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와 '핵' 없이
    하루라도 생활할 수 있을까?
    [에정칼럼] 녹색당의 ‘석유 없이 1박 2일’ 체험기
        2014년 05월 19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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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말엽, 미국 환경학의 선구자인 도넬라 메도스(Donella Meadows)는 자신이 노예를 부리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가 노예라고 지칭한 것은 ‘석유와 석탄’이었다.

    메도스의 말을 살짝 비틀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 순간 ‘석유와 핵’의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 한, 좀처럼 ‘석유와 핵’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012년도 석유제품 소비량은 8.3억 배럴에 달했다. 8.3억 배럴은 1,319억 리터로 200리터 드럼통 6.6억 개에 달하는 양이고, 63빌딩 높이로 236만개를 쌓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또한, 같은 해 고리(1~4호기), 월성(1~4호기), 영광(1~6호기), 울진(1~6호기), 신고리(1~2호기), 신월성(1호기) 등 23개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전한 전력량은 150,327GWh로 전체 전력생산량의 29.5%를 차지했다.

    단 하루라도 ‘석유와 핵’으로 부터의 해방을 경험해 보면 어떨까? 이러한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석유 없이 1박 2일’ 행사는 기획됐다. 고양파주 녹색당이 주관하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주)쌈지농부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지난 5월 10일~11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진행됐다.

    조금은 불편한, 좀 더 행복한 삶

    석유 없이 생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석유는 고갈되는 유한자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점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석유생산정점(피크오일)은 현 세대가 직면하게 될 현실이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쉘 알레크렛(Kjell Aleklett)는 IEA가 2030년 전망에 대해 ‘2004년에는 121Mb/d(million barrels per day), 2006년에는 116Mb/d, 2008년에는 106Mb/d, 2010년에는 96Mb/d’로 전망치를 낮춰온 것이 “피크오일의 시대(Peak of the Oil)”를 반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석유 없는 삶에 대한 우리의 준비는 너무 미약하다. 더구나 석유-핵 중심의 에너지시스템에 종속돼 있는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실천은 매우 제한적이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석유 없이 1박 2일’ 참가자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저녁을 짓기 위한 ‘고효율 화덕’을 만드는 일이었다.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의 안병일 상임이사의 간략한 원리 강의에 이어 벽돌을 쌓고, 황토를 바르고, 연통을 다는 어쩌면 단순한 작업에 5~6명이 세간동안 땀 흘려 만들었다. 함께 비지땀을 흘려 만든 화덕에 가마솥을 얻어 밥을 짓는 데는 팔뚝만한 장작 두 개만 넣었을 뿐인데, 15분 만에 찰진 밥이 완성됐다.

    강준

    왼쪽부터 완성된 화덕, 화덕에 밥 짓기, 자전거 발전기

    참가자들이 (주)쌈지농부의 텃밭에서 뜯어 온 여러 채소와 집 된장으로 만든 비빔밥은 소박하지만 싱그러운 자연의 맛이었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 사회적기업인 에너지팜에서 주문 제작한 자전거발전기로 생산한 전기로 믹서기를 돌려 만든 주스는 행사 참가자 뿐만 아니라, 헤이리로 나들이 온 꼬마들에게 단연 인기였다.

    저녁식사 준비에 꼬박 한나절을 보낸 셈이니, 자본주의 셈법으로는 비경제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처음으로 석유 없이 밥을 지어 먹은 참가자들에게는 돈과 바꿀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식사 후 텐트를 치고 작은 장작불에 의지해, 참가자가 직접 만들어 온 수제 맥주와 김포 유기농 막걸리로 서로의 삶과 경험을 나누었다. ‘불을 끄고 별을 보다’라는 에너지절약 슬로건을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이튿날 남은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참가자들은 종이박스를 이용해 커다란 태양열조리기를 만들었다. 태양열 조리기로 만든 삶은 메추리알은 누군가의 표현대로 ‘태양 맛’이었다.

    적정기술, 혹은 적당한 기술

    자전거 발전기로 전기를 만들고, 화덕과 태양열조리기로 음식을 해 먹는 것은 체험행사로서만 ‘적정’한 것이라고 한계 지을 수도 있겠다. 근본주의 시각으로는 자급자립의 삶이 중요할 수 있고, 그것이 미래지향적인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또한, 노후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반대를 정책화․제도화 하기위한 정치운동도 중요하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구호로서의 탈핵과 에너지전환에서 내 삶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작지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베란다 태양광이나, 대기전력 차단을 위한 절전탭 사용, 혹은 성대골과 십자성마을 같은 마을 공동체 단위의 절전소 운동과 은평 등의 에너지협동조합운동 등 다양한 차원의 에너지전환을 위한 실천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개인과 마을단위의 실천이 원전하나줄이기 등 정치․제도 개혁 노력과 만날 때, 에너지전환은 구체적 실체를 띠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탈핵, 혹은 에너지전환은 제도와 시스템의 전환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의 양식의 전환이기도 하다. 메도스의 표현처럼 “신음하는 지구의 짐을 덜어주려” 최선을 다해 석유와 핵 노예를 덜 사용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모여질 때, 에너지전환은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녹색당4

    참가자들이 만든 녹색당 현수막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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