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둥 여자의 불에 덴 남자
    [산하의 가전사] 이스라엘 최초 여성 총리 골다 메이어
        2014년 05월 13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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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1898년 5월 3일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땅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유태인 목수의 딸로 태어났지.

    동유럽 일대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은 대대로 툭하면 얻어터지는 동네북 신세였어. 어렸을 적 소년소녀 세계 문학전집의 곳곳에 드러나던 유태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수백년 동안 변하지 않았지.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라던가 심지어 <대장 부리바>에서 전쟁통에서조차 장사를 하고 술을 팔던 유태인 얀켈리까지 말이야.

    대장 부리바의 한 대목이 기억나네. “하지만 유태인들은 화산 아래에서 장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카자흐들은 툭하면 술에 취해 몰려가 가게를 박살내고 유태인들을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20세기가 열렸지만 그 사정은 변하지 않았어. 이 유태인 소녀 골다도 고향에서의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아버지가 문 앞에 판자를 박아대던 모습을 꼽아.

    빈 집으로 위장해 유태인을 습격하는 폭도의 마수를 피해 보려던 몸부림이었지. 그래도 문을 부수고 칼을 휘두르며 ‘예수를 죽인 자들을 죽여라“고 외치는 아우성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어린 마음에도 난 누구이며 우린 왜 이렇게 당해야 할까 의문을 가지게 됐겠지. 그때 그녀는 몰랐겠지만 그 의문은 그녀의 평생을 지배하게 돼.

    소녀의 가족은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미국에서 그녀는 새로운 삶을 만나게 돼. 가난한 살림이야 우크라이나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맞아죽을 우려는 없었고 똑똑한 소녀는 학교에서도 두각을 드러내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가난은 여자에게 더 잔인하지. “골다, 여자가 웬 공부냐? 취직이나 해서 돈이나 벌어!”는 한국의 완고한 아버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어 바로 이 소녀의 부모도 그랬거든. 자기가 벌어서 다니겠다고 우기던 이 소녀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곧 학업을 중단해야 했어. “시집이나 가!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이것도 매우 한국스러운 유태인 멘트.

    하지만 소녀에게는 출구가 있었지. 나이 터울이 많고 부모에게 반항하다가 나홀로 독립을 택한 큰 언니가 그 출구였지. 사회주의자였던 언니는 공부하고 싶어하는 동생에게 “인생 뭐 있냐? 그러다가 시집이나 갈 거냐?” 탈출을 권했고 소녀는 마침내 부모 곁을 떠나 언니에게로 간다.

    공부도 공부지만 사회주의자였던 언니의 곁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거기서 그녀는 시온주의에 눈 뜨게 해. “우리들의 가나안 땅, 팔레스타인엔 우리 동포들이 가 있다오. 땅을 일구고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언젠가는 다비드의 별이 휘날리기를 바라면서.”

    소녀의 가슴은 뛴다. 나와 같이 핍박당하고 설움받던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꿈꾸며 지구 반대편에서 억세게 살아가고 있구나.

    소녀는 나이가 먹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한 남자를 사귀게 되지. 골다도 솔직히 너처럼 그다지 외모면에선 출중하지 못한 편이었고 후일 회고에서 “그래서 나는 딴 생각 없이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한 적이 있는데 반면 성격은 무지 쾌활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 메이커였지.

    대신 그녀의 사랑 모리스는 뭐랄까 좀 아는 것도 많고 음악에도 조예가 있고 문학 청년스러운 그런 분위기의 도회적 남자였어. 둘은 안 어울리듯 잘 어울렸고 사랑에 빠진다.

    골다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고 골다와 모리스는 결혼에 골인하지. 이젠 그야말로 미국의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살아가면 제격인 인생이었어.

    하지만 골다의 팔자는 그렇지 못했어. 시오니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절, 유태인 집단과 어울리면서 그녀는 가슴이 뜨거워졌고 ‘하티크바’ (후일 이스라엘 국가가 되는 스메타나의 <몰다우> 비슷한 선율의 노래)를 부르면서는 머리에 전율이 일었어. 그녀는 남편에게 조르기 시작해. 여보 우리 팔레스타인으로 갑시다.

    모리스로서는 그다지 당기지 않는 일이었어. 미국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는데 간혹 흘러 듣긴 했지만 무슨 위험과 간난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팔레스타인 땅에 간다니. 하지만 골다는 설득을 멈추지 않았지. 이미 텔아비브에서는 유태인들이 자치를 시작했대요….. 몇천 명의 유태인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대요. 영국의 밸푸어 외상이 우리들의 땅을 약속했어요…. 모리스는 사랑하는 여자의 유혹에 또 한 번 넘어가고 만다. 좋아 가자고.

    둘은 팔레스타인에 와서 키부츠(집단농장)에 들어간다. 그런데 골다는 적성에 맞았지만 모리스에게는 영 질색인 곳이었어.

