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언이라는 퍼즐 조각
    [기고] 아해, 유병언, 프랑스 그리고 돈지랄
        2014년 05월 24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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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에 살면서 독재시절로 퇴행하는 한국 현실과 민주주의 파괴 등에 대해 프랑스 거주 한국인들과 함께 비판하고 행동하고 발언해왔던 작가 목수정씨가 사진작가 아해, 아니 유병언씨와 프랑스 문화계의 돈으로 맺어진 왜곡된 관계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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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건 이후, 한국 사람들은 어지러운 퍼즐조각을 맞추는 고통스런 게임에 빠져들었다.

    음모론, 유언비어의 옷을 입고 날아다니던 퍼즐조각들은 어느 순간, 사건을 재구성할 진실의 한 조각이었음이 드러나고, 언론이 사망한 시대, 그런 식으로라도 진실을 추적해 나가지 않으면, 또 다시 독 안에 갇혀 거짓을 주입받을까 두려워 밤마다 퍼즐 맞추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종종 퍼즐에 끼워 넣을 수 없는 가짜 조각들이 등장하여 사람을 현혹하기도 하고.

    금수원 앞에 겹겹이 늘어선 전경들. 김기춘을 겨냥해 구원파 신도들이 내건 현수막 “우리가 남이가”, 경찰은 유병언이 이미 달아났다고 낭패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고, 8천만원 지명수배 전단이 다음날 뿌려진다.

    한편의 왁자지껄한 스펙타클을 연출하던 유병언 체포작전은 또 하나의 버려야 할 퍼즐 조각임이 사람들 눈에 역력했다.

    유병언이 얼굴 없는 사진작가 아해와 동일 인물이며, 오대양 사건의 그 남자이자 세월호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이 뜨거운 솥뚜껑을 처음 연 국내언론은 조선일보였다.

    세월호 침몰 직후, 작심하고, 상세히 적어 내려간 조선의 기사에서 우린 물어주길 바라고 던져진 “미끼”의 냄새, 사건의 주범이 자신을 가리기 위해 들이민 잡범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명확해진 한 가지는, 청와대가 유병언을 세월호 사건을 짊어질 중요한 책임자로 지목하긴 하나 대놓고 그의 주리를 틀 수 없는 약점이 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김기춘, 갈 때 까지 가보자”. “우리가 남이가”는 위험한 도박에 나선 두 사람 중 하나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심리전을 벌일 때 쓰는 말이다. 만인 앞에서 김기춘을 협박하는 유병언. 그것은 우리 사회를 주물렀던 검은 손들이 백주대낮에 벌이는 활극이었다.

    얼굴 없는 사진작가 아해, 돈지랄의 진수를 보여주다.

    2012년 여름을 파리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도저히 보지 않고 걸음을 옮길 수 없었을 그 이름 AHAE. 그의 전시가 튈르히 공원에서 열리는 동안, 지하철 통로마다, 그의 전시를 선전하는 포스터들이 줄지어 붙어있었다.

    파리에서 하는 그 어떤 전시나 공연도 이토록 많은 포스터로 도배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작품의 처절한 빈곤함에 반비례하는 그 지나친 물량공세는, 이면에 펼쳐졌을 추한 이야기들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역겨웠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라고 흔히 소개되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루브르 박물관 옆에 있는 정원에 가건물을 지어서 그의 전시는 진행되었다. 전시를 호평한 언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체도 불분명하며,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사진가로서의 이력 또한 없는, 가진 유일한 것은 돈뿐인 한 남자에 바쳐진 이 전시는 적잖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집요하게 이 초유의 사태를 파헤친 기자는 박물관 전문지인 루브르 뿌흐 뚜스(Louvre pour Tous : 모두를 위한 루브르)지의 베르나르 아스크노프(Bernard Hasquenoph)다.

    그는 2012년 튈르리 공원에 이어, 2013년 베르사이유궁으로 이어진 아해의 전시를 지켜보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두 프랑스 문화기관의 행태에 의문을 제기하고, 집요하게 아해의 실체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의 본명과 그가 벌여온 사업들, 사건들을 알아낼 수 있었고, 그에게 붉은 카펫트를 깔아 준 문화계 인사들의 얘기를 기사에 담아왔다.

    세월호 사고 이후, 돈을 위해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화공간의 자존심을 팔아넘긴 기관의 책임자들에게는 300여명을 희생시킨 사고의 중요한 책임당사자이며, 끔찍한 집단사망사건에 연루된 파렴치한 사이비 종교인을 끌어들였다는 죄목이 더해졌다.

    그렇담 이젠, 이들을 비난하고, 이런 실수를 묵인해온 문화부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야 하건만, 놀랍게도 프랑스 언론은 아해-유병언 스캔들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만 소곤거렸다.

    세월호 사건이 비중있게 다뤄졌던 것과 달리, 그 선주인 유병언의 놀라운 이력을 보도한 프랑스 언론은 3개에 불과하다.

