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정치', 용인해서는 안돼
[에정칼럼] 행복하려면 녹색, 세월호 참사와 녹색정치
    2014년 05월 08일 09: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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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소용돌이치면서 대한민국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느 때처럼 국가와 정치를 두고 극도의 불신이 쏟아지고 있다. 이참에 비정상적인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납작 엎드린 부류 중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와 세계화 속에서 뿌리내린 ‘위험사회’를 특정 정부의 잘못으로 돌린다고 억울해하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어쩌면 이들에게 이번 사고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로 보일 것이다.

현대의 고도 기술시스템에 내재해 재생산되는 이런저런 사고와 위험은 비정상적이거나 일탈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사법적이든, 정치적이든, 도의적이든,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을 때는 피하고 싶은 사고였겠지만.

그렇다고 세월호 사고를 처리해야 하는 현 정부가 ‘안전’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직을 인수할 때를 떠올려보자.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 비전으로 선포하면서 밝힌 “안전과 통합의 사회”라는 국정 목표에는 분명 “재난․재해 예방 및 체계적 관리”와 “쾌적하고 지속가능한 환경 조성” 전략이 있었다. ‘해양 교통안전’ 관련 국정 과제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이런 정책과 공약까지 두루 살피며 선거에서 투표하고 또 그 내용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유권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전’과 ‘생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 커질 것 같다. 아니 그래야 한다. 재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더 이상 ‘망각의 정치’를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뼈아픈 진리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사진=노동과세계)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사진=노동과세계)

노란 물결이 사라지기 전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정상화’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개혁’인지 따져봐야 한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선거가 잠시 멈춰 섰지만, 정지 상태에 있었던 건 사전 선거운동만이 아니었다. 정치가 그랬다. 위험을 키우는 정치가 보이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동안, 생명을 살리는 정치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여기저기서 처벌 대상을 찾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쓴 나머지, 세월호를 ‘과거사’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했다. 대형 참사에서 단골 메뉴인 ‘진실게임’을 벌린 언론들은 재난에서 비롯한 개인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키워버렸다. 의지가 없었는지 능력이 없었는지 당장 알 길이 없으나,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모범 시민’들은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적인 추모 열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각종 재난안전 대책과 공약을 내세우며 지방선거가 재개되고 있다. 교통뿐 아니라 핵발전, 화학물질,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방재와 안전이 무차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미 신뢰를 상실한 국가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사고 발생 초기부터 더 정치적이고 더 사회적인 모습을 보인 평범한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망각의 사회’도 ‘망각의 정치’만큼이나 위험하다. ‘노란 리본’이 ‘붉은 악마’로 바뀐다고 해서 누구를 탓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만의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안전사회’는 요원하다. 세월호 사고가 ‘제2의 서해훼리호 사고’인 것처럼,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거나 책임 회피에 급급하는 시스템이 계속된다면,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뿐이다.

시스템은 그것을 구성하는 인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까닭에 ‘해피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더 넓은 기반인 국가와 자본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보다 자본을, 생명보다 이윤을 위하는 자본과 국가를 상대하지 않고서는 그럴싸한 이름을 새로 단 채 시스템이 유지되는 걸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와 정부에 불복종할 시민의 권리는 사회를 되찾고 국가를 바로 세울 정치적 의지와 상통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가 바로 잡겠다’는 권력 의지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온전히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재난의 사회학’은 재난 속에서 시민들이 슬픔과 분노를 나누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을 함께 하며,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발견하는 과정을 좇는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가 남긴 상처를 나누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더 사회적이고, 더 정치적이지 않으면, 거대한 ‘국가 기계’에서 ‘희생의 시스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환영받지 못할 정치가 아니라 사람과 생명을 우선하는 정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정답은 없지만, 녹색당도 그런 정당에 넣고 싶다. 정치 엘리트나 전문가 관료가 아닌(혹은 그것을 버린) 풀뿌리 활동가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 아직은 우왕좌왕하고 현실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이 부족한 정당이 녹색당이다. 하지만 녹색당만큼 생태, 평화, 안전이라는 21세기적 가치에 매달리며 대안적 미래를 제기하는 정당도 없다. 한국의 정치 문화로 볼 때, 국회밥이나 정치밥을 먹지 않은 것도 미덕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는 곳보다 눈길이 가는 지역이 과천이다. 최근 녹색당과 정의당이 시장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확인된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도 녹색과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간 그간의 성과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특히 서형원 후보로 상징되는 녹색정치가 장차 녹색당의 성장에 어떤 구실을 할지도 궁금하다. 시민들과 권력을 어떻게 공유할지 그리고 얼마나 실질적으로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다.

‘아시아 최초의 녹색당 시장’이 될지 두고 봐야겠지만, 다시는 어처구니없는 비상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더 사회적이고 더 정치적인 시민들이, 녹색당과 녹색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녹색 소수’가 지방 정부와 의회에서, 나아가 국회에서 생명과 생태를 경시하는 구태와 맞짱 뜨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행복하려면, 녹색이다. 그리고 세상이 녹색이 되려면,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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