 텐데.

아빠가 아들에게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이렇게 추측하는 까닭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화면을 카메라의 앵글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트럭이 한 대 서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트럭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트럭의 아랫부분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트럭 앞에는 남자 어른과 남자 아이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어차피 뒷모습이라 정체를 알기 어려울 텐데 뒷모습조차 어깨 아래 부분만 보여줍니다. 이런 화면 구도는 분명 누가 누구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물론 독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뒷모습과 하반신만 보여주어도 아빠와 아들의 대화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아들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이라는 제목을 떠올리고는 ‘이걸로 되겠니?’의 ‘이것’이 로봇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눈치가 전혀 없는 독자라면 ‘이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상상할 수 없을 테니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아주 영리하게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충분히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잘 숨겨 놓아서 독자들은 다음 장면이 참 궁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이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배경으로 등장한 트럭은 어떤 트럭일까요? 왜 두 사람이 트럭 앞에 서 있을까요?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아빠와 아들일까요?

다들 가져 왔지? 한 명씩 꺼내 보자.

궁금증을 못 참고 얼른 책장을 넘긴 독자들은 또 다시 당황하게 됩니다. 왜냐고요? 두 번째 장면에는 완전히 새로운 배경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공터에 갑자기 6명의 하반신이 나타납니다. 앞에 나왔던 트럭도 사라지고 따라서 아빠와 아들로 추측되었던 두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독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6명의 하반신이 앞서 나왔던 아들의 친구들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다들 가지고 온 것이 로봇일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로봇이 어떤 것일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눈치가 없기로 작정한 독자들은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독자들과 게임을 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마치 ‘이래도 안 궁금하세요?’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궁금한 독자들이 궁금증을 최대로 즐기려면 아주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는 편이 좋습니다.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은 이렇게 작가와 독자가 심리 게임을 즐기면서 보는 그림책입니다.

알 로봇

마침내 드러나는 ‘이것’의 정체

저는 세 번째 장면을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이번에는 6명의 하반신조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6명이 각자 ‘이것’을 바닥에 내려놓는 장면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6개의 서로 다른 로봇과 로봇을 내려놓는 6개의 다른 팔로 가득 찬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장면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마치 ‘보라! 이것의 정체는 바로 로봇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야말로 가장 웅장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의 정체를 거대하게 드러내면서도 정작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소년과 소년의 로봇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두 번째 장면부터 주인공 소년의 뒷모습이나 소년의 팔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시한 세 가지 장면이 분명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인데 도대체 소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또 아빠는 어디로 갔으며 과연 알 로봇은 어떤 로봇일까요?

로봇에 대하여

어린이는 로봇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이야말로 자연이 만든 최고의 로봇인지 모릅니다. 유전자 지도는 인간을 만드는 설계도이며 영혼을 지닌 로봇이 바로 인간일 수 있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드라마 <베틀스타 갈락티카>가 보여주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갈등은 결국 영혼을 지닌 로봇과 인간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이 자연이 만든 설계도에 의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영혼을 지닌 로봇과 자연물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게다가 모든 설계도에는 생로병사의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기계인가 자연물인가가 아니라 어떤 영혼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당신이 로봇이든 인간이든 삶은 유한하고 행복은 영혼이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빠는 알 로봇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은 흥미로운 구성과 기발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을 즐겁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특히 놀라운 상상력과 반전은 독자들의 나이와 성격에 따라 다채로운 반응을 자아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론 감정의 출렁거림도 감내해야 했던 작품입니다. 아마도 제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은 어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알 로봇의 비밀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은 독특하고 기발하며 가슴 찡한 그림책입니다. 남강한 작가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드립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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