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대항해,
    이미 고대에서부터 시작돼
    [책소개] 『인류의 대항해』(브라이언 페이건/ 미지북스)
        2014년 05월 11일 01: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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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인류에게 바다는 해독이 완료된 곳처럼 보인다. GPS(위성 항법 장치)와 디젤 엔진, 점점 거대해지는 대형 선박 안에서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바다에서 안전해졌지만 그만큼 바다로부터 멀어졌고 무지해졌다.

    수천 년 전 돛과 노, 태양과 별으로 연안 바다와 대양을 항해한 고대 인류에게 바다는 인격적인 존재였다. 고대 인류는 창의력과 눈부신 적응력, 억누르기 힘든 활동성을 기반으로 10만 년에 걸친 여정,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위대한 팽창을 매듭지었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인류의 가장 초기 항해의 역사로 거슬러 가서 다음의 물음에 답한다. 인류는 왜 한 번도 탐험된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는가? 무엇이 사람들을 수평선 너머로 이끌었는가? GPS, 디젤 엔진, 나침반조차 없이 어떻게 대양의 머나먼 섬을 정복했는가?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건너 하와이 제도와 이스터 섬 그리고 어쩌면 남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한 폴리네시아 카누부터, 기원전 10세기에 발사 나무 뗏목을 타고 멕시코까지 오간 안데스인의 여정, 서기 10세기에 북아메리카 동쪽 끝에 발 딛은 노르드 바이킹에 이르기까지 브라이언 페이건은 바다와 인류 문명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되살려낸다.

    최초의 인간이 가장 거대한 자연을 정복한 역사

    수평선 너머를 최초로 항해한 인류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바다로 나아갔을까? 인류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이 책 <인류의 대항해>에서 뱃사람 특유의 시선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해양사를 복원했다.

    페이건은 그 자신이 오랜 세월 바람과 인력만으로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고 다녔으며, 혼자서 GPS와 디젤 엔진 없이 영국에서 미국까지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망망대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대처하고 도전해 나갔을까? 나침반조차 없었던 수천 년 전 고대인이 원시적인 카누로 대양의 머나먼 섬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푸른 수평선 너머로 나갈 용기를 냈던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그들이 가진 도구와 기술, 사회 조직이라는 조건 아래, ‘바다’라는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고 이겨낸 매력적인 도전기이다. 바다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남태평양, 북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북해, 서태평양 등 세계의 모든 바다를 무대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끝없는 상호작용과 진화의 과정이었다.

    대항해

    최초의 항해자들은 어떻게 바다에서 길을 찾았을까?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대부분의 인생을 육지에서 보내는 이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다.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해변이나 눈에 띄는 곶 같은 친숙한 지형지물로부터 벗어나, 주위를 둘러싼 수평선이 유일한 우주가 된다. GPS와 컴퓨터, 엔진이 없으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선조들이 거쳐 간 거리가 어머어마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항해가 아니었다. 역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이 항해를 나섰던 그 바다 풍경은 결코 어둠과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최초의 뱃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바다와 훨씬 더 가까웠다.

    바다와 인류 사이에 기술이 한 겹씩 늘어날 때마다 인류는 그만큼 바다로부터 멀어졌고,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경험을 잃고 무지해졌다. 선조들의 배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보잘 것 없는 카누와 뗏목뿐이었지만, 그들은 바다에 관한 매우 방대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고대 인류가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수천 킬로미터 항해하는 데는 노와 돛이 있는 튼튼한 선박 이상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고대 인류는 별을 보고 방위와 위도를 측정했고 풍향이 언제 바뀌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확인하며 귀환 가능성을 높였다.

    서기 11~13세기 폴리네시아인은 돛 단 카누를 타고 나침반도 없이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건넜다. 기원전 10세기 안데스인은 오늘날의 에콰도르 해안에서 발사 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마야 문명과 왕래했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어둠의 심연이 아니라 친숙한 삶의 일부

    오늘날과 달리 인류는 언제나 바다를 두려워했고 존경을 담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육지와 바다는 확연히 구분되는 경계가 아니라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을 이루었다. 바다는 조상과 초자연적 존재가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고대인이 바다를 신화적 질서 안에 놓고 항해에 제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인류 최후의 낯선 자연을 육지와 연결된 우주론의 일부로 포섭하려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점점 살아 있고 친숙한 것, 인격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인간과 바다는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

    항해는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연안 바다를 탐험하는 것은 강과 호수를 건너는 물가에서의 삶을 연장한 것에 불과했다. 연안 바다는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수심과 조수의 흐름을 파악하며 물길을 탐사하는 기본적인 항해 기술이 활용되는 장이었다.

