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동맹 복지연대', 굳건히 하자
[기고]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소득 접근법-2
    2014년 05월 23일 03: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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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민주의자 기본소득 접근법-1 링크

1층짓기 : 첫 시작은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증세 운동이어야

1) 무상의료 운동을 함께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책임 기초보장>의 첫 단계는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증세 동맹이다. 여기서 ‘노인기본소득’이라는 명칭 대신 그냥 ‘노인연금’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다만 그 내용만은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의 요건을 만족하길 바라는 점에서 ‘노인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쓴 것뿐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그러나 언어가 갖는 정치적 효과까지 고려한다면 역시 최상의 전략은 그래도 기본소득 명칭을 붙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이는 일종의 1-2-3층을 짓는 보편복지 로드맵의 서막을 널리 알리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상의료>와 <노인기본소득>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보편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매우 핵심적이라고 여긴다. 의학의 한계가 아닌 그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건 그야말로 기본적인 국가적ㆍ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해당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사회적 자유를 빼앗고 제약하는 결과를 빚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회가 그러한 기본적 안전망을 보장하지 못할 때 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부득이 개인의 삶이 그만큼 부조리하게 희생되고 마는 사회적 약자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적 불평등과 부조리의 발생은 결국 정치적 자유를 그만큼 빼앗거나 제약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무상의료 운동은 복지국가 운동의 일환으로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잘 실천하는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운동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 김종명 팀장에 따르면, 현재 건강보험의 재원은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건강보험료, 사업주 부담금, 국고지원으로 대략 55:30:15 정도의 분담인데, 이를 지렛대로 대략 국민이 6.5조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하면, 총 14조 가량의 재원이 확보되며 이것을 보장성 확대에 사용할 경우,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걱정을 해결할 수 있기에 민간의료보험 지출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국민들은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민간의료보험 지출이라는 세 가지 부담을 떠안고 있는데다 매우 선별적이고 제한적이라 되려 민간보험사업 자본가들만 배불리는 구조에 가깝다. 따라서 무상의료 운동은 그야말로 <사회연대 반자본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김종명, “보건의료 의제와 투쟁, ‘자본 대 반자본’으로 재편해야” 레디앙 기고글 참조).

그렇다면 솔직히 한국의 좌파들이 굳이 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무상의료의 경우는 국민적 합의의 문제일 뿐이라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김종명 팀장의 증언에 따르면 무상의료 운동의 경우 민주노총이 이에 대해 반대 혹은 적극적이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다 보험료 인상은 노동자 입장에선 되려 손해로 여긴다는 것이다. 비록 민주노총 역시 보장성 확대를 주장한다지만,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재원 마련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함으로서 마치 국민들이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과 동시에 의도치 않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형태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김종명, “같은 글” 참조]. 역으로 현재 민주노총이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경우 무상의료의 실현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점은 현재 민주노총이 무상의료 실현의 핵심키워드를 쥐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무상의료 운동에 현재의 좌파 기본소득론자들도 함께 촉구하고 참여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것은 현물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보편복지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명칭을 <건강보험하나로>라고 해도 되겠지만 이는 어차피 사회복지세 운동 같은 목적세를 내는 시민운동과도 비슷한 것이라 어떤 면에서 <국민 무상의료 세금내기 운동>으로 지칭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현재로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라는 사회적 합의기구 틀로 엮여 있기는 하나 어쨌든 중요한 점은 사회적 연대와 합의일 것이다. 이는 보편복지를 향한 국민의 자발적 증세 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인연근

