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별급여,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대형병원과 민간보험사를 위한 로봇수술 선별급여 도입
        2014년 05월 12일 01: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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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수술이 이르면 2015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것으로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팀장은 지난 4월 11일 ‘로봇수술의 명암과 비전’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로봇수술에 대해 “이르면 2015년, 늦어도 2016년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선별급여는 ‘비용대비 치료 효과가 낮아 필수적 의료는 아니지만 사회적 수요가 큰 의료’를 단계적으로 급여화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6월 선별급여 도입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 모두가 그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으나, 12월 3일 선별급여 제도가 포함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최근에는 선별급여의 첫 항목으로 로봇수술 도입까지 거론되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수술

    로봇수술 관련 토론회 사진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의 퇴행에서 출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을 보건의료 분야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선별급여 제도는 지난해 6월 제 2차 사회보장위원회에서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 방안의 하나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는 모든 비급여까지 100% 보장하겠다는 기존의 공약에서 한참 후퇴된 정책이다. 3대 비급여인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제외하고, 기타 비급여만 선별급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장의 범위를 크게 축소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별급여는 △의학적 필요성이 낮으나 환자 부담이 높은 고가 의료, △임상근거 부족으로 비용효과 검증이 어려운 최신 의료, △치료효과 개선보다는 의료진 및 환자편의 증진 목적의 의료 등에 본인부담금을 50~80%로 하여 건강보험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결국 정부는 환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3대 비급여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의학적 필요성이 낮고, 비용효과성도 떨어지는 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여하겠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자료사진

    고소득층 편의 위주, 대형병원 쏠림 현상 강화

    선별급여 도입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우선 선별급여가 모든 국민이 아닌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우려가 있다.

    선별급여에 포함될 행위들은 가격이 높아서 현재도 비교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만 주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이다. 따라서 이들 행위에 대한 보장성을 조금 높인다하더라도 어차피 혜택을 받게 될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별급여는 건강보험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포기한 제도라 볼 수 있다. 또한 선별급여가 시행되면, 대형병원 환자 쏠림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선별급여 대상이 되는 최신 의료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몇몇 대형병원에 불과한 현실을 비추어 본다면, 무분별하게 보장성을 높이게 되면 이곳으로 환자가 더 몰릴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안정성·유효성 등 검증되지 않은 로봇수술의 선별급여

    이러한 선별급여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최근 선별급여의 첫 번째 항목으로 로봇수술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로봇수술은 아직 안전성, 유효성과 비용효과성도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이다.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보고서(1)에 의하면 로봇수술은 기존의 수술방법(개복수술, 복강경수술)에 비해 장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결과 장기 생존율, 재발률, 심각한 부작용 등과 같은 주요 지표에서 기존 수술법과 차이가 없었다.

    2013년 2월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로봇수술의 비용 효과에 대한 비교 연구논문(2)에서도 합병증과 수혈, 재수술, 입원일수, 사망, 비용에 대해서 로봇수술과 복강경수술 간에 차이가 없었고, 비용만 로봇수술이 평균 33% 정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4월 11일 토론회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3)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암 로봇수술의 안전성·유효성은 복강경수술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으며, 단지 전립선암에서만 안전성·유효성이 일부 입증되었다.

    단순히 수요의 법칙만 주장하는 정부

    이렇듯 로봇수술은 안정성·유효성·비용효과성도 검증되지 않았으나 정부는 로봇수술에 대한 선별급여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 “환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의료정책은 단순히 수요의 법칙에만 근거해서 운영해서는 안 된다. 의학적 필요는 환자의 수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환자와 의료인 간의 정보 불균형이라는 보건의료 자체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와 행위별수가제의 특성상 ‘유인 수요’(4)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단순히 현재 로봇수술의 수요가 많다는 이유로 선별급여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측은 로봇수술 선별급여 도입의 근거로 “대형병원의 비급여를 조사한 결과, 로봇수술 관련 진료비가 상위에 위치해 있다. 그만큼 환자들의 수요가 많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앞서 기술했듯이 이러한 수요 중에는 유인 수요가 상당하다. 안정성·유효성·비용효과성도 증명되지 않은 비싼 로봇수술 기기가 채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전국에 44대나 도입된 배경은, 대형병원들이 최신 의료기기 도입, 병상 수 증축 등의 군비경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비싼 임대료를 내며 들여온 로봇수술 기기를 활용하기 위해 유인 수요를 끊임없이 만들어냈으며, 이는 환자들이 고비용의 로봇수술을 선택하게 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대형병원과 민간보험사 배불리는 로봇수술 선별급여화

