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정규직인 당신에게
    진보정당에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까닭
        2014년 05월 12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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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후 9일째 되는 날이었던가? 점심을 먹으며 관련 뉴스를 보다가 ‘울컥’하였다. ‘살아야 고기도 씹는 법.’ 순간 고기를 씹는 내 이가 천박하게 느껴졌다. ‘아! 나는 내 가족이 사망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슬픈 것일까?’

    뇌 과학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발동원리를 거울뉴런으로 설명한다. 뇌에 ‘남의 상황을 나의 상황으로 여기게끔 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자상을 보며 느꼈던 소름. 영화를 보며 흘리는 눈물. 모두 거울뉴런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그렇다. “네가 먹는 것만 보아도 배부르다”는 우리네 부모의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었다.

    측은지심은 진보가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이다. 이웃의 아픔을 감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부분적으론 나의 것이기도 하기에.

    진보의 덕은 역시 타인의 아픔을 나눗셈의 공식으로 접근하는데 있다. 누군가의 아픔이라는 작은 ‘피제수’를 우리 모두가 소유한 물적∙인적 자본이라는 커다란 ‘제수’로 나눈다. 예컨대 매 점심을 거르는 부모 없는 몇몇의 꼬마들을 위하여 다 같이 조금의 세금을 더 내는 일. 차별 받는 소수의 장애인을 위하여 다수의 일반인들이 처우개선을 말하는 일.

    그렇다면 이 측은지심을 노동문제로 가져와 보자. 대체 한 사업장 내에서 함께 일하는 정규직들은 왜 비정규들의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이 모두 타인의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특정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집단 이기인가?

    현재 많은 학자들이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구덩이에 빠진 누군가가 구해달라며 손을 뻗는다. 당신은 그의 손을 잡을 것인가? 응당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 보자. 불타는 집 안에서 누군가가 구해달라며 비명을 내지른다. 당신은 그에게로 뛰어갈 것인가? 아마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규직이 바라보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후자와 비슷하다. 구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반면, 위험성은 지나칠 정도로 높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위험성이 그리 크지 않다면 사람들은 시도할 것이다. 반대로, 위험성이 높더라도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용기 있는 누군가는 뛰어들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지금까지 이 두 가지(가능성과 위험성)를 절망적인 수준으로 관리해왔다. 결과로 이제 정규직들은 수긍 가능한 이유들에 기대어 비정규직의 아픔을 당당하게 수수방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측은지심은 모두의 마음에 깃든 것이다. 그들 역시 아플 것이다. 비정규직들의 자상을 보며 그들 역시도 크게 소름이 돋을 게다…

    한편으로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절망의 가능성을 기회로 여기어 불구덩이에 뛰어들려 하는 누군가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어쩌면 그는 영웅심에 빠진 과대망상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범인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당신은 그와 함께 뛰어들진 못한다. 제 코가 석자이므로. 그러나 젖은 담요와 응원 정도는 충분히 지원해 줄 수가 있다.

    이것이 정규직인 당신이 비정규직 처우에 관심을 갖는 진보정당에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근거이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부디, 심장이 뛰는 곳으로…

    필자소개
    구본기재정안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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