    시오니즘의 열렬한 지지자에다가 사람들에게 싹싹하고 어려서부터 단련된 노동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골다와는 달리 이 섬세하고 심약하며 혼자서 음악 듣기를 즐기던 문학청년 남편은 키부츠 생활이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 집단농장이라는 말 그대로 모든 게 공동체의 원칙대로, 개인의 생활을 철저히 복종시키는 곳이었으니까.

    결국 모리스는 병을 얻어. 그러자 골다도 어쩔 수 없었지. 골다는 텔아비브로 나와 보통 생활로 돌아오게 돼. 그때만 해도 골다에게는 남편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지. 아들 딸이 태어난 것도 그때였어. 골다는 회사원으로 열심히 일하며 다시 한 번 평온한 가정의 주부이자 어머니로 살아갈 판이었지.

    그런데 골다의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휘돌았을 거야. “가만. 내가 뭣 땜에 대서양을 건너 지중해를 지나 수에즈를 넘어서 여기에 왔단 말이야? 당신이 원하면 다 때려치우려고? 아닌데!”

    다시금 골다는 이스라엘 독립 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돼. 남편 모리스에게는 참 안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도무지 한 남자의 아내와 어머니로 남을 그릇이 아니었던 거지. 보통은 남자가 그렇게 되고 여자가 “임께서 가시는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를 부르거나 “망할 놈. 나라가 뭐라고 처자식 굶기고…..” 툴툴거리는 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건 일반적인 일인데 골다 부부의 위치는 역전됐던 거야.

    영어에 유창했던 골다는 해외 출장도 잦았고 일도 똑부러지게 해서 유태인 지도자들의 귀염을 받지. 그런데 모리스는? 애들은? 모리스는 좋은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잘 돌봤지만 한때 미국에서 행복한 신혼을 즐기던, 키부츠에서 앓아 누웠을 때 정성스레 보살피던 아내의 손길을 잃게 된다. 애들도 살뜰한 엄마를 잃었고.

    원래 남자들은 ‘큰일’에 나서면 가족들 별로 신경 안쓰는 게 또 상례지만 골다는 꼭 그렇지도 않았던가봐. 왜 여자니까.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애들을 팽개치는 거냐는 언니의 힐난에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야 했으니까.

    “난 이 일을 어쩌다 하는 것이 아니야.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의사가 사라(딸)의 상태를 보고 내가 떠나도 좋을 정도라고 말해서 내가 떠난 거야…… 지금으로선 주변에서 들어오는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어. 내가 하는 일이 구세주를 오게 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나라)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의 구세주를 부르는 역할을 톡톡히 해. 2차대전 후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독립의 길에 들어서고 주변 아랍국들의 살기가 점점 더 번득여 갈 때 그녀는 미국에서 피를 토하면서 미국 유태인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거든. “우리는 싸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길지 저쪽이 이길지는 여러분이 결정합니다. 제 부탁은 이것입니다. 제발 늦지 마세요.”

    그녀가 얻어온 돈으로 이스라엘은 무장하고 “독립 선언하는 날 그 나라를 뭉개버릴 것”이라고 선언한 아랍국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지. 그녀는 이미 어머니라기보다는 정치가였고 아내라기보다는 외교가가 돼 있었지.

    1947년 11월 독립전쟁의 전운이 팔레스타인을 뒤덮을 때 그녀는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에게 사절로 파견돼. 압둘라 국왕은 그녀의 딸이 이집트 군의 공격로에 있는 키부츠에 있음을 상기시켜 피난을 권유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지. “폐하 호의는 감사합니다. 그러나 거기엔 제 딸 이외에도 유태인의 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열정적으로 외국으로 돌아다니던 중 한때 사랑했던 남편은 쓸쓸히 세상을 떠나게 되지 그때 모리스의 심경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아내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그녀가 지대한 공을 세운 독립국 이스라엘 국기 다비드의 별을 바라봤을까 아니면 내가 미쳤지 저 여자를 못알아보고 하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갔을까?

    골다마이어

    골다 메이어 얼굴이 찍힌 이스라엘 지폐

    그 후 알다시피 골다 메이어는 이스라엘의 수상까지 지내며 이스라엘의 현대사를 자신의 개인사와 일치시킨다.

    영화 <뮌헨>에서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을 공격한 검은 9월단을 끝까지 추격하여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매서운 할머니가 바로 그이며 4차 중동전을 지휘하며 이스라엘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견뎌낸 것도 바로 그녀였으니까.

    남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과 결혼했다 할 그녀가 은퇴했을 때는 아무 재산이 없고 심지어 가전제품같은 것도 없어서 동료 정치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대충의 살림을 꾸려 줄 정도였다고 해.

    그녀가 나이 여든에 세상을 떴을 때 30년 먼저 저승에 간 남편을 만났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그녀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모리스. 나는 나 자신을 믿었어요. 평생 살며 만족할 수 있는 나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구요. 내 안의 작은 가능성의 불꽃을 키워서 불기둥으로 만들도록 나를 이용하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덧붙였겠지. “그 불에 데게 해서 미안해요.”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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