2) 노인기본소득제의 시급성과 자발적 증세운동의 필요성

동시에 노인기본소득 역시 시급하게 필요하다. 나 자신이 이를 무상의료와 함께 동시에 주장하는 데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 시급성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은 현재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고 있는 점이 매우 결정적이지만, 또 한편 사회변혁을 위한 전략적 발판으로서도 우리는 박근혜의 지지기반 역시 이를 통해 교란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미 박근혜가 처음 공약했던 노령기초연금은 애초 기본소득의 요건에도 맞는 것이어서 무상급식 논란 때처럼 보수세력들로부터 빨갱이나 공산주의적 정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여지도 거의 차단된 더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 고령화시대를 맞이하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노인기본소득은 그야말로 사회안전망을 위한 장치가 되는 보편복지가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현시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노인기본소득> 제안은 <현금15~17만원 + 3~5만원상품권 = 20만원>(물론 상품권 주문은 무료배달서비스 포함이며, 가능한 시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기에 낮은 액수부터 제안한 것뿐이다)인데, 여기선 굳이 현금 액수를 고정적으로 못 박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액수를 얼마만큼 할 것인가의 문제도 결국은 증세로 인해 늘어난 재원만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이 현금에다 상품권을 넣고자 하는 이유에는 어차피 일정하게 소비되는 생필품은 필요할 뿐더러 이를 농수산물 직거래 상품권 혹은 전통시장 상품권과 결부시킬 경우 전국의 농어민을 살리고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동반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후에 실시해야 할 <영유아기본소득> 때도 대형마트가 아닌 전통시장 상품권도 함께 껴 있기를 제안하고 싶다.

또한 나는 통장에 꽂아주는 수령 방법에 대해서도 다소 이견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노인은 이미 신체적으로는 갈취를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이기에 조금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중에 <영유아기본소득> 실시 때도 마찬가지 입장인데 이 수령방법에 대해선 기회가 되면 따로 언급해볼 생각이다. 물론 심사나 사회적 낙인 없이 수행되는 수령방법 말이다. 강화되어야 할 것은 심사가 아니라 안전과 보호다.

어쨌든 노인기본소득제 실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급할 현금 액수가 얼마인가보다도 얼마만큼의 증세가 실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일각에서 수행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사회복지세 운동>을 좀 더 구체화시켜 노인기본소득제 실행을 위한 자발적 세금운동으로 단결되기를 제안하는 바다. 즉, <사회복지세 운동>을 좀 더 구체화한 목록의 목적세로 정해서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운동>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사회복지세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지금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전략으로서의 목적세 운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만일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운동>를 할 경우, 이는 박근혜 정부 및 우리사회 보수지지층 세력의 기반을 겨냥하여 이를 새로이 뒤흔들어보고자 하는 전략까지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박근혜는 애초 공약을 바꿔서 국민연금과 연계시켜 차등 심사 지급을 계획하고 있는데다 소득연동이 아닌 물가연동으로 바뀌어 있어서 결코 보편복지라고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박근혜가 애초의 노인 보편복지 공약을 파기한 이유에는 증세 없이 복지를 하려다보니 결국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변경시켜 버린 데에 있다.

복지를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재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세금=손해’라는 인식부터가 매우 팽배해있다. 심지어 서점가에는 『합법적으로 세금을 안내는 110가지 방법』(개인편/부동산편/기업편)이라는 요상의 제목의 책까지 나와 있는 실정이다. 이런 책의 구입자는 아마도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부자일 것은 분명하다. 내야할 세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아깝게 느껴질 것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좌파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나서서 증세 운동을 벌였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을 돕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증세를 위한 자발적 시민운동이 보다 확대되기를 원하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증세 운동>이 있지 않으면 세금에 대한 인식을 깨트리기가 매우 힘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회복지세 운동 같은 목적세 운동에 사민주의자들이든 기본소득론자들이든 보편복지에 찬성하는 그 어떤 복지운동가들도 함께 참여하는 <자발적 증세동맹 복지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목적세 운동 없이는 앞으로 증세 및 조세 개혁에 대한 전망을 갖기가 매우 힘들뿐더러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조세저항을 극복할 방법도 매우 요원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러 사회복지 운동가들 및 복지운동 단체들과 함께 정부를 압박해서 <노인기본소득 자발적 증세운동>을 이끌어낸다면(재차 강조하지만 요건만 맞다면 명칭을 꼭 ‘노인기본소득’라고 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붙이면 더 좋다) 그야말로 기본소득 운동에서 볼 때도 본격적인 첫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자발적 증세 운동으로 국민을 함께 설득해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정부를 더욱 압박해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자들이든 기본소득론자든 적어도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이들이라면 나는 이 지점이 바로 초석이 될만한 첫 출발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기본소득론자들은 <건강보험하나로> 같은 무상의료 운동에 함께 연대할 필요가 있겠고, 복지국가론자들은 사회복지세 운동을 <노인기본소득 증세운동>으로 보다 구체화해서 기본소득론자들과 함께 주장할 필요가 있겠다. 함께 할 수 있는 한 실현가능성은 그만큼 더 높아질 것이다.

