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자들의 생존법
    고립과 무력감 넘어서기
    [책소개]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우치다 타츠루 외/ 메멘토)
        2014년 05월 25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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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일본의 지(知)를 대표하는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와 오타쿠 출신의 사회비평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밥을 나누는 약자들의 생존술에서 배우다>가 출간되었다.

    무도가(武道家)의 박력을 지닌 우치다와 경쾌한 사회감각을 가진 오카다는 이 책에서 세대론, 교육론, 경제론, 연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이슈를 이야기하면서 시장 경제의 몰락과 그 대안,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한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말해주듯 더 이상의 경제 성장은 없다. 고령화는 눈앞에 닥쳐왔고 시장은 축소되고 성장 전략은 발 붙이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은 친척끼리 돕고, 이웃끼리 협력하며 부족한 자원을 공유하고 배분하며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있고부터 친족 공동체는 붕괴되었고 지역 공동체나 종신 고용을 보장했던 기업도 사라졌다. 국가나 사회 안전망에도 기대할 게 없다.

    객관적인 미래 전망은 비관적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낙관한다. 행정 시스템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그들 스스로 실험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절망적인 사람을 돌보라.’ 실천적으로, 우리는 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약자들을 구제해온 것은 언제나 약자들의 상호부조 네트워크였기 때문이다.

    세대론의 위험성

    결이 다른 두 사람의 대담 분위기는 시종 유쾌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자못 심각하다. 대화의 공통 기반이 사라진 사회, 욕망을 거세해버린 젊은이, 존경을 잃어버린 연장자, 교육을 포기한 학교, 성과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놓은 일본 사회의 참담한 모습은 여기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절망의 시대

    이중에서 저자들은 특히 세대론으로 갈라져 있는 젊은이와 연장자들의 문제에 주목한다. 세대간 반목이 극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논의는 이렇다.

    오카다 도시오는 애니메이션, 개라지 키트(garage kit: 소규모 수공업 공장이나 개인 작업실에서 만드는 고급 조립 모형)같은 오타쿠 관련 사업을 한 경험으로 인터넷과 하위문화를 즐기는 젊은층에 관한 참신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현대 ‘젊은이론’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는 모르고 라이트 노벨류만 읽는다. 교양이라는 개념이 없는 셈이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못해먹겠다”고 손을 턴다.

    “어른 같은 좀비”가 되지 않으려고 사회에 나가기를 극구 거부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욕망을 들키면 이용당한다고 생각하고 아예 욕망을 거세해버린다.

    또 로스트제너레이션론(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에 자라났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 경기 불황(1994년~2004년)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린 젊은 세대론. 연령 이외의 어떠한 사회적 인자도 ‘논외’로 제쳐두는 것이 그 특징)이 지적하는 대로 ‘세대에 따른 불공평’의 피해자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노인을 젊은이들의 자원을 가로채는 ‘해악’이라고 간주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노인 폐해일 뿐이야”라고 말하거나, “우치다 타츠루는 오와콘(끝이 난 콘텐츠)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다.

    우치다 타츠루는 세대 간 불신과 반목을 조장할 뿐인 세대론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대 간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순위 매기기로 고립과 단절을 강요당해온 젊은이들을 위해 연장자들이 ‘연대와 공생’의 기술을 전수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대와 공생’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이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잠잘 곳이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확장형 가족’과 약자들의 상호부조 공동체

    우치다 타츠루가 운영하는 개풍관(凱風館)은 인습적인 의미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무예를 배우면서 배움을 얻는 공동체다. 문하생은 150명 정도로 일주일에 6일은 무예를 연마하고, 하루는 세미나를 열어 현대 정치나 경제, 문화를 논한다.

    오카다 도시오는 페이트런(Patron, 후원자) 제도로 운영되는 독특한 회사 FREEex를 운영하고 있다. FREEex는 190명 정도 되는 사원들이 돈을 내어 대표 오카다 도시오에게 월급을 주는 ‘이상한’ 조직이다.

    우치다는 베풀고 오카다는 신세를 진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단자화되었지만, 사실 인간은 오랫동안 크든 작든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베풀고 신세를 지는 일은 인간 사회에서 당연지사다.

    ‘혼자 살 수 있는 시대’는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 준 한시적인 선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유례없이 풍요로웠던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공동체의 힘에 의존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저자들은 약자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중, 삼중의 가족형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확장형 가족’ 같은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가장 이상적인 확장형 가족으로 ‘드림랜더스(dreamlanders)’를 든다. 드림랜더스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컬트영화 붐을 이끈 존 워터스(John Waters) 감독이 만든 제작팀이다.

    존 워터스는 자신이 게이인데, 전직 포르노 배우(트레이시 로즈), 과격 무장단체 일원(패트리샤 허스트), 영화배우 출신 노숙자(리키 레이크) 등 치유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과 공동 작업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듯, 고독이 일상화된 현대인에게는 드림랜더스처럼 인간적 따스함을 나누는 상호부조의 공동체가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기 구제와 공생의 삶을 위한 증여경제론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경제활동은 등가교환이 아니라 무언가 받아서 그것을 계속 돌리고, 돌리는 증여의 운동이다. 타인에게 상호부조의 방법과 연대와 공생의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도 말하자면 ‘증여’다.

    오카다 도시오는 증여경제는 인터넷 기반 사회에서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그는 정보화 사회에서 증여경제의 속도를 효율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증여의 사이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사회적으로 성숙하고 공동체는 성장한다. 이것은 일찍이 인류학의 연구 성과로 증명된 바 있다.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가 보고한 뉴기니섬의 ‘쿨라 교역’은, 붉은조개 껍데기 장신구와 흰조개 껍데기 장신구를 섬들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리기만 하는 활동이다. 장신구는 교환되는 것 이외는 전혀 실용적인 가치가 없으며, 다른 어떤 물건과도 교환할 수 없다. 장신구가 교환되는 사이에 장신구의 이름이나 그 역사에 얽힌 수많은 전승(傳承)이 따른다. 또 신용이라는 인간적 가치가 산출되고, 개인이나 집단 간의 사회관계가 확립되고, 평화가 유지된다.

    우치다 타츠루는 오늘날의 사회, 경제 위기는 증여론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개인에게 적용해보면 이렇다. 무언가 받았으니까 되돌려준다는 생각으로 내가 가진 자원과 능력을 남에게 패스해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면 이렇다. 세대 간의 고립과 단절, 사회 안전망의 붕괴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잘 곳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약자들의 상호부조 네트워크로 극복하고, 복구해낼 수 있다. 이것이 자기 구제와 공생의 삶을 위해 우치다 타츠루가 제안하는 증여경제론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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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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