    이러한 상황에서 로봇수술의 선별급여 도입이 이루어진다면 유인 수요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급여화된 의료의 행위량이 증가하여 폭발적인 의료비 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선별급여 항목은 기존의 급여항목에 비해 여전히 원가마진이 높은 항목이다.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임상적 유효성을 확대하거나 편의성 등을 이유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선별급여를 강제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결국 의료 행위량 증가가 의학적 필요에서라기보다는 병원의 이윤추구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정 팀장의 다음 발언으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는 “비용 때문에 효과가 있는 의료기술이 사장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시장이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급여화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로봇수술 기기를 보유한 대형병원들이 고가의 가격 때문에 환자를 유치하기에 곤란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대변자가 되어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로봇수술을 하고 있는 대형병원의 경영 개선을 위해 안정성·유효성·비용효과성 어느 것 하나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활로를 열어주겠다는 속셈이다.

    또한 선별급여의 도입은 민간보험사들의 배를 불리는 정책이 될 수 있다. 현재 개복수술이나 복강경수술에 비해 500만원 정도 비싼 로봇수술을 선택한 환자들은 상당수가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민간보험사들은 로봇수술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이 상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수술이 선별급여로 적용되면 지금까지 민간보험사에서 지급하던 로봇수술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상당 부분 대신 내주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더해 민간보험사는 가격 표준화로 재정계획을 세우기가 수월해진다.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게 되면 민간보험 가입의 동기가 떨어져 민간보험사에게 타격이 되지만, 선별급여는 민간보험의 필요성을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민간보험사의 부담만 덜어주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선별급여’는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에서 크게 후퇴한 정책일 뿐만 아니라, 대형병원과 민간보험사만 배불리는 의료공공성에 반하는 퇴행적 정책인 것이다. 로봇수술을 선별급여의 항목으로 선정한 것이 그 취지와 지향에 맞는 것 일 수 있지만, 환자의 수요만 많으면 급여로 도입하겠다는 선별급여의 원칙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선별급여는 병원 및 의료 관련 자본이 의학적 필요와 무관하게 시장만 키워놓으면 급여화 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형병원과 민간보험사 배만 불리게 되는 정책인 것이다.

    의료 상업화와 이윤추구에 대한 통제가 선행되어야

    선별급여 도입과 로봇수술 선정 과정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로봇수술의 비용효과성을 면밀히 따져서 판명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선별급여 도입과 로봇수술 선정 문제가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의료공급체계를 민간에게 맡기고 대형병원의 상업화와 이윤추구를 보장해왔다.

    로봇수술과 같은 고가의 의료기기 도입에 있어서도 정부는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통제하는 장치나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들 사이에서는 최신 의료기기 도입이라는 군비경쟁이 치열해 졌고, 국민건강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비급여 부분에 대한 민간보험사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방치한 채,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라는 결과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 나온 것이 ‘선별급여 도입과 로봇수술 선정’인 것이다.

    선별급여 정책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에 악영향을 끼칠 제도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별급여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의료 자본의 상업화와 이윤추구에 대한 통제 장치나 사회적 합의를 도외시한다면, 이번 선별급여 도입과 같은 논란은 계속 다른 형태의 제도와 그에 파생하는 문제로 재생산될 뿐이다.

    <참고 자료>

    1.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로봇수술에 대한 의료기술평가>, 2010

    2. Jason D. Wright, MD., et al, “Robotically Assisted vs Laparoscopic Hysterectomy Among Women With Benign Gynecologic Disease”, JAMA, 2013.Vol 309, No. 7

    3. http://jhealthmedia.join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228

    4. 유인 수요란 일반적인 의학적 판단으로는 수요가 아니지만 의사들의 유도로 인해 추가로 의료서비스의 수요가 발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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