2층짓기 :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의 초두 효과를 근거로 보편복지 더욱 확장하기

나는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제가 실제로 실행될 경우 나름대로 사회적 반향의 효과가 크게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율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현실인지라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노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이게 할 수만 있도록만 한다면 역설적으로 그 체감 효과는 오히려 더욱 크게 느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미 기본소득에 대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기존 사회복지학자들조차도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김교성,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탐색적 연구”, 『사회복지정책』36권 제2호 ; 백승호, “앞의 글”참조).

그리하여 보편복지를 체험한 사람들 스스로가 기본소득제 담론을 주도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2층짓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체험한 이들이 결국은 기본소득 운동의 주체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어렵다는 국민적 합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보다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핵심 정책 의제로도 떠오르도록 보다 깊숙하게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겠다.

어쨌든 이 초두 효과를 근거로 하여 본격적인 새로운 세금 신설 및 <영유아기본소득>(0-5세까지)으로도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앞서 말했듯이 <영유아기본소득>의 경우도 통장에 직접 꽂는 방법은 중간 갈취의 위험 때문에 곤란하다).

그리고 새로운 세금 신설로 인한 증세가 실현되는 만큼 영유아 기본소득에서 다시 또 <청년기본소득>(20-40세)으로도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참고로 <청년기본소득>의 경우는 나는 <마이너스 소득세>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다고 여겨진다. 마이너스 소득세는 강남훈 교수의 말대로 기본소득제의 사촌쯤 된다). 그리고 무상교육을 위해 반값등록금 실행도 점차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금 신설에는 대체로 부자 증세가 될 것이지만, 적어도 2층을 짓는 여기서부터는 토지와 금융에 대한 과세를 본격적으로 살펴야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토지와 금융에 대한 불로소득은 상당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를 매긴다’는 원칙 자체를 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국민촉구 운동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증권양도소득세, 토지세, 생태세, 토빈세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재원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안들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산출하는 것이 그야말로 가장 큰 핵심이 될 것이다.

혹자는 이 같은 과세를 시행할 경우 국내 투자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갈 위험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수익률 대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볼 뿐더러 조세부담률이 우리보다는 훨씬 높게 50%에 육박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그 같은 큰 위험성은 드러나진 않았었다. 예컨대 조세가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에 이르고 노동력의 75%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도 자본주의 경제가 원할하게 움직이며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반면에 그에 비해 노조 가입율이 현저하게 낮고 오히려 현재 <불안정 노동자>―일명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비할 바 없이 훨씬 더 많은 우리나라 현실의 경우는 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력보다는 오히려 사회 안정화로 인한 생산성 창출의 긍정적 영향력이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솔직히 박근혜가 말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우선 기본적인 먹고 사는 일부터 안정이 되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증세 및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사회적 빈곤의 비극과 고통, 불안정 노동과 복지사각지대 문제 그리고 실제 시행으로 체험된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에 대한 초두 효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더 큰 국민적 합의를 진작시켜 나갈 필요가 있겠다.

이와 함께 꾸준히 정당들 역시 보편복지로서의 기본소득제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기본소득제에 대한 지지정당의 집권 작업에도 계속 힘쓸 필요 또한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등에 업고서 될수록 많은 정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만 한다고 본다. 보편복지의 확대는 경제민주주의 실현뿐만 아니라 실상 정치민주주의의 고양과 성숙에 있어서도 매우 결정적인 핵심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기 힘들고 바쁘면 국가 정치에 대해서도 거의 잘 들여다보지 않을뿐더러 그저 공중파 언론과 뉴스를 아무런 비판적 의식 없이 받아들일 여지 또한 높다고 하겠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약자일수록 정작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제대로 살펴보기가 힘든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더더욱 기만하고 희생시키는 가운데 자신들의 이익과 배를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3층 짓기 : 전면기본소득 실행을 위한 사회복지지출 및 조세부담율을 OECD국가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사실 기본소득론자 강남훈 교수가 2014년 모델로 제안한 현금 30만원(필자의 경우는 현금20만원 + 상품권5만원 = 25만원 제안[이 경우 필요 예산은 120~130조원 정도], 전면실행의 경우도 시작이 중요하기에 낮은 액수부터를 권한다. 그러다가 30만원 기본소득도 늘어난 증세 재원만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실행해볼 수 있겠다. 재차 강조하지만 시작이 중요하다) 모델은 내게 있어 비로소 마지막 3층 짓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3층도 실은 더 큰 맥락의 3층집을 위한 1층이 될 수도 있기에 이를 완전무결한 최종 목적지로 설정하기보다는 이 또한 일종의 중간 목표로서 놓여 있음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이 중간 목표는 기존 OECD 국가들의 평균적인 사회복지 지출 대비와 조세부담률 수준으로 이를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에도 해당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대비는 OECD국가들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는 실정인데, 어차피 이 점은 사회복지서비스 강화 및 증세를 주장하는 복지국가론자들도 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터라 여전히 같이 해볼 만한 <증세 및 복지동맹>인 것이다.

