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
    [산하의 가전사] 쿠 클럭스 클랜(KKK)의 첫 대표
        2014년 05월 27일 01: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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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레스트 검프> 기억하겠지? 나는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바보 포레스트는 뭘 해도 성공하지만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고 히피가 되고 반전운동에 적극 나서던 여자 친구 제니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도가 맘에 안들었거든.

    반전운동이 절정에 달하던 순간 링컨 기념관의 연못에서 포레스트와 제니가 포옹하는 모습도 감동보다는 영 껄쩍지근했다고나 할까.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이 양반 우리 말로 하면 보수 꼴통이구만 싶더라고. 애니웨이…. 지금은 그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자 포레스트 검프의 이름은 왜 포레스트일까? 그 이름은 남북전쟁 당시 유명한 남군 장군이었던 나단 베드포드 포레스트에서 따 온 거야.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남군의 장성까지 오르긴 했지만 남군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같이 정통 코스를 밟은 군인이 아니었어. 심지어 전직은 노예상인이었고 양아치에 가까운 인간이었지. 말다툼을 벌이던 사람에게 거침없이 권총을 쏘아 죽여버릴 만큼.

    그는 노예 상인으로 부를 쌓았고 바야흐로 미국 남부 곳곳에 ‘타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같은 저택을 짓고 살면 됐는데 그의 팔자도 그렇게 유복하진 못했지.

    남북전쟁이 터진 거야 남북전쟁에 참전한 그는 웨스트포인트, 즉 미국 육군 사관학교 출신들은 상상하지 못할 전술로 북군을 괴롭히며 용맹하게 싸운다. 막 자란 사람답게 어떻게 싸우는지를 알았고 상대가 약할 때와 주먹을 휘두를 때의 포착이 빨랐지.

    하지만 그는 남북전쟁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흑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해. 바로 필로 요새의 학살이라 불리우는 사건의 중심에 선 거지.

    1864년 4월 포레스트는 테네시주에 있는 필로 요새를 함락시키면서 그 요새를 지키던 북군의 흑인 병사들을 몰살시킨다. 이건 그의 독단적인 조치라기보다는 흑인을 전쟁에 개입시킨 데 대한 남부의 분노의 폭발이었어.

    남군은 북군의 흑인 병사들을 더 이상 포로로 잡지 말라고 명령해. 골치가 아팠거든. 이 흑인들을 반란을 일으킨 노예로 대접할 것인가 전쟁포로로 대우할 것인가부터 말이야. 포로라면 식량부터 제대로 대우해 줘야 했는데 자신들도 북부 연방 해군의 봉쇄로 기아에 허덕이는 처지에 흑인 포로 먹일 밥이 어디 있어? 거기에 백인한테 개기는 흑인에 대한 분노까지 겹쳐 “포로는 없다.”고 선언한 거지.

    그 선언 하에서 포레스트의 부대는 흑인 병사들을 전멸시킨다. 그런데 증언들이 좀 엇갈린다고 해. 어떤 이들은 포레스트가 검둥이들을 다 죽여 버리라고 외쳤다고 분명히 증언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가 장검을 치켜들고 학살을 막았다고도 하거든.

    그러나 어찌 됐든 그는 당시 남군 지휘관으로서 필로 요새의 학살자라는 악명을 평생 뒤집어 쓰게 된다. 그 악명이 억울한 것만은 아니었고 말이야.

    그는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어. 후일 남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에게 남군 장군 중 누가 가장 우수했냐를 질문을 했을 때 리가 단연 “포레스트!!”를 뽑았을 정도로 말이야.

    그러나 알다시피 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난다. 포레스트는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가 항복한 뒤에도 한 달이나 버티다가 1865년 5월 9일 결국 항복하게 돼.

    포레스트

    네이턴 베드포드 포레스트

    자, 집중…… 로버트 리와 그 상대였던 그랜트도 그랬지만 이 노예장수 출신의 거친 장군 포레스트의 항복 선언에서 나는 정말로 부러움과 경외로움을 함께 느낀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늘날 초강대국이 된 연원을 발견한 느낌도 들고 말이야.

