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들이 전하는 이야기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이 밥, 저 밥, 그 밥
    2014년 05월 16일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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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지날 무렵의 노량진.

학원이 끝나는 시간. 길거리로 몰려나온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서서’ 밥을 먹고 있었다. 더러는 여럿이서, 더러는 연인들끼리, 더러는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풍경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어컨 외풍기가 달려있는 건물 옆에서 건물 벽을 바라보며 대접 하나에 담긴 밥을 수저로 먹고 있는 모습들은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밥이 아닌 밥

나는 노숙인 단체와 친분이 있었다. 사회운동을 하던 시절, 빈곤을 의제로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숙인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고, 그 때 나는 간혹 아저씨들과 함께 무료급식을 이용했다.

비 오는 날 서울역 중앙지하차도에서 나는 처음으로 무료급식을 받아 먹었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광장에서 나눠주던 무료급식을 지하차도로 옮겨서 하는 것.

일회용 국그릇에 밥을 담는다. 콩나물국을 붓는다. 그 위에 달걀후라이를 하나 얻고 그 위에 김치를 얻어서 일회용 수저를 꼽아서 주는 밥이었다. 물론 달걀부침도 김치도 모두 국에 담가진다.

그런데 내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걸 먹는 과정이었다. 아저씨들은 모두 중앙지하차도 벽에 바짝 붙어 쭈그리고 앉은 채 벽을 쳐다보며 식사를 하셨다. 지하였지만 바닥은 빗물로 젖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하차도를 오가고 있다. 그 양쪽 벽면에 빽빽이 쭈그리고 앉아 벽을 쳐다보고 식사를 하는 모습은 가히 진풍경이었다.

밥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 그러나 존엄 따위는 산산이 부서진 슬픈 풍경.

지하차도 노숙인

서울역 지하차도에서 노숙인들이 밥을 먹는 모습(2006년 자료사진)

나도 벽을 보고 쭈그리고 앉았다. 서있을 때와 쭈그리고 앉았을 때,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했다.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콩나물 국밥에 달걀 그리고 김치라는 더할 것 없는 조합이 더할 수 없이 망가져 있었다. 이미 국은 식었고, 가득 떠 준 밥이 국물을 흡수해 거의 남아있지도 않았으며, 달걀후라이의 기름기와 김치의 고춧가루가 표면에 살짝 떠다니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 어느 아저씨인가가 오줌을 지려놨을 지도 모를 벽을 보며 앉아 먹는 밥. 이건 밥이지만 밥이 아니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실업대란. 그 이후 5년이 지나도록 무료급식을 하는 곳에 식탁과 의자는 없었다. 무료급식은 민간이 하는 것이었고, 정부의 지원금은 10원도 없었다.

노숙인단체 활동가의 설명으로는 돈이 없어서 천막과 간이식탁과 의자를 설치하지 않는 게 아니란다. 그럼 왜? 무료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길바닥에 앉아서 먹어야 후원금이 더 들어온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더욱 불쌍해보여야 그걸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 뷁.

(지금은 무료급식소에 당연하게 설치되어 있는 천막과 식탁과 의자. 이걸 들여놓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의 밥

여름이었다. 아저씨들과 삼계탕을 끓여 먹기로 했다. 장을 보러 가는데 아저씨들이 삼계탕에는 도라지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삼이나 황기를 넣지 않고 도라지를 넣어요? 도라지란다. 진짜요? 진짜 도라지를 넣어야 한단다. 왜요?

아저씨들은 도라지를 넣는 이유를 몰랐고, 나는 알았다. 삼계탕에 인삼을 넣을 엄두를 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삼과 닮은 도라지를 넣어온 것이다. 아저씨의 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래서 인삼을 살 수 있다고 해도 ‘삼계탕엔 도라지’가 정석처럼 굳어진 것이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은 점심에 밥은 직접 하고 찌개는 가까운 식당에서 시켜 먹는다. 1인당 1천원을 내서 주문을 한다. 인원이 열 명이면 “아저씨 찌개 만원어치요” 하고 주문하면, 만 원 이하는 찌개냄비 하나가, 만 원 이상이면 두 개의 찌개냄비가 오고, 반찬이 냄비 수에 따라 온다. 한 냄비면 반찬이 한 벌, 두 냄비면 반찬이 두 벌 오는 식이다.