강남훈 교수는 전면기본소득의 경우에도 북유럽 수준까지도 필요 없고 우리나라 조세부담율을 현재에서 10% 정도만 올려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앞서 1층짓기와 2층짓기의 효과를 근거로 삼아 계속적으로 끌어올려야만 할 것이다. 보편복지에 대한 실행 경험은 역진화로 되돌리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더욱 희망적인 지점에도 속한다.

또한 1층과 2층에서 시작된 보편복지 운동의 정치적 요구들 역시 지속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집권을 향한 정치적 세력화 역시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증세 및 조세 개혁>을 통한 전면기본소득을 마침내 실현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우리가 함께 1층짓기만 잘 한다면 전면기본소득도 최소한 10년 이내로 실현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보편복지의 결정판이 될 <전면기본소득>에 이를 경우, 중첩되어지는 것은 기존의 기초수급생활 보장금, 기초노령연금, 보육료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어차피 <전면기본소득>으로 대체되는 것이기에 160조원 정도가 요구된다고 한다(필자가 제안한 <20만원현금 + 5만원상품권 모델>의 경우는 대략 120~130조원 예상, 시작이 반이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유아에서 노인까지 몽땅 다 동일금액으로 책정해야만 할 절대적 이유 같은 건 없다. 즉, 영유아기(0-5세), 어린이(6-12세), 청소년(13-19세), 청년(20-39세), 중장년(40-65세), 노인(65세 이상) 등 생애별로 맞춤에 따라 금액을 조금씩 달리 책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탄력적 방안 역시 가능할 수 있음도 고려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면기본소득을 실행한다고 했을 경우에도 그 밖의 무상의료, 무상교통, 무상교육 등 다른 사회복지제도나 복지서비스를 몽땅 없앤다거나 이를 하나로 통합ㆍ대체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 역시 다시 한 번 강조될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3층짓기에서의 중요한 핵심은 보편복지의 인프라를 사회 전반에 전면적으로 정착화시키는 데에 있다. 그럼으로써 보편복지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인식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점에서 나는 <무상>이라는 표현이 마치 ‘공짜’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에 그냥 국민의료, 국민교통, 국민교육(물론 ‘국민’에 대한 어감을 매우 안좋게 생각하는 급진 좌파들도 있겠지만) 등 이러한 용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보편복지 제도>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회복지제도를 통합시키려는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을 지지하지 않으며, 보편적 복지의 강화로서 실행되는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또한 나는 높은 기본소득이 아닌 낮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높은 기본소득은 노동력 탈피가 매우 극명하게 나타날 위험성 역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는 <복지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기본소득 정도는 오히려 사회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을 만큼 더 크게 전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본소득의 의미도 말 그대로 <기초소득>basic income인 것이지 <충분소득>full/adequate income이 아니다. 나는 지금 <사회책임 ‘기초’보장>을 언급한 것이지 <사회책임 ‘완전’보장>을 언급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몸일을 통해서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가치와 존재의미를 인정받고자 하는 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기본소득 정도에 만족하고 자신의 일을 그만두는 베짱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기본소득 25~30만원이 매우 작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정도만이라도 팍팍한 생계에 있어 유의미한 숨통과 여가의 틈새를 창출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 전체로 봤을 때도 유의미한 활력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매달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든 개인들에게 25~30만원이 지급되는 대한민국 사회를! 복지사각지대를 상징하는 세모녀 자살사건들이 어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것은 커다란 목표를 위한 작은 시작이라는 점도 덧붙여두고자 한다.

