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 향수의 토양은 ‘무지’
    [책소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제바스티안 하프너/ 돌베개)
        2014년 05월 11일 0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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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1907~1999)가 사후 15년 만에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하프너는 1938년 나치의 폭정을 피해 조국을 떠난 뒤 20여 년간 영국 저널리스트로 활약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작가다.

    조국을 등진 지 16년이 지난 1954년에야 <옵서버>지 특파원이 되어 독일로 돌아왔고, 1961년 베를린 장벽이 동서를 갈라놓고서야 비로소 모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긴 세월, 조국의 입장에 반(反)하는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의 하프너 사랑은 각별하다.

    독일 제국의 성립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 히틀러의 부상과 몰락에 이르는 독일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다룬 하프너의 저서들이 잇달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그의 이름을 내건 텔레비전 쇼가 인기리에 방송되었을 정도다.

    저명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귀도 크노프에 따르면, 하프너는 한마디로 독일의 “국민작가”다. 그것도 “가장 좋은 의미에서 국민작가”다. “과격한 젊은이보다 더 용감하고 더 젊은 생각”을 지닌 채, “단 한 번도 강자들에게 자신을 굽힌 적이 없”이, “독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관심사와 지식수준을 고려”해 “역사지식과 역사의식 면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하프너라고 귀도 크노프는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하프너가 그저 많은 인기를 누린 정도가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프너는 또한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오랫동안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으면서도 역사학계에 팽팽한 긴장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는 면에서, 그리고 글을 쓰는 스타일이 그 이전이나 이후의 독일 작가 누구와도 달랐다는 면에서 그렇다.

    하프너는 쉽고 평범한 단어들을 엮어서 더없이 신선하고 명징하면서도 때로 촌철살인의 일격을 가하는 문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귀도 크노프에 따르면, 하프너는 “도이치 언어권에서 그 누구와도 다르게 글을 쓴다. 힘차고, 긴장감이 있고, 우아하고, 독창적”이다. 문체뿐만 아니라, 거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역사와 세계를 거시적으로 읽어내고 분석하고 압축하고 해석하는 능력 또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문체와 너른 시야는 영국과 독일의 경계에서 오랫동안 떠돌아야 했던 하프너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작가로 남아 있는 하프너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 책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은 그의 굵직굵직한 저작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대표작이다. 작은 판형, 부담 없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생애, 히틀러 현상의 배경, 히틀러 현상이 당대와 후대에 미친 영향 등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분석한다. 그야말로 작으면서도 큰 책이다.

    골로 만, 요아힘 페스트 등이 격찬하고,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히틀러 관련 서적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작은 방증일 뿐이다. 또한 이 책은 문제적 인간 히틀러에 대한 책인 동시에 놀랍도록 명쾌한 현대사 개론서다.

    빼어난 문장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20세기가 어떻게 무너지고 재편되었는지, 지금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적, 지역적인 거리감으로 인해 우리에게 낯설거나 어려울 수 있는 문제들은 분야 전문가로 정평이 난 번역자 안인희가 맞춤하게 보충하고 풀이해 준다.

    히틀러 현상의 모든 것

    이 책의 제목은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다. 히틀러를 다룬 저술들이 이미 나올 만큼 나온 상황에서 자신은 그저 소박하게 주석 몇 가지를 덧붙인다는 의미다.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외형부터 여느 책과 다르다. 작고 얇아서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펴 볼 수 있다. 히틀러 관련 서적은 우리나라에도 꽤 여러 종이 나와 있는데 상당수는 먼저 그 크기로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다. 끝까지 읽기엔 힘에 부치고, 다 읽고 나도 워낙 양이 많아서 내용 요약이 쉽지 않다.

    그에 비해 하프너의 이 책은 히틀러 현상의 전체 의미를 놀랍도록 간결하게 요약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생애, 성과, 성공, 오류, 실수, 범죄, 배신 이렇게 일곱 개 장으로 나눠서 히틀러와 히틀러 현상의 모든 것을 낱낱이 짚고 넘어간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놓았다.

    이번 한국어판의 저본으로 삼은 1998년판 서문에서 귀도 크노프는 이 책을 일러 “먼지 하나 앉지 않는 책”,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젊고 싱싱한 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또 하나의 전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활자도 큼직하고 각주도 거의 없이 히틀러에 대해 200쪽 분량으로 써놓았기에 독자의 눈길은 자연스레 핵심에 가닿는다. (……) 아주 단단하고 본질에 충실한 책으로, 히틀러에 대한 저 방대한 지식의 정글 사이로 길을 열어준다.”

