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키즘’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합주
    [책소개]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하승우/ 이매진)
        2014년 05월 25일 10: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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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식민지에서 벗어나 재구성하는 살림살이의 생활정치

    또다시 선거다. 침몰하는 한국호를 바로 세울 지역의 풀뿌리 일꾼을 뽑는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또 우리를 대의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과천에서는 녹색당 서형원 후보가 나서 한국의 브라이턴앤드호브와 프라이부르크를 만들 풀뿌리 생활정치에 도전한다. 대의자를 선택하는 투표 행위는 끊어진 도시를 연결하고 지역과 주민이 관계를 맺는 풀뿌리 생활정치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은 한국 현대사와 풀뿌리민주주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평화와 자유의 가치가 우선하고 평등과 연대가 중시되는 세상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이, 소외된 정치 조건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능동적인 정치 주체가 살림살이를 재구성하는 생활 정치인 풀뿌리민주주의에 어떻게 상응하는지 풀어낸다.

    테러와 무정부의 사상이라는 오해를 바로 잡으며 아나키즘의 본래 의미를 밝혀내는 하승우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미군정과 군사 독재 시기에 걸쳐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중앙 정치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겪으며 풀뿌리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인 상호부조의 전통이 파괴된 역사를 밝히고, 연방주의와 협동운동,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 아나키즘의 아이디어를 빌려 시민을 주체로 전제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이론을 세운다.

    그리고 중앙 정부를 향한 불신이 깊어지고 지방이 중앙의 내부 식민지로 전락한 오늘, 한국이 새롭게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를 말한다.

    풀뿌리와

    일터와 삶터, 정치터의 뿌리

    1부는 풀뿌리민주주의가 등장한 맥락과 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1장은 대의민주주의의 이론과 역사, 한계를 알아본다. 대의민주주의의 선출 방식은 정치에 관한 ‘탁월성’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평범한 사람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2장은 풀뿌리민주주의를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시민권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2부는 한국 역사에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연관성을 살핀다. 1장은 자치와 자급의 기능을 한 조선 후기의 계와 두레 등 농민 공동체가 동학혁명과 의병운동 등으로 이어진 흐름을 짚고, 3·1운동이 실패한 뒤 의식과 조직을 단련할 수 있는 이념으로 아나키즘이 수용된 과정과 특징을 알아본다.

    2장은 한족총연합회의 자치 공동체와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아나코-코뮌주의 등 일제 강점기에 아나키스트들이 꿈꾼 사회를 살핀다. 3장은 해방 이후 미군정과 군사독재 아래 반공주의와 냉전 논리에 밀려 풀뿌리운동과 아나키즘이 사라지는 과정을 정리한다.

    3부는 아나키즘의 권력관과 연방주의를 다룬다. 1장은 아나키즘의 뜻을 ‘반강권주의’로 바로 잡고, 억압하는 권력을 부정하는 아나키즘의 권력관을 분명하게 밝힌다.

    2장은 ‘국가 안의 국가’인 연방주의에 관한 아나키즘의 구상을 보여준다. 3장은 작은 공동체가 실패한 까닭을 중세 유럽의 길드와 북아프리카 카빌족의 연합체인 소프 등 역사 속 사례에서 찾아보고, 공동체 사이의 자유로운 협약만이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4부는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이 경제 영역에서 자급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1장은 임금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임금 제도에서 벗어난 유쾌한 노동과 문화 사회를 상상한다.

    2장은 자본주의 방식의 개인 소유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작업장을 소유하고, 협동조합과 공유지를 확대하고, 작업장과 공동체 위원회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일터와 삶터를 연결하려는 노력을 살펴본다. 3장은 농촌과 공업이 결합한 새로운 농촌 공동체를 만들고 두뇌노동과 육체노동이 통합된 새로운 노동 방식을 창출하자고 주장한다.

    5부는 인간의 자율성과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완전을 거부하는 아나키즘의 특징을 살펴본다. 1장은 아나코-코뮌주의의 특징과 끊임없이 접속하고 네트워킹하는 아나키스트들의 경향을 알아본다.

    2장은 아나키스트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을 다룬다. 아나키스트는 내가 확장된 우리, 다시 말해 사회적 개인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여긴다. 3장은 아나키즘의 주체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려는 배제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6부는 아나키즘의 이념을 통해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1장은 아나키즘의 연방주의가 한국 풀뿌리운동이 지방자치라는 형식화된 틀을 넘어 새로운 국가 구조가 될 수 있게 하는 원리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장은 협동조합과 다양한 형태의 공동 노동 형식을 통해 주체를 구성하고 살림살이의 사회성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소득과 지역화폐의 활성화는 다른 경제를 구현할 힘으로 주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풍부한 경험과 빈약한 이론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 이론으로

    참여예산운동, 학교급식이나 보육, 주민 참여에 관련된 조례 개정 또는 개정 운동,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운동, 정보 공개와 주민참여 운동 등 이미 많은 풀뿌리민주주의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지방자치 운동과 지방정부의 성과를 보여주는 개별 지역의 특수한 사례로 평가되는 데 그치고 만다.

    1970년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삼은 풀뿌리 주민운동과 협동조합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양적으로 성장한 시민단체,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등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경험은 계속 축적되고 있지만, 노동과 임금, 지방과 중앙, 개인과 사회 등 민주적 사회의 전제 조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이론적 틀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은 풀뿌리민주주의의 경험과 이론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균형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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