    그다음 카누나 뗏목이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기원전 1200년 이후 남서태평양에서 라피타인이 카누를 타고 뉴기니 동쪽의 오세아니아 원해까지 진출했다. 더 이후에 인도양에서는 몬순 계절풍을 이용해 홍해와 아라비아, 동아프리카에서 인도 남서부 해안과 그 너머로 항해했다.

    기원전 2세기에 이미 그리스인 히팔루스는 아라비아에서 인도까지 직항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15세기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를 개막하기 수백 년 전에 이미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북아메리카 연안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영웅적인 항해 이면에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연안 항해의 끝없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영구 운동 기관과도 같은 이 교역과 교류의 물결은 인간이 바다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로 끊이지 않고 이루어졌으며,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하다.

    남태평양 – 호모 사피엔스 최후의 팽창

    태평양은 광활한 바다이다. 작디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고 어떤 섬들은 대단히 먼 거리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수천 년 전에 이 섬들을 최초로 발견하고 이주한 사람들은 라피타인들이다.

    여러 고고학 정보를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인류 최초의 장기 항해는 5만 5천여 년 전 동남아시아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당시에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낮았으므로 육지간 거리는 상대적으로 짧았다. 수만 년에 걸쳐 오세아니아 근해에 사람들의 이주가 완료되었다.

    그러던 중 대단히 뛰어난 항해가이자 식민지 개척자들이 나타났다. ‘라피타인’이라 불리는 이 집단은 농경민족이자 해양민족으로 기원전 1200년경부터 장거리 항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들은 오세아니아 근해에서 동쪽으로 더 멀리 나아가 피지, 사모아, 통가, 바투아누 등 폴리네시아 전역의 무인도를 개척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식량 공급원을 외부에서 들여와 의도적으로 번식시켰다.

    약간의 휴지기를 거쳐 제2차 대항해가 일어났다. 서기 1000~1300년에 폴리네시아인은 돛을 단 카누를 타고 4천 킬로미터 이상을 항해하여 북쪽의 하와이 제도와 남쪽의 뉴질랜드, 그리고 동쪽으로 이스터 섬(라파누이)을 개척했다. 라피타인의 후손들은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13세기에 태평양의 머나먼 섬들을 모두 정복했던 것이다. 그들은 단 3세기 만에 호모사피엔스의 10만 년에 이르는 전 세계에 걸친 여정의 마지막 장을 썼다.

    지중해와 인도양 – 최초의 진정한 지구적 해상무역 네트워크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교역 기회를 따라 바다로 나갔다. 기원전 2600년경에 이미 이집트는 레바논산 통나무를 지중해를 통해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었다.

    기원전 1000년대에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이 동지중해 무역에 참여했으며 그리스, 레바논, 이집트, 북아프리카 연안에 코즈모폴리턴풍의 항구들이 들어서고 활발한 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연안 무역은 여유롭게 돌아가는 영구 운동 기관 혹은 짐배들의 발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양을 둘러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강은 각기 고대 문명의 요람이었다. 뱃사람들이 인도양 바다를 해독하게 한 것은 억누르기 힘든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고대 문명이 목재, 금속, 노예 같은 기본 상품을 다른 지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도양 일대에 부는 몬순 계절풍은 1년 내내 대체로 온화했으며, 대체로 11~3월에 북동풍이 불고 5~9월에 남서풍이 불었다. 인도양과 예측 가능한 몬순 계절풍은 지중해 세계를 메소포타미아 및 인도와 연결했다.

    기원전 100년 전후로 그리스인 히팔루스가 남서풍을 타고 아랍 해안에서 인도까지 직항으로 항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도양의 상업적인 연안 항해는 멀리 남쪽의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이어져 유리구슬과 같은 인도의 사치품이 남아프리카의 내륙까지 들어와 코끼리 상아나 황금과 교환될 정도였다.

    북대서양 – 노르드인이 발견한 신세계 빈란드

    북해와 북대서양은 남태평양과 같이 항해하기 좋은 평온한 바다가 아니라 대단히 사납고 거친 바다이다. 여기에는 인도양의 몬순 계절풍 같은 예측 가능한 풍향 변화도 없었다. 대서양은 연안 바다를 항해할 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유럽인에게 대서양은 세계의 끝이었지만 결국 인류가 바다와 친숙해지면서 두려움과 미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9세기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땅을 찾아 아이슬란드를 발견했다. 그들의 신앙이 워낙 강렬했기에 너른 대양의 위험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아이슬란드를 오간 노르드인(바이킹)은 5월에 몇 주 동안 우세한 동풍이 불고 이어서 편서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항해가 실패할 경우 귀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남태평양 뱃사람들이 미지의 해역을 탐사할 때 이용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전략이었다.