    히틀러

    ‘결핍’, 히틀러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더없이 인상적인 문장으로 히틀러의 ‘생애’를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의 56년 생애를 설명하는 단 한마디는 ‘결핍’이다.

    흔히 히틀러의 삶을 얘기할 때, 실업학교를 그만두고 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도 떨어진 뒤 빈과 뮌헨 등지를 떠돌며 연금생활자로 살았던 생애 전반기와, 서른 살 가을 극우파 정당에 가입해 주도권을 쥐면서 반전을 맞이하는 생애 후반기로 나눠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 두 시기 사이에 놓인 거대한 심연, 거대한 간극에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해 왔다.

    그런데 하프너는 그 심연이 그저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히틀러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허약함과 실패로 점철된 생애 전반기와 힘과 업적으로 채워진 후반기를 가르는 횡단면이 아니라, 비상한 집중도를 보이는 ‘정치적 삶’과 믿기지 않을 만큼 앙상한 ‘개인적 삶’ 그 둘 사이를 길게 가르는 종단면이라는 것이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개인적 삶이 늘 너무 빈약하고 위축되어 있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히틀러의 삶에서는 한 인간의 삶에 품위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감쪽같이 빠져 있다. 교육, 직업, 사랑, 우정, 결혼, 아버지 노릇 따위가 전혀 없다.

    히틀러는 정치와 정치적 열정을 빼면 아무 내용이 없는 삶, 너무나 가벼워서 쉽게 내동댕이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각오가 히틀러의 정치 경력을 늘 따라다녔고 마지막에는 당연하게도 정말로 자살했다.

    히틀러의 삶에서는 사랑이나 우정도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죽음을 함께한 에바 브라운은 늘 모욕적인 취급을 받다가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전 애인이자 조카딸이었던 겔리 라우발은 정말로 자살했다.

    젊은 시절부터 서로 ‘자네’라고 부르던 유일한 친구 에른스트 룀을 히틀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성격이나 개성에서 발전과 성숙이 없고 자기비판 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것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히틀러는 그 자신이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히틀러교 신도였던 것이다.

    ‘경제기적’과 ‘재무장’, 히틀러 현상의 토대

    그렇다면 이렇듯 별 볼일 없이 출발했고 너무나 큰 결핍과 결함을 지닌 히틀러가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하프너는 이 지점에서 자칫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정면으로 거론한다. 바로 이 책의 두 번째 장과 세 번째 장 제목이기도 한,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는 12년 통치 기간 중 처음 6년 동안 거의 아무도 이전에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로 친구들과 적들을 모두 깜짝 놀라게 했다.” 이로써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대다수 독일 국민들을 내면에서 무장 해제시키고, 일부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은밀한 존경을 바치게끔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히틀러의 성과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것은 ‘경제기적’이다. 히틀러가 제국의 총리가 된 1933년에 독일에는 60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으나 불과 3년 만인 1936년에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

    통치기의 첫 6년 동안 독일의 ‘재무장’과 ‘군비 확장’을 이룬 것도 경제기적만큼이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히틀러가 총리가 되었을 때 현대적인 무기도 공군도 없이 그저 10만 명의 군대뿐이던 독일이 1938년에는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와 공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성과와 성공이 고도의 선전술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고 말한다. 실로 엄청난 성과가 눈앞에 펼쳐지자 나치당원이 아닌 사람들조차 히틀러의 업적에 반해 차례로 총통 신자가 되었다.

    총통 신앙의 전성기에는 독일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총통 신자들이었다. 당시 독일 국민은 이렇듯 실제 성과에 열광했고, 이것이 훗날 더 큰 불행과 파국을 초래했다.

    그러나 하프너는 세 번째 ‘성공’ 장에서 히틀러의 성공이 스스로 무너지기 직전의 쉬운 적들을 상대로 얻은 것이었음을 잊지 않고 지적한다. 국내정치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이미 속이 다 비어서 죽어가고 있을 때 일격을 가해 권력을 쟁탈했고, 국제적으로는 베르사유 조약이 이미 안에서부터 흔들려서 지속될 수 없을 때 마침 조약을 끝장내는 역할을 해냈다. 1930년대 후반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외교적인 성공도 마찬가지다.

    하프너는 ‘성공’ 장의 말미에서 히틀러가 이미 죽어가는 상대를 찾아서 처리하는 탁월한 본능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정치가에게는 매우 쓸모 있는 본능으로 “독수리의 시력보다는 콘도르의 후각에 비할 만한 것”이라고 덧붙인다.