    “내전은 원한과 증오 복수심을 낳는다. 우리의 임무는 그 모든 감정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럴 힘이 있는 한 우리가 오랫 동안 싸워 왔고 지금까지 너무도 달랐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웃간의 다툼, 인간적인 원한, 개인적인 차이는 지워져야 한다…… 여러분은 훌륭한 군인이었다 이제 여러분은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다. 법을 준수하고 명예를 지키라. 그러면 여러분이 항복한 정부는 관대함을 보여 줄 것이다.”

    미국은 그 건국 이래 전쟁을 끊은 적이 없는 나라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라와 전쟁을 했고 (심지어 조선과도!) 많은 이들이 죽었어. 20세기만 해도 필리핀에서 1차 대전에서, 2차대전에서, 한국전쟁에서 월남전에서 엄청난 미국 젊은이들이 송장이 됐다.

    하지만 그 모든 걸 합쳐도 남북전쟁의 희생자 수에 미치지 못해. 원한이 쌓여도 애팔래치아 산맥은 넘었고 그들이 흐른 핏물의 길이도 미시시피 강보다 짧지는 않았을 게야.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 원한을 응징하지 않는다. 북군 사령관 그랜트는 로버트 리가 내미는 칼을 받지 않았고 다른 남부군인들도 무기를 들고 말을 탄 채 귀향을 허락한다. 그리고 최고의 남군 장군으로 공인받은 포레스트 또한 휘하들에게 저렇게 명령하는 거야. 내전이 가져온 원한으로부터 벗어나라!

    글쎄 이 멋있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의 오명은 남았어, 포레스트는 악명 높은 KKK의 첫 대표였어. 물론 우리가 아는 허연 두건 쓴 KKK와 초기의 KKK와는 다른 구석이 있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실리 윌크스도 KKK였잖겠니. 점령군 북군에 대한 일종의 자위적 성격도 없지는 않았던 거지.

    그러나 그는 백인들이 터무니없이 흑인들을 살해했을 때 격노한다. “나에게 권한이 허용된다면 비겁한 행동으로 자신의 인종의 명예를 떨어뜨린 자들을 처단할 것이다.” 이윽고 KKK 테네시 단장 포레스트는 KKK를 해산하라고 명령하게 돼.

    그의 말년은 실로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필로 요새의 학살자이자 KKK 대마왕이던 포레스트는 흑인 인권 운동에 헌신하게 되거든.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흑인과 함께 손을 잡고 예배당 단상에 나아갔던 것처럼 말이야.

    1875년 그가 흑인들 앞에서 한 연설은 감동적이다.

    “나는 오늘 여러분을 친구로 만나러 왔습니다. 여러분을 백인에게로 초대하려고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저같은 백인 가까이 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깃발 아래 서 있고 한 나라의 국민입니다. 피부색은 다를지언정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이 연설 후에도 남부의 흑인 차별은 100년 가까이 계속됐고 수천 명의 희생을 더 바치고서야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게 되기는 해.

    하지만 나는 전쟁을 주도해서 치렀고 거기서 이기고 진 사람들이 원한과 아집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관용과 이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 이르는 과정을 명징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

    뭔 감동까지 받느냐고 할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국민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혼자 도망을 치고 그 뒤에 돌아와선 피난을 안 간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던 사람이 ‘국부’로 숭상되는 나라의 국민이기에 그럴 거야.

    전쟁 끝난 지도 6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그 공포와 적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까닥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로 몰아붙이기 일쑤인 이 협량하고도 외곬수인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그럴 거야.

    멈춰 플래카드를 들지 않으면 땅끝까지 달릴 기세였던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같은 멍청한 사람들의 일원으로서 나는 자신의 인생 경로를 여러 번 용기 있게 바꿨던 포레스트를 다시 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저런 연설을 듣고…..또 그런 연설을 하는 이를 존경으로 맞을 수 있을까.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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