밥은 듬뿍 떴으나 반찬이 턱없이 부족한 밥상이다. 찌개의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먹고도 밥이 남는 경우가 다반사.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중얼거렸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에 가난한 날의 행복이 밀려 들었다고라. 니미뽕이다.”

그나마 사무실에서는 밥이라도 챙겨먹을 수 있었다. 집에 있는 날에는 어떻게든 한 끼만 먹고 그날을 보낼 심산으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라면을 먹었다. 라면이 아니면 밥에 물을 말아 김치랑 먹는 게 전부였다. 한 번은 큰 맘 먹고 편의점에 가서 즉석밥 하나와 스팸 하나 작은 김 하나를 집었다. 금액이 5천원 가까이 나온다. 라면 먹자…라면.

함께 먹는 밥

여의도에서 농성을 하는데, 밥을 사먹을 돈이 없었다. 여의도 물가로는 김밥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농성단에서 재료비를 지급하고, 노숙인 단체에서 밥을 해서 날랐다. 그런데, 이게 참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밥을 해 나르는 노숙인 단체 대표는 제법 요리사여서 매일 매끼의 식사가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여럿이 농성장에서 함께 먹는 밥은 언제나 맛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밥하기는 밥과 국과 김치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실험으로 이어졌다. 노량진 시장에서 돌게를 한망태기 사다가 간장게장을 담가서 먹었고, 밤이 되면 오뎅을 한 통 끓이거나 닭을 고아 농성장 사람들과 소주를 한잔 하기도 했다.

나는 이 때 알았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밥상이 있다는 것을.

명절에는 아저씨들과 연휴동안 먹을 음식을 마련했다. 그나마 후원이 들어올 때는 괜찮았으나 후원이 적을 때는 적은 돈으로 여럿이 연휴 내내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동그랑땡에는 돼지고기 대신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참치캔을 넣었고, 동태전 대신에 고구마전을 한 소쿠리 부쳤다. 그나마도 고구마가 쌀 때의 일이지만, 고구마는 가격 대비 엄청난 양의 전으로 변신했다. (고구마전은 매우 맛있다. 그러나 맛있어서 고구마전을 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조금 산 고기로는 큰 들통에 국을 끓였다. 풍성한 명절이었다. 조금의 융통성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애인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작은 파티를 했다. 밖에서는 쉽게 사먹지 못하는 음식.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제철이라는 음식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렀다.

봄에는 쭈꾸미 샤브샤브를 먹고, 여름에는 야외로 나가 등갈비를 구웠다. 가을에는 전어와 새우를 굽고 겨울에는 김장을 하며 모였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함께 맞았다. 밖에서는 돈 주고 사먹기에 비싼 스테이크며 스파게티며 월남쌈이며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었다.

가끔 출장음식도 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많아지면서 동료상담교육이 많아졌다. 보통 2박3일로 진행되는 일정에서 마지막 날 저녁에는 뒤풀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변함없이 언제나 항상 늘 통닭에 과자와 과일이 전부인 뒤풀이다.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 배달해 주는 (저렴한)음식이거나 1층에 턱이 없고 입식인 식당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나는 뒤풀이 음식으로 중증장애인이 먹기 쉬운 음식들로 연어샐러드며 육회며 순대볶음 등을 해 날랐다.

나는 밥으로 말했다. 나에게 함께 먹는 밥은, 나눠 먹는 밥은 말 대신이었다.

밥과 밥

아침은 토스트와 김밥의 세상이다.

