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맹이 빠진 산업안전 대책
    [기고] 뜬구름 잡는 계획으로 안전 담보 없다
        2014년 05월 15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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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충격과 허무함이 가시기도 전에 5월 들어 1주일 사이에 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자원봉사자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산업사고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고는 연속적으로 집중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이곳 저곳에서 터지는 사고는 온 국민을 공황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열흘 간의 사고의 유형과 분야도 다양하다. 총제적 위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5월 2일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로 후속열차 기관사 등 7명이 중상을 입고 24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틀 뒤인 4일 이번엔 케이블카가 멈춰 섰다. 대구 앞산 케이블카 고장으로 승객 10여명이 다쳤다.

    8일은 전국 사고소식을 전해주는 스마트폰 어플 알람이 세 번이나 울린 날이었다. 이제 알람이 뜰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첫 번째 알람은 다시 지하철이다. 이번엔 지하철 1호선이 신호기 고장으로 100여 미터를 역주행하는 아찔한 사고가 났다. 이 열차에는 35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두 번째, 세번째 알람! 이번엔 사업장이었다. 저녁 6시 27분께 울산국가산단 후성 유화공장에서 보일러 LNG가 폭발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고 불과 7분 뒤인 6시 34분께는 같은 공단 SK케미칼 공장 저장탱크 청소작업 중 질식사고가 발생하여 노동자 3명이 중태에 빠졌다.

    9일은 오전 5시 10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 가스밸브 교체 작업 중 가스폭발로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안전사고

    정부가 급하긴 급했나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10일 안산지역 추모제엔 2만 여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였다.

    그래서 서둘러 발표했을까! 다음날인 11일, 참고로 일요일이었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보도자료를 통해 산업 분야의 안전관리시스템을 손 본다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 계획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이달부터 6개월간 외부용역을 통해 제철소, 석유화학공장, 발전소 등 주요 산업시설을 중심으로 설비 설계에서 운영까지 단계별 안정성 확보 조치 현황, 사고 발생 때 대응체계(사업장 공정안전보고서(PSM)에 포함되어야 할 주요내용이다), 정부와 민간기업의 관련 조직·제도를 파악한다고 밝히며 이를 토대로 산업안전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고장, 화재, 폭발 등 안전사고 발생 때 적용하는 대응 매뉴얼을 정비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덧붙여 최근 잇따른 산업재해의 주요원인을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 지시,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작업의 하도급 위임, 안전관리 규정 미준수와 같은 관행’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표 내용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대책이라고 하는 것은 분석된 원인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헌데 이번 산업부의 대책은 자신들이 분석한 주요 원인은 그대로 둔 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49조 2항이 규정하고 있는 사업주의 공정안전보고서 제출의무 주요 내용을 파악하고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49조 2항에 사업주가 작성, 제출해야 할 <사업장 공정안전보고서 제출의무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안전운전계획(안전운전지침서/ 설비점검·검사 및 보수계획, 유지계획 및 지침서/ 안전작업허가/ 도급업체 안전관리계획/ 근로자 등 교육계획/ 가동 전 점검지침/ 변경요소 관리계획/ 자체감사 및 사고조사계획/ 그 외 안전운전에 필요한 사항

    ② 비상조치계획(비상조치를 위한 장비·인력보유현황/ 사고발생 시 각 부서·관련 기관과의 비상연락체계/ 사고발생 시 비상조치를 위한 조직의 임무 및 수행 절차/ 비상조치계획에 따른 교육계획/ 주민홍보계획/ 그 밖에 비상조치 관련 사항

    정말 사업장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근시안적 대책이다. 공정안전보고서 작성 주요내용에는 앞서 산업부가 파악하겠다고 하는 거의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헌데 아쉽게도 사업장 공정안전보고서는 정부의 안전점검을 받기 위한 서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과건강’이 2013년 ‘화재,폭발,누출 사고은폐 현황 발표회’을 통해 현장조사 결과를 밝혔듯이 서류상 완벽하게 만들어진 공정안전보고서는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산업부가 실태 파악을 위해 조사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사업장은 보다 완벽한 공정안전보고서로 보완하고 정부기관이 나오는 날에 맞춰 현장 준비를 끝내 놓을 것이다. 노동부 현장안전점검이 나온다고 하면 작업을 멈추고 깨끗이 청소를 한 상태에서 감독관님들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꼴이라는 것이다.

    제대로 파악이 될 리 없고 파악이 제대로 안되니 산업부가 계획하는 ‘산업안전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고장, 화재, 폭발 등 안전사고 발생 때 적용하는 대응 매뉴얼 정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기간을 6개월이나 잡았으니 그럼 1주일에 6건이 나는 지금 현실에서 어쩌자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산업부는 주요 원인은 아주 잘~ 명쾌하게 분석하였다. 그런데 이 주요 3가지 원인은 지금까지 시민,노동,환경단체가 수없이 주장해 온 내용이다.

    물론 법제도개선 ‘다단계하도급 금지, 위험작업 외주화 금지, 사업주 처벌 및 원청 책임성 강화법 제정’ 등이 주된 내용이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본원인을 모른 채 하고 이런 식의 위기모면형 대책 발표는 정말 자다 남의 다리 긁는 격이다.

    또 한가지는 ‘산업통상자원부’라… 좀 생뚱맞은 관계기관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개 글을 찾아보니 ‘2013년 3월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지식경제부의 상업·무역·공업, 외국인 투자 및 자원·에너지에 관한 업무 외에 통상교섭 및 FTA에 관한 업무를 추가하여 산업통상자원부 신설’이라 설명하고 있다.

    산업사고의 주된 부서인 고용노동부나 환경부가 아닌 이 부서가 이런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개 내용을 아무리 유추해봐도 납득이 안 된다. 이번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통일된 관리체계 부재도 지적된 점을 상기하면 여러 부서에서 신경 쓰면 잘 될까 싶은 심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의 대책 발표가 있은 지 불과 이틀만인 5월 13일 또다시 사고는 계속되었다.

    오전 8시 54분께 울산 온산읍 LS니꼬 공장 제련2공장에서 보수작업 중 폭발로 인해 하청업체 8명의 노동자가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의 주요원인도 앞선 표에서 밝힌 사업장 사고원인과 일맥상통하다.

    위험을 수반한 보수정비작업을 협력업체에 하도급을 준 것이나 사고가 근무시간외 발생한 것으로 보아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지시가 의심된다는 점이나 산소농도, 잔존가스, 정비 또는 가동 전 점검 등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이다. 이처럼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정부의 근본적인 법제도적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산업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목소리 높여 외쳐도 가능성이 없다.

    조만간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고 언론매체마다 연일 보도되고 있다. 발표하기도 전에 이렇게 난리를 피는 것도 처음 보지만 걱정이다. 제발 ‘산업통상자원부와 같은 뜬구름 잡는 계획’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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