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안전사회, 어떻게 가능하나
        2014년 05월 16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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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재해 및 사고는 인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천재지변’과 관리 부실 등의 ‘인재’로 나눌 수 있다.

    상시로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빼놓더라도 우리 사회는 90년대부터 유독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었다.

    93년 서해페리호 침몰, 씨프린스 침몰(김영삼 정부) 99년 씨랜드 화재(김대중 정부) 2004년 대구지하철 화재, 2007년 태안기름유출(노무현 정부) 2009년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이명박 정부)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올 2월의 경주 리조트 붕괴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고를 일으킨 대부분은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배상 등의 사고 책임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눈이 많이 왔는데 어쩔 수 없었던 아니야’ ‘망망대해를 다니는 배가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무감각과 관대함은 소수 몇 사람의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고 잊혀져 버리고 만다.

    이런 대응들이 오늘날 세월호 사건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것은 사고 원인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사고 후 초등대응 등 사고 발생 이후에만 몰입하는 모습들이다.

    벌써 세월호 참사 한달 째이다. 구조 작업의 미흡한 부분에 관해서는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겠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냥 넘어간다면 제2의,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원치 않지만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구조작업의 컨트롤타워(control tower)만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면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주장으로 예컨데 이런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시각으로 부터 1시간 40분의 시간이 주어졌기에 구조 시간은 충분했다. 그럴 때 목숨 걸고 뛰어든 해경과 구조요원들의 제대로 된 활약만 있었다면 충분히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상황에 관한 진단은 100% 동의한다.

    그러나, 안전한 사회는 그것으로 충분할까? 아니라면 안전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잘 훈련된 해상구난요원들만 있다면 해상사고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잘 훈련된 소방요원들만 있다면 더 이상 건물이 붕괴되거나 화재는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또 항공기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더 나아가 작년 한 해 산업현장에서 귀중한 목숨을 잃은 1,920명과 같은 희생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911사태의 구조과정에서 숨진 460명의 미국 소방관과 같은 고귀한 희생정신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사회는 안전한 것일까? 지금과 같은 논의라면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 10년 전 대구 지하철 사고 발생의 최초 원인 제공자는 정신질환자였다. 요즘 외국에서나 볼 법한 묻지마 칼부림이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만 사회에서 격리시키면 되는 것일까?

    언젠가 강남의 청담동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별 다를 것 없는 부유층 주택가 풍경 속에 특이한 것은 사설경비원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모두 사설경비원들과 소방. 구조대원을 대동하고 다녀야만 안전한 것일까? 사설구조대원이 선박, 항공, 철도 등의 대형 교통시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지난 겨울 경주 리조트 사고는 평년보다 많은 눈이 내려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하중을 견디지 못할 만큼 부실하게 설계된 건축물이 문제였다. 95년 씨랜드 참사의 경우도 안전검사 부재와 가연성 조립식 자재로 건축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250만 대구시민의 발 역할을 담당했던 대구지하철은 마찬가지로 화염에 매우 약한 자재들로 건조되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20년 이상의 중고선박, 무리한 증.개축, 운송 수입을 늘리기 위한 3배 이상의 화물과적, 직원 안전관리의 부재 등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기업이윤 증대를 위해 시설확충 및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디 그 뿐인가? 고층건물을 신축하면서 안전펜스를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추락사하고 3,000도의 쇳물에 빠져 죽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울산 국가산업단지 내 기업체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화재, 폭발, 질식사고의 이면에는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에 편승, 산업현장의 안전관리는 기업 자율에 맡겨 놓은 채, 폭발사고 대응은 소방본부에서, 사고 이후 규제 등은 고용노동부에서 담당하면서 발생하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를 강타하는 기업 내 또는 대형운송 교통사고와 같은 재난은 왜 멈추지 않을 것일까?

    대부분의 사고에서 드러나듯 비용 절감과 생산성 증대라는 미명 아래 작업자 기본원칙마저도 무시하고 있는 기업들의 안전 불감증과 안전문제를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 논리, 즉 자본의 논리에 기인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묵인하는 정부 조직의 부조리와 부패, 무능이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 관련하여 한가지만 덧붙여 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내뿜는 일종의 정신질환자들이 있다. 그들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승자독식주의에서 상처입은 낙오자들이다.

    가끔 찾아가는 노숙인 시설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은 그들이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다. 부득불 부속같은 ‘사회시스템’의 한계에서 질식된 결과다.

    세월호에서 4년간 임시직으로 근무했던 어느 선원은 평소에도 배의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말했었다고 유족들은 전한다.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행동양식과 더 나아가 정신세계까지 그 시대상과 역사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삶을 깊이 있게 헤아릴 때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한발 나아갈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해경 및 정부의 무능 그리고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인면수심의 선원들의 비판과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이제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돈보다는 생명을,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와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한다. 아울러 해운. 철도. 버스 등의 대중교통은 하루속히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는 ‘공영제’를 실시해야 한다

    필자소개
    사회민주주의센터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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