사민2

[상상짓기] 지구적 사민주의의 <글로컬 기본소득>
– 일국적 유형의 복지국가론과 <세계연방공화국 복지사회론> 모색

나는 솔직히 기본소득을 처음 대하는 순간, 이는 남녀노소 빈부격차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기본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를 <재산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라고도 불렀다.

필자가 보기에 적어도 <낮은 기본소득> 정도는 세계시민으로서의 기초보장이 될 수 있는 경제적 기본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지구행성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사회책임 기초보장>의 혜택을 당연한 기본적 권리로서 누릴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무조건적인 <1인 1기초소득>은 남녀남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생존의 안전망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세계빈곤과 기아의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확고한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이미 <글로벌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있으며 이는 유럽의 글로벌 기본소득 재단(Global Basic Income Foundation)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www.globalincome.org 참조). 하지만 나 자신이 여기서 <글로벌>global을 <글로컬>glocal로 제안하는 이유에는 범국가적인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더라도 개별 지역적 정황의 차이도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역적으로(glocally) 국가적ㆍ지역적 특색에 맞는 <사회적 기업>과 <노동자소유협동조합 기업>이 더 많이 발전적으로 증대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정책들 역시 필요할 것이다. 정확히는 노동자라기보다 기본소득을 받는 모든 <인민소유협동조합형> 기업들이 곳곳에 세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기초생존의 삶에서 보다 나은 기초생활로의 적극적 견책이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기본소득은 진정한 노동유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여진다.

기존 사민주의 노선의 한계 중 하나는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복지국가론 모델이 대부분 일국적 유형의 모델인지라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휩쓴 신자유주의 바람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비하기가 힘들었던 점이 있다. 초국가적 자본의 흐름은 전통 복지국가에 많은 도전과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켰음에도 이 초국가적 자본의 횡포에 대해서만큼은 사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대안은 우클릭으로서 나왔을 뿐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초국가적 자본이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를 휩쓸고 다닐 만큼 많은 폐단과 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3세계의 희생,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 유발, 기아와 빈곤 등 여러 문제가 불가피하다. 의자뺏기 게임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의자를 못찾고 결국은 희생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사민주의의 실천은 여전히 지역적일 순 있어도 이 같은 논의 자체는 이제 <글로벌 사민주의 네트워크>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를 구상해볼 필요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일국적 지평의 사민주의적 실천과 전략에 대한 논의는 어느 수준에선 분명 한계를 갖기 마련이며, 이러한 점은 90년대 이후 보수화한 스웨덴 사민당 정책 방향의 변화 속에서도 분명 확인해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본과 시장은 이미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값싼 임노동의 문제와도 맞물려 국가 간의 이민자 문제와 난민을 발생시키기도 했었다.

결국 사민주의도 일국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사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평등 자유 연대의 가치를 지구역적으로(glocally) 계속 확장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보편복지의 기본 인프라는 사실상 어디에서나 어느 나라에서나 기초생존의 안전망을 위해서라도 정착화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글로컬 기본소득>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상세한 논의를 더 진행하기가 힘든 점도 있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도 말씀드린다.

사실 지금 제안되는 <글로컬 기본소득>은 어쩌면 앞서 말한 1-2-3층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염두에 두고 있을 필요도 있기에 언제라도 이론적인 논의 자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제적 금융거래의 투기자본의 이동에 대한 토빈세(Tobin tax)도, 국제적 가이드라인과 연대로서의 생태환경세도 충분히 논의되어 오히려 더 많은 <글로벌 배당 기금>의 재원을 확보할 수는 방안도 계속 논의될 필요 역시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시민권으로서의 <글로컬 기본소득>을 통해 경제민주주주를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ㆍ평등ㆍ연대를 세계 안에 증대시키는 일이기에 사민주의 가치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국가의 시대는 결국 <세계연방공화국>의 시대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연방공화국의 초기 형태는 중앙집권형이 아닌 연방제 모델로서 개별국가가 여전히 주체일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가운데 세계연방공화국으로서의 거버넌스를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작업들이 요구될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지평에서는 이기적으로 자국의 국가 살림과 재정만 챙기기보다는 또 한편으로는 조금씩이라도 <글로벌 배당 기금>을 위한 협력을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세계연방공화국의 전초 모델로서 EU의 현재가 여전히 역사적 실험 중에 있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국가는 분명 절연된 마디인 점이 있어 일국적인 국가살림의 레벨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반면에 국가를 넘는 초국가적 지평에서 연대적으로 함께 해볼 만한 사항들도 있다고 보기에 나는 이러한 점들이 앞으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높은 기본소득>까지 실시할 여건마저 되는 부강한 나라일 경우, 현재 기본소득을 실시하지 못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낮은 기본소득>으로서 좀 더 다같이 누릴 수 있게끔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한국이 17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나는 희망을 두고 있는 사민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다.