    터무니없는 ‘오류’, 그리고 최악의 범죄

    히틀러의 눈부신 성공가도가 얼마 못 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음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하프너는 이 책 후반부 네 장에서 히틀러가 세상을 어떻게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비극의 시작은 히틀러의 그릇된 세계관이다. 히틀러는 터무니없는 오류를 안고 있는 조악한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상 유례없는 참극인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민족주의에서 ‘민족’, ‘종족’, ‘인종’ 개념이 너무나 불분명하고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고 말한다. 반유대주의도 그렇다. 유대인이 민족이나 종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종교 공동체에 가깝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히틀러가 그저 편집증적인 증오심과 허무맹랑한 위기의식, 즉 유대인이 아리안을 파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학살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전쟁 초반에 히틀러는 거의 평화적으로 유럽을 통합할 기회를 맞았으나 스스로 걷어차 버린다. 그 대신에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이미 예고된 패배를 완전히 확정짓고 점령 지역을 하나씩 잃으면서 그저 지연전쟁에 들어간다. 이는 독일 민족이 유럽을 지배한다는 계획이 이미 실패한 마당에 두 번째 계획인 유대인 말살에 필요한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였다고 하프너는 사뭇 독창적인 해석을 내린다.

    하프너는 히틀러를 대량 학살을 저지른 범죄자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인 목적도 없이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 히틀러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로스보다는 차라리 연쇄 살인범의 범주에 속한다고 덧붙인다.

    여느 연쇄 살인범이 수공업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달리 히틀러는 대규모 공장 방식으로 운영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400만에서 600만 명을 살해하기 이전에 이미 자국 환자 10만 명을 ‘쓸모없는 식충이’로 몰아 학살했고, 50만 명의 집시와 셀 수 없이 많은 폴란드 지식인을 살해했다. 또 러시아 전쟁 포로 47만 명을 처형하고 300만 명 가까운 포로를 수용소에서 굶겨 죽였다.

    히틀러의 범죄가 낳은 의외의 결과

    히틀러에 의해 세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특히 소련과 폴란드, 유대인의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소련은 히틀러로 인해 최소 1,200만 명을, 폴란드는 유대인 300만 명을 포함해 600만 명을, 유대인은 400만에서 600만 명을 잃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프너는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에게 가장 큰 해를 입은 것은 러시아도 이스라엘도 폴란드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히틀러로 인해 그토록 끔찍한 시련을 겪고 전후에 오히려 강해졌다.

    히틀러가 죽고 전쟁이 막을 내린 뒤 세계는 히틀러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히틀러가 그토록 말살하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수백만이 죽었지만 천년이 넘도록 염원했던 조국을 마침내 건국할 수 있었고, 소련은 히틀러에 맞서 싸우는 동안 그들 주장으로는 무려 2천만 명을 잃었지만 반면에 억지로나마 엄청나게 노력한 결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미국과 함께 냉전 시대를 지배했다.

    반면에 히틀러가 싸움을 걸 의사도 별반 없었던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2차 대전 이후 완전히 패권을 잃고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다. 요약하자면 히틀러로 인해 유럽 제국주의는 완전히 몰락하고,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프너는 히틀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독일이라고 말한다. 유대인 말살마저 불가능해지자 히틀러는 이번엔 민족의 죽음을 기도했다. 마지막에 히틀러는 “가장 훌륭한 말이 더비 경주에서 우승하지 못했다고 분노하고 실망하여 말을 채찍질하여 죽이는 경주마 주인처럼 행동”했고, 그 결과 독일에는 죽음과 황무지만이 남았다. 전쟁 중 사망자도 700만 명에 이르렀다. 마지막에 히틀러는 오로지 ‘민족의 배신자’였을 뿐이었다.

    그릇된 노스탤지어를 위한 치료제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지하 벙커에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5월 7일 독일은 서유럽에 항복하고, 다음 날인 5월 8일에는 소련에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유럽에서 전쟁이 막을 내린다. 69년 전 이즈음의 일이다.

    귀도 크노프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 노스탤지어는 무지라는 토양에만 거주한다. 히틀러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만이 그에게 열광할 수 있다. 전염성이 강한 히틀러 열병에 최고의 치료제는 과거나 현재나 히틀러에 대한 지식뿐이다. (……) 히틀러의 볼모로 남아 있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일의 트라우마인 히틀러를 늘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의식에서 밀어내면, 그것은 우리를 압박해 올 것이다. 우리가 다가가면 스스로 물러난다. 히틀러와 그의 탓으로 생긴 재앙을 알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책보다 더 나은 책이 없다”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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