    그들 역시 나침반이 없었고 해와 별을 길잡이 삼았다. 노르드인은 고대 노르드어로 모험을 뜻하는 아이빈티르의 정신을 품고, 권력과 명성 그리고 이동성을 좇아 더 먼바다로 나가 985년경에 북아메리카 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 자라는 머루(wild vine)를 따서 새로운 땅을 빈란드(Vinland)라고 이름 붙였다.

    노르드인들의 선장(船葬) 풍습으로 우리는 바이킹 장선(長船)으로 알려진 크고 튼튼하며 빠른 스타일의 선박을 발굴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효율적인 배는 이후 노와 돛이 결합된 외해 항해용 선박으로 개량되면서 노르드 항해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고, 그 대부분은 서유럽에 대한 침략의 형태를 띠었다. 노르드인의 항해 제국은 11세기 크누트 대왕에 이르러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부를 아우르는 “북해 제국”으로 정점에 달했다.

    북동태평양 – 완벽히 바다에 적응한 인디언의 해양 사회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돛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북태평양의 먼 바다를 탐험할 유인 동기나 강력한 사회적 이유가 없었다.

    북동태평양의 알류샨 열도와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의 인디언은 가시거리 안에 있는 연안 바다에 정통했다. 알류트족의 선조는 적어도 기원전 7000년에 알류샨 열도 바깥쪽 섬에 정착해 있었다. 거칠고 흐린 북태평양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완전한 형태의 해양 사회가 발전한 이유는 이 지역에 바다사자, 고래, 대구, 연어 등 각종 해양 자원이 매우 풍부했기 때문이다.

    알류트족은 수천 년에 걸쳐 환경에 적응하면서 바다에 떠내려 온 유목과 바다사자의 가죽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세련된 수렵용 운송 수단 중 하나인 바이다르카 카약을 만들어 냈다. 바이다르카를 탄 항해자는 신화속의 켄타우로스처럼 배와 한 몸이 되어 거친 북극 바다를 종횡무진할 수 있었다.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은 빙하에 깎인 계곡과 무수한 섬, 내륙의 짙은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연어를 비롯한 풍부한 해양 자원 덕택에 통나무 카누로 오가는 해양 사회가 번창했다.

    이곳 해안은 11가지 어족과 39가지 언어가 분포한, 놀라운 문화적, 언어학적 다양성을 간직한 지역이었다. 18세기 후반 유럽인이 도착할 당시 2만 5천 명의 인디언이 해안을 따라 살고 있었다. 북서부 해안 인디언에게 수평선 너머로 배를 타고 나갈 만한 사회적 강제는 없었다. 부족 간의 분쟁과 불신이 팽배했음에도 새로운 정착지와 식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사회도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찍이 기원전 5000년 이후부터 복잡한 교환 네트워크가 해안 부족 간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인류학 현지 조사로 유명해진 인디언의 의례적 축제 포틀래치(potlach)가 이 지역에서 발전했다. 포틀래치는 족장 및 그 친족이 다른 족장들과 부족 구성원을 접대하며 베푸는 행사였다. 부를 독차지하고 싶은 유혹이 충분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포틀래치는 부를 사회 곳곳으로 분배하는 역할과 함께 친족 내에 강한 통합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전에 인류의 대항해가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미지의 대양을 향해 나아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인들, 인도양 무역을 휘어잡던 아랍의 선장들, 포세이돈이 호령한 지중해 바다를 순환한 이집트와 그리스의 배들, 약탈거리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노르드인들, 황제의 위엄을 알리려 세상에서 가장 큰 배를 타고 출항한 중국의 제독,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카약을 타고 북태평양을 누비던 알류트족 사냥꾼들, 대구와 청어를 잡기 위해 거친 대서양 바다를 마다하지 않은 유럽의 어부들…… 그들은 모두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간 위대한 항해자들이었다.

    <인류의 대항해>는 15세기 유럽인들의 대항해에 가려 역사가 미쳐 조명하지 못한, 광대하면서도 소박한 바다 풍경을 고고학과 인류학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낸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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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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