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살 불평등, 여든까지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책소개] 『분노의 숫자』(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동녁)
        2014년 05월 18일 01: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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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람에서 무덤까지.” 흔히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국가의 사회보장 체제를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분노의 숫자》가 본 한국사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사회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경쟁에 내몰린다. 사교육 시장은 이미 영유아기까지 확대됐으며, 소득에 따라 사교육비 차이도 크다. 경쟁에 지친 청소년들은 꽃을 펴 보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학 입시를 위한 경쟁이 끝나면 취업 전쟁이 기다리고 있지만 높은 임금을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퇴는 점점 빨라지고 은퇴 후 자영업을 시작해 보지만 자영업 시장 역시 대기업이 독식해 10곳 중 1곳도 살아남기 어렵다.

    서민들은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등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비용들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대출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은 질병이나 실업 등 약간의 위기에도 쉽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국은 빈곤에 빠지기는 쉽고 빈곤에서 탈출하기는 어려운 사회다. 젊은 세대는 이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모든 세대에 걸쳐져 있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세 살 불평등이 여든까지” 이어진다.

    《분노의 숫자》는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교육, 노동, 성, 주거, 건강 등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그리고 점점 심화되는 불평등에 관한 총체적인 보고서다.

    분노의 숫자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불평등에 관한 기사를 수도 없이 접한다. 대기업 임원과 노동자 평균 연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지니계수는 얼마나 커졌는지, 평균 집값은 얼마나 올랐는지……. 너무 자주 봐서 오히려 불평등이라는 현상에 둔감해졌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되고 지속되고 있다. 이 책이 보여 주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정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충격적이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데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이 낳아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드는 평균 양육비가 3억 1,000만 원이 드는 사회에서 출산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임원 연봉은 노동자 평균 연봉의 137배나 높지만 208만 8,000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일하고 있으며, 여성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저임금 노동자다.

    임금이 적으니 사람들은 주거비·의료비 등 생활에 필수적인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늘리고 있는데, 대출을 받는 서민들의 절반은 사채업자가 포함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있다.

    가난할수록 소득에 비해 의료비와 주거비 등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100명 중 35명이 빈곤을 경험해 봤으며 빈곤에 빠지기는 쉽고 빈곤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빈곤을 경험해 본 가구의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국가로부터 노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한국 노인들은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가난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숫자로 읽는 불평등, 그래프로 보는 불평등

    이 책은 경제, 노동, 주거 등 사회 전반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진보적 종합연구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에서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줄 수 있는 통계 수치들을 2년에 걸쳐 분석한 자료들을 모아 구성한 것이다.

    <한겨레>의 안수찬 기자는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권력에 의해 오염된 것으로 여겨졌던 숫자를 빌어 권력이 숨기려는 진실을 드러냈다. 권력의 수법이었던 숫자는 이 책에 이르러 새롭게 태어났다. 숫자야말로 불평등을 고발하는 진짜 지식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라고 썼다.

    이 책은 심각한 불평등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하기 위해 숫자를 이용한다. 숫자가 포함된 각종 통계 수치를 통해 불평등이 나타나는 현실을 드러내고 구조적인 분석까지 제시하고 있다. ‘새사연’은 경제, 노동, 주거, 의료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지식인들의 집단이다. 이들이야말로 불평등을 감추려는 국가권력을 상대로 숫자라는 무기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식인들인 것이다.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최초의 불평등 보고서

    여러 기관에서 발표하는 각종 통계 그래프는 분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통계를 분석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책은 ‘새사연’ 연구원들의 꼼꼼한 통계 분석과 더불어 통계 그래프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보여 주기 위해 인포그래픽을 활용하고 있다.

    불평등을 나타내는 각종 통계들을 인포그래픽으로 보여 줌으로써 한국사회의 실태를 직관적이면서도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다. 최근 각종 미디어들은 정보를 시각화하는 인포그래픽을 종종 활용하고 있지만, 여태껏 인포그래픽을 활용해 한국사회 불평등 실태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책은 없었다. 이 책 《분노의 숫자》는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최초의 불평등 보고서다.

    분노에는 무슨 힘이 있는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숫자들이야말로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이다. 이 책은 분노와 동시에 분노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 국가는 꼼짝도 않는다. 빈곤을 개인의 탓으로 치부할 뿐이다.

    이 책이 보여 주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결국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된다. 바로 사회안전망의 부재다. 우리는 갑자기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 위기에 닥쳤을 때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활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사회안전망의 확대야말로 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안이기도 하다.

    두 달여 전,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활고 때문이었다. 아픈 딸들을 대신해 식당에서 일을 하던 60대 여성이 팔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하면서 생계를 이을 수 없게 되자, 공과금을 포함한 마지막 월세 70만 원을 옆에 두고 두 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사회안전망 부재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하고 순간적으로 분노했지만, 그 분노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있었을 뿐 국가의 사회보장 체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이 책이 분노만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순간적인 분노는 힘이 없지만 분노가 지속된다면 분노의 대상을 개선할 수 있다. 분노는 지속되어야 한다. 분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독자들은 《분노의 숫자》를 통해 한국사회 불평등의 실태를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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