    북한을 기사가치가 높은 사고뭉치 공화국으로 분류하며, 북한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도 중요하게 다루는 반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남한사회는 어지간하게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프랑스 기자들 관심끌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해도, 이 대목에 이르러선, 불의에 둔감해진 프랑스 사회를 통째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해에게 발목잡힌 프랑스 문화계

    더 놀라운 사실은, 사진작가 아해의 실체가 밝혀진 이후에도, 2015년 3월 개관하기로 예정된 대규모 음악공연장 파리 필하모니에 여전히 아해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파리 필하모니는 그들의 음악 프로그램과 관계가 있는 전시를 콘서트와 동시에 개최하기 위한 전시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파리 필하모니 디렉터 로항 베일(Laurent Bayle)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법당국의 결정만이 유일한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밝히며, 현재로서는 전시회가 취소되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답변 이후, 한 가지 변화가 보이긴 했다. 사흘전부터, 파리 필하모니 사이트에는 데이비드 보위와 삐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관련 전시회와 함께 예고되어 있던 AHAE의 사진 전시 안내가 삭제되었다. 물론, 광고의 삭제가 전시의 취소를 바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프랑스1

    http://www.philharmoniedeparis.com/fr/musee-de-la-musique/expositions-temporaires (사진 :데이비드 보위, 뻬이르 불레즈 전시 옆에 있었던 아해의 사진 전시 안내가 사흘 전부터 사라졌다)

    루브르 박물관이 옆 마당에 유병언의 사진 전시를 위한 공간을 내주었을 때, 그들이 받은 공식적인 후원금의 액수는 110만 유로였다.

    베르사이유에는 140만 유로를 건넸고, 같은 논리라면 예상을 심하게 초과하는 건축 예산으로 매스컴을 요란하게 타며 논란을 일으킨 파리 필하모니에도 상당한 기부를 했을 터이나, 로항 베일은 금액 밝히기를 거부했다.

    또한 그가 초대했던 사진작가의 실체가 폭로된 이후에도, 그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아해의 공식사이트에는 그 전문이 담겨 있다.

    “ 루브르와 베르사이유에서 아해의 사진을 처음 발견하였고, 국제적인 잡지들에 아해의 전시에 대해 실린 비평은 그의 작업이 지니는 예술적 가치를 더 잘 드러내고 있다.(자신의 아해의 사진에 대한 직접적인 견해는 피하고 있다) 아해의 전시를 본 후 그 아들을 만나, 그와 같은 음악적 취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아해의 아들이 파리 필하모니 프로젝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자연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콘서트에 아해의 전시를 열게 하자는 기획이 태어나게 된 것”

    로항 베일은 사진작가로서의 유병언에 대한 자신의 지지와 신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불려나온 인상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세월호 사건이 불러온 파장에도 불구하고, 유병언은 지금까지 돈으로 쌓아올린 사진가로서의 경력을 포기할 마음이 없음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공간들에서 자신의 전시를 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붓고, 대형사고 이후, 수배를 당한 상태에서까지, 그 전시를 지켜내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는 유병언의 모습은 흡사, 돈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는 도박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20세기 이후 축적되어 온 한국 역사의 모순과 악행들의 온 몸에 축적하고 청산해야 할 역사적 과오를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 박근혜라면, 유병언은 진실과 노력이 보답 받지 못했던 우리사회를 가장 간교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또 하나의 부패와 위선의 상징이다.

    이들은 서로 머리와 팔과 다리를 서로 얽히고 설킨 욕망과 권력의 사슬을 풀지 못한 채, 함께 지옥문 앞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유유히, 별일 아니었다는 듯 지나갈 수도 있다. 신은 없는 것이며,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물론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하며.

    프랑스의 이상호, 다윗과의 싸움에 나서다.

    베르나르 아스크노프 기자는, 한불 수교 130주년 문화행사가 유병언을 프랑스 문화계에 끌어들인 장본인인 전 루브르 박물관장 앙리 로리예트의 손에 맡겨진다는 사실이 한불간 외교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염려했지만, 프랑스 언론이 지금처럼 입 다물고 있는 한, 그것을 문제 삼을 사람은 적어도 현 한국정부에는 없어 보인다.

    세월호의 침몰은 덮을래야 더 이상 덮을 수 없을 만큼 명백한 악의 고리들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었다. 한국에서 프랑스에 이르는 거대한 마피아 집단들의 커넥션을. 그들의 추악한 몰골의 단면이 드러난 지금,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바다에 밀어 넣거나 그 어떤 악마와의 거래라도 감수하려 한다.

    이들이 벌이는 더러운 거래에 죽어나가고 고통을 당하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그 첫걸음은 진실을 규명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터이니. 바람찬 팽목항에 서서 홀로 진실을 말하던 이상호, 손석희처럼 진실과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거만한 문화 마피아들을 압박하는 베르나르 아스크노프의 손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오늘 밤, 한 라디오방송에서 유병언 스캔들과 관련한 인터뷰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다윗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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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louvrepourtous.fr/La-Philarmonie-de-Paris,774.html (louvre pour tous가 실은 유병언 관련 스캔들 기사)

    필자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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