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라는 괴물
    괴물같은 국가를 개조하기 위한 전제
        2014년 05월 21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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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도 없는 눈물을 흘린 박근혜 공주님의 연기력에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녀의 담화문에 대해 “실망했다”고 말하는 지인들을 저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망했다면 말 그대로 한때 희망이 있었다는 뜻인데, 저 같으면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해서도, 그녀가 대표하는 현재의 국가에 대해서도 희망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녀가 담화문에서 말한 대책은 각종 부서 혁파, 각종 부서간의 의무 갖다붙이기, 공무원 사회에 민간 전문가 등용 등등이었는데, 이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보다 큰 문제는, 그녀가 대표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성격”인데, 그 부분을 당연히 그녀도, 그녀의 어떤 부하들도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체로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은 총자본의 “총체적 조정기관”입니다. 지금 세모그룹에 강하게 나서는 등 가끔 개별 자본의 이해관계를 침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궁극적으로 총자본의 총체적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예컨대 대한민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없습니다.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은 크게는 세 가지입니다:

    1. 총자본과 총노동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는 어느 정도 총자본을 위해 총노동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는가? 즉, 얼마나 반노동자적 국가인가? 라는 부분

    2. 피착취자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권과 최소한의 절차를 존중하고 얼마나 그들의 대자본, 대국가 투쟁의 권리를 존중하는가? 즉 얼마나 억압적인가? 라는 부분

    3. 복지(welfare)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군사기능(광의의 warfare)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가? 즉 얼마나 군사화돼 있는가 등입니다.

    이 세 가지 측면으로 봐서는, 우리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제가 밥먹고 사는 방식이 교직 노동자인지라 일단 저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점수를 주자면 총평은 F입니다. 그리고 항목마다 상세한 절대/상대 평가를 하자면:

    1. F- 입니다. 대한민국은 철저한 반노동 국가, 노동배제 국가입니다. 경제력에 비하면, 최악에 가깝습니다. 즉, 이 정도로 제조업이 성장한 사회에서 이 정도의 반노동 정책을 펴는 것이 거의 전례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외의 어느 나라에서 콜트이나 기륭전자처럼 노동자들이 4-5년씩이나 거의 고립을 당하다시피 하면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처참한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까? 노동열사,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운동가들이 대한민국 말고 이렇게 많이 배출한 산업화된 사회는 있나요?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분회장 추모집회에 최루액을 난사하는 경찰(사진=장여진)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분회장 추모집회에 최루액을 난사하는 경찰(사진=장여진)

    대한민국에서 기업이나 국가가 소리도 안나게, 산재 따위 할 것 없이, 과도한 업무부담을 주어서 죽이는 노동자/공무원노동자, 즉 과로사의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인정한 케이스만 해도 일년에 평균 약 7백명입니다. 그들에 대한 대책을, 공주님이 언제 말할 것 같습니까? 본인이야말로 일상이 된 기업 살인의 총책임자인데 말입니다.

    2. D- 입니다. 아직도 1990년대에 그만둔 듯한 양심수 고문 등을 다시 재개하지 않았으니 F을 주는 데 약간 주저하지만 이미 F에 가까워집니다.

    며칠 전 경찰이 시위자들을 다룬 방식을 한 번 보시죠. 그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 행진 참가자들을 봉쇄하고, 토끼몰이식으로 후퇴 통로를 차단하고 그 어떤 폭력도 행사할 가능성이 제로인 아이와 아이 어머니들까지 마구잡이로 끌고 가고…

    침묵 행진을 하는 학생들을 다룬 방식도 한번 보시죠. 기초적 민주성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그 어떤 국가도 이렇다 할만한 “공세적 행동”도 하지 않는 시위자들을 이렇게 다룰 리 만무합니다.

    정말 경찰국가의 전형이며, 고문/살해 대신으로 원자화된 신자유주의 사회에 더 걸맞는 “경제 처벌”과 “사회적 시민권의 제한적 박탈”을 사용합니다.

    즉 시위 참가자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담케 하여 인제 신체 대신에 생계에 위협을 가하고, 거기에다가 “전과자”로 만들어 평생동안 “2등시민”으로 살게끔 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민주화”와 무관한 저질깡패식 경찰국가일 뿐입니다.

    3. F- 이며, 이 성적에 대해 아마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듯합니다. 다들 아니까요. 대한민국의 군비 지출은 세계 10위로 (관련 글 링크), 그 경제력 랭킹보다 훨씬 높습니다.

    비교하자면 대륙형 거대 국가, 즉 인도나 브라질과 맞먹는 수준의 군비를 제출합니다. 국민총생산 내 군비 비율 (2,8%)은 중국 (2%)이나 독일 (1,4%) 등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국가들에게 국민총샌산내 복지 비용의 비중으로 랭킹 매기자면 대한민국의 위치는? 맞습니다, 33위 (9%)입니다 (관련 글 링크). 터키 (12%)보다 꽤 낮고, 멕시코 (7%)보다 약간 높은 거죠. 경제력에 비례해서 말씀드리자면 “세계 최악”입니다.

    파쇼 독일의 괴링이나 괴벨스가 “버터보다 대포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연설로 악명이 높지만, 대한민국 역시 “버터보다 대포”를 아주 우선시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최악의 노동배제 국가, 억압 국가, 군사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괴물 같은 대한민국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자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은 수백 명이 아니고 수천 명도 아니고 수백만 명이 돼야 합니다.

    수백만 명이 침묵 행진을 하면서 거리를 메꾸면, 그들을 다 잡을 경찰력도 없을 것이고, 또 그들을 집어넣을 유치장도 부족할 것입니다. 대다수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이 괴물 같은 국가를 진정으로 개조하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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