마가린의 고소한 냄새. 두툼하게 만들어진 야채계란패티. 빵 구워지는 냄새. 케첩과 설탕까지 솔솔 뿌려 종이컵에 받아들면 아침이 든든하다. 겨울이면 따끈한 두유가, 여름이면 시원한 우유가 제격이다. 동묘에 가면 아직도 토스트가 천원이다.

김밥노점상들은 오전에 잠시 장사를 하는 것 같지만 김밥을 준비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아침에 따끈한 김밥을 내어놓기 위해서는 낮에 자고 거의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밥을 하고, 김밥 속을 만들고, 김밥을 말고, 주먹밥을 싸고……. 나는 신대방역 김밥부부의 멸추주먹밥을 제일 좋아한다. 이른 아침 동그란 주먹밥이 주머니에서 따뜻하다.

내가 잉어빵을 팔 때, 잉어빵으로 식사를 하는 분들이 있다. 마차에 서서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잉어빵으로 묵묵히 서서 먹는 아저씨. 나는 잉어빵 하나를 덤으로 더 드린다.

떡볶이를 할 때는 꼬마김밥을 식사대용으로 먹는 분들이 있다. 세 개 천 원 하는 꼬마김밥을 2천원어치 혹은 3천원어치 흡입하듯 먹고 총총히 떠나는 손님들. 그나마 이분들에게는 오뎅국물도 떡볶이 국물과 떡 몇 개도 제공할 수 있으니 좋다.

경동시장 앞에는 오리알을 삶아 파는 노점이 있다. 이 오리알은 그 자리에서 까서 먹어야 제 맛이다. 오리알은 경동시장을 찾은 가벼운 주머니의 어르신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할 뿐 아니라 훌륭한 안주가 되어준다. 오리알 하나에 잔 술 한잔. 배가 뜨끈하다.

퇴근길이나 밤늦은 시간. 포장마차의 우동처럼 위로가 되는 음식이 있을까. 김이 모락나는 주황색 포장마차에 앉아서 나무젓가락 비벼 탱글한 우동을 한 입, 국물 살살 불어 한 모금, 노란 단무지 안 입 베어 물면 하루의 피로가 녹는다. 소주 한잔 곁들이면 금상첨화. 이럴 때면 우동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수고했어…….’

사람들은 노점을 통해 허기를 메우고, 나도 노점을 통해 먹고 산다. 나의 밥이 너의 밥이 되고 네가 나를 먹이고 내가 너를 먹이는 밥과 밥의 고리들. 나의 노점도 그 어디쯤에 있다. 그 고리가 더 튼튼하고 더 인간다울 수 있다면.

나는 노점상이다.

나도 컵밥을 먹는다. 먼저 3000원을 내고 취향대로 주문을 한다.

컵밥

컵밥을 파는 노점상 모습

먼저 입구가 넓은 일회용 국그릇에 순한 맛의 김치볶음밥이 담긴다. 이 김치볶음밥만 먹어도 맛있다. 여기에 김치볶음과 제육볶음이 올라가고 그 외에 삼겹살, 오리훈제, 참치마요, 불갈비 등 선택한 메뉴가 올라간다. 한 곁으로 비엔나 소세지나 스팸과 달걀후라이를 얹고 데리야끼 소스를 살짝 뿌린 뒤 김을 올리고 깨를 뿌려 내놓는다. 푸짐하다.

컵밥을 받아들고 보니 서서 컵밥을 먹는 것이 이 거리의 문화다. 싸고 맛있는 음식을 모두가 즐기며 먹고 있었다. 서로 다른 토핑을 연인끼리 서로 먹여주며, 서로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며 밥을 먹는다. 맛있네. 재밌네. 괜찮네…….

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내 노점의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테다.

다시 밥상을 차리자. 사랑한다고 말은 못해도 밥을 나눠먹을 수는 있으니.

필자소개
유의선
전직 잉어빵 노점상. 반빈곤 사회단체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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