나오며 – 사민주의 진영과 기본소득 진영 간의 공유점과 출발점

정리하자면 나는 사민주의적 기본소득론 전략으로 <사회책임 기초보장>을 제안하였고, 이는 선별복지가 아닌 보편복지가 일반적으로 우선하는 가운데, 부분적이라도 보편복지의 점진적 실현과 확장 전략을 말씀드렸었다.

사실 사민주의자들 중에는 생각만큼 선별복지와 보편복지에 대한 구분과 정리를 날카롭게 하고 있진 않은 점도 있는데, 때로는 자신을 보편복지론자로 소개하면서도 정작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선별복지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민주의자라면 보다 확고하게 보편복지의 점진적 실현과 확장을 좀 더 선명하게 주장해주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또한 현재 선별복지로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보편복지 정책들로 수정될 수 있도록 촉구함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한된 상황에서는 선별복지를 실행할 수도 있긴 하나 그것이 선별복지의 일반적 우선성 자체를 정당화시키는 건 아닐 것이다.

또한 보편복지의 실현을 촉구할 경우 보수세력들은 이에 맞서 <세금폭탄 선동>을 해댈 것도 뻔한 일이다. 그럴 때에 나는 양 진영이 함께 나서서 <자발적 증세운동>을 벌였으면 한다.

바로 그 첫 시작이 바로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하나로 운동>에 그리고 <노인기본소득 증세운동>에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층짓기 : 첫 시작은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을 위한 <자발적 증세 운동>으로
2층짓기 : 무상의료 및 노인기본소득의 초두 효과를 근거로 보편복지 더욱 확장하기
3층짓기 : 사회복지지출 및 조세부담율을 OECD국가 평균 수준으로 향상해 전면기본소득 실행으로

증세 및 조세 개혁에서는 복지국가론자나 기본소득론자나 양 진영 모두 사회복지지출 및 국민 조세부담율을 OECD국가 평균 수준 혹은 설정된 목표까지는 계속 끌어올리기가 공통되며, 이를 위한 과세 내용으로는 토지와 금융에 대한 소득 과세를 비롯해 새로운 세금 신설도 얼마든지 마련해 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복지국가론을 주장하는 사민주의자라면 기본소득론이 몽땅 쓸모없다고 버리거나 하진 않길 바랄 뿐이다. 적어도 보편복지를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사민주의자라고 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좀 더 생산적이고 나을 수 있다고 본다.

기존 기본소득론자들은 전면기본소득제 시행만 염두에 두지 말고 가능한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실행 역시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해주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국가 자체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냉소적 시각도 잠시 거두어주기를 바라며, 적어도복지국가론자와 기본소득론자가 함께 하는 <증세동맹 복지연대>를 깨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가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반대로 복지국가론자들은 <기본소득제>라는 명칭에 대한 편견 및 부정적 시각 역시 거두어주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그것은 보다 철저한 보편적 복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름 문제 때문에 <증세동맹 복지연대>를 깨트려서도 곤란할 것으로 본다.

행여 기본소득론자들은 복지국가론자가 부분기본소득론만 받아들이고 전면기본소득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증세 및 복지동맹>의 여지까지 깨트리거나 하진 않길 빈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선 부분기본소득제만이라도 얼마든지 함께 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면기본소득론의 실현 역시 부분기본소득제의 실현에도 달려 있기에 결국 나중의 일이 될 수 있잖은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상적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함께 공유하며 구축해갈 수 있는 보편복지 확장 운동이 연합네트워크 전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축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바이다. 나는 사민주의자다. 동시에 나름 소신 있는 기본소득론자 중의 한 명이다.

필자소개
사회민주주의센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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