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 다람쥐의 도토리 세 알
    [그림책 이야기] <아기 다람쥐의 모험>
        2014년 05월 09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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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다람쥐 입에 물린 도토리는 못 보고

    <아기 다람쥐의 모험>은 신경림 시인의 동시에 김슬기 작가가 그림을 그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먼저 동시를 음미하면서 내가 그림 작가라면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상상해 봅니다.

    눈이 내리고 / 하얗게 산이 덮이고 / 아기 다람쥐 / 먹을 것이 없어서
    도토리가 없어 / 배가 고파서 / 쪼르르 쪼르르 / 산봉우리 내려와
    바위너설 내려와 / 풀 언덕 내려와 / 저 만큼 멀리 / 아파트 마을 보이네
    찻길 건너 몰래 / 아파트로 들어서니 / 와! 우리 먹을 도토리 / 다 여기 와 널려 있네
    도토리 하나 입에 물었네 / 엄마 것 또 하나 물었네
    아빠 것 또 하나 물으니 / 입안에 가득 / 신이 나서 찻길을 건너고 / 풀 언덕을 지나고
    바위너설 지나고 / 산봉우리 오르니 / 엄마 다람쥐 아빠 다람쥐 / 잠도 못 자고 기다리다가
    너 어데 갔다 오니 / 눈에 눈물이 글썽 / 아기 다람쥐 입에 물린 / 도토리는 못 보고

    세 알의 도토리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울컥해진 것은 잠도 못 자고 기다리던 엄마 다람쥐와 아빠 다람쥐가 눈물을 흘리며 아기 다람쥐를 반겼기 때문이 아니라 아기 다람쥐가 입에 물고온 세 알의 도토리를 엄마 아빠가 보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그림책은 사십대 중반의 어른에게도 다시 어린이가 되는 기적을 선물합니다. <아기 다람쥐의 모험>을 읽는 내내 저는 분명 아기 다람쥐가 되었습니다.

    저는 먹을 것을 찾아 눈 쌓인 산을 내려와, 위험한 찻길을 지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쌓아 놓은 도토리를 발견하고는 저를 위해 한 알, 아빠를 위해 한 알, 엄마를 위해 한 알 이렇게 세 알을 입에 물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제 마음도 몰라주고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고 야단을 칩니다.

    제 입안에 있는 세 알의 도토리는 저의 사랑입니다. 엄마와 아빠만 저를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배고픈 엄마 아빠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토리를 구해온 것입니다.

    아기 다람쥐

    삶은 자기만의 꿈을 추구하는 과정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 <라쇼몽>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조작된 기억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일상을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삶이란 단순히 조작된 기억이 아니라 자기만의 꿈을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동일한 사건을 겪더라도 그 동기와 의미는 제 각각입니다.

    신경림 시인의 동시와 김슬기 작가의 그림을 따라 아기 다람쥐의 마음으로 길을 떠난다면 그것은 분명 신나는 모험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여정을 엄마 다람쥐와 아빠 다람쥐의 마음으로 지켜본다면 그것은 불안한 상상으로 점철된, 지옥 같은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물론 걱정도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기 다람쥐를 사랑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기 다람쥐를 걱정합니다. 아기 다람쥐도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의 배고픔을 걱정합니다. 아쉽게도 서로 사랑해서 비롯된 걱정인데 오해만 남았습니다.

    오해를 줄이는 두 가지 지혜

    여기서 우리는 가족 사이에 오해를 줄일 수 있는 두 가지 지혜를 배웁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부모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도 부모를 사랑합니다. 서로의 사랑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걱정과 오해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둘째는 서로의 꿈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 다람쥐가 가족을 위해 먹이를 찾고자 하는 꿈을 갖고 길을 나섰다는 걸 부모들이 알았다면 걱정은 하더라도 기특한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입니다. 또한 자식이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부모는 온갖 나쁜 꿈을 지어내서 걱정한다는 걸 아기 다람쥐가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집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아기 다람쥐가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린이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그 사람의 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기 다람쥐와 함께 살기

    <아기 다람쥐의 모험>에서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측면은 공생의 문제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농작물을 수확하면서도 다른 동물들이 먹을 것을 남겨 놓았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동물들이 먹이를 찾기 어려울 땐 여기저기 곡식을 뿌려 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도시 사람들은 등산을 핑계로 산에 와서는 도토리며 온갖 열매를 싹 쓸어 담아 갑니다.

    아기 다람쥐에게 먹을 게 많았다면, 사람들이 도토리를 그렇게 많이 훔치지 않았다면, 굳이 아기 다람쥐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까지 내려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 아기 다람쥐의 부모님들이 걱정할 일도 없었습니다. 모두 사람이 공생의 법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아이들과 공생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먹을 게 없는’ 극심한 빈곤에 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그런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는지, 아직도 어떤 나라들이 ‘먹을 게 없는’ 빈곤에 처해 있는지, 정말 이 세상에는 먹을 게 부족한 것인지 설명해야 할 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빈곤에 관해 설명하다 보면 도토리가 부족해서 다람쥐가 배고픈 게 아니고 식량이 부족해서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굶주리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됩니다. 도토리를 나누듯이 식량도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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