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라는 거짓말
한국의 시민들은 '살인 시스템'의 인질이다.
    2014년 05월 02일 1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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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해 글쓰기가 너무 힘듭니다. 아무리 의분에 차도, 아무리 이 상상 밖의 참사의 원인을 잘 밝혔다 싶어도, 아무리 그 “교훈”을 낱낱이 이야기해도, 그 어떤 “말”과 “글”로도 모든 시간이 4월 16일에 정지되신 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슬픔을, 같은 일을 (아직?) 겪지 않은 이로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스스로 겪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억지로라도 자판을 두드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4월 16일이 우리에게 우리가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던 거의 모든 부분들이 바로 거짓말이라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죠.

우리 상식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이 정도입니다.

“1987년 (또는 1992년, 또는 어떤 경우에는 1997년)까지 이 나라를 정통성이 없는 군부 (와 그 후계자/부역자들)가 통제했다. 시대적으로 필요했던 산업화를 추진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동시에 인권을 억압하는 후진형 독재정권이었다. 이에 대해 학생 등 의로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저항했고 이것이 바로 민주화운동이다. 결국 사필귀정으로 민주화운동이 이겨서 우리나라는 일석이조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류로 불쌍한 동남아의 후진 백성들에게도 어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유럽인들에게까지도 강남스타일로 접근하고, 그러면서도 빨리빨리 우리도 유럽처럼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위와 같은 우리 상식의 요약은 대체로 각종 콤플렉스와 엄청난 거짓말의 혼합물이지만, 거짓말부터 밝히겠습니다.

우리는 “민주화”를 이룬 적은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에 이룬 것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가운영 메카니즘의 부분적 개정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 등으로 매우 제한된) 일부 자유주의적 인권레짐이 도입되었으며, 또 군부가 독점해온 권력을 재벌의 돈을 먹고 사는 보수 정치인들이 나누어 갖게 되고, 보수 여-야당들 사이의 평화적 권력교체 시스템을 작동시킨 것입니다.

말하자면 군부세력이 비운 자리에 결국 재벌의 마름들이 들어앉게 된 셈인데, 그것뿐이었습니다. 외형이 바뀐 것인데, 그 외형 밑 한국적 시스템의 “기본”은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기업의 살인적 노동착취도 그대로이고, “민간인”에 대한 관료체제의 무관심, 경멸, 군림도 그대로이고, 관료와 (특정)업체의 혼연일체, 즉 일본/한국식의 관료적 자본주의도 그대로입니다.

“국가” (와 자본)은 “민주화”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도심 중산계층의 일부 요구를 수용하여 그 간판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간판 뒤에서는, 박정희 시절에 한국 군인들을 장사 대상으로 삼아 월남에서 범죄들을 저질렀던 미국에 팔아 넘기고 달러를 챙겼던 바로 “그” 대한민국은 그냥 계속 건재합니다.

공주님의 등극으로 더욱 더 명확해진 일이지만, 공주님 이전에도 대체로 똑같았죠. 2007년 여수 외국인 보호소 참사를 기억하시죠? 화재가 나도, 국가가 잡아놓은 외국 노예들이 혹시나 도망칠 것 같아서 직원들은 당연히(?) 잠금장치를 제때 풀지 않아 10명이나 죽였습니다.

여수 외국인 보호소 참사 사건 자료사진(민주노총)

여수 외국인 보호소 참사 사건 자료사진(민주노총)

그 때 노무현씨가 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사과라도 했나요? 노예들의 유족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어서 무마(?)하고 그다음에 이 일을 서둘러 망각케 한 건 대한민국입니다. 1970년대 이후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대한민국이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반론이 들어올지 벌써 보입니다. “그래도 부정이 비교적 없는 공평선거인데 당신 출신국가(러시아)의 부정선거와는 본질상 다르지 않느냐”, “당신 소속정당인 노동당도 선거에 출마하는데, 이 정도면 민주화된 게 아니냐”부터 “당신이 체포와 고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 글 나부랭이를 쓰는 건 민주화 아니면 가능했겠느냐”까지일 것입니다. 이런 가상 반론에 답변을 해보겠습니다:

– 유권자에 대한 댓글원(국정원)의 최첨단 최정예 심리전이 더 큰 부정인지, 아니면 푸틴 도당의 무식하고 옛날 방식의 개표 조작이 더 나쁜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방화 살인과 강도 살인 중에서 어떤 게 더 나쁜지 말할 수 있을까요? 좌우간 “공평선거”는 신화이지만, 댓글원 애국투사들의 맹활약이 없었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거의 완전한 언론 장악과 전교조 압살 작전에 따라 완전해진 교육계 장악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와 무관한 보수정객들의 新권력독점체제를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 노동당이 출마해서 예컨대 통진당 정도의 정치적 지분(10개 의석)을 얻게 된다면, 통진당과 다르지 않게 체제에 의해 말살 작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은 이석기 재판과 같은 다소 무식한 마녀사냥부터, 조금 더 지능적인 “교사 당우” 해고 등 일부 당원에 대한 표적 사냥까지 아주 다양하겠지만 목표는 똑같을 것입니다. 군부독재를 대체한 보수정당들의 “민간독재”(civil dictatorship)의 무기한 연장입니다. 그런 독재를 이미 반세기 넘게 경험해오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 반대자들에 대해 아예 국적을 박탈하며 제거시키는 싱가포르식 민간독재보다는, 한국 지배자들은 어느 정도의 표현의 자유를 허하되 반대자들을 철저하게 주변화시키는 미국/일본식 민간독재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삼성 등에 해가 될 수 있는 표현들을 “진보”신문들마저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관련기사 링크) 생각해보시면 그 표면적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바로 아실 것입니다.

단순무식한 하나회 소속의 군바리 대신에 땅 투기로 횡재한 부모의 돈으로 미국에서 멋진 박사 학위를 얻은 강남족 두 명이 경쟁해서, 그 중 하나가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고 해서, 이 사회의 각종 객실에 갇혀 침몰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차이라도 있나요?

용광로에 빠져 숨지고, 공사장에서 안전 장비가 없어 밑으로 떨어져 숨지고, 프레스 밑에서 숨지고,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지원을 거절당해 영양부족으로 숨지고…

이 사회가 매년 매월 매일 죽이는 그 모든 피해자들에게는, 이 살인 기계의 관리자가 육법당 출신으로 비경쟁적으로 권력을 얻었는지, 아니면 하버드 출신으로 경쟁해서 권력을 얻었는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요?

70년대 이후 본질상 바뀐 적이 없는 이 국가의 틀 안에서 우리의 정확한 위치는? 바로 ‘인질’입니다. 박정희가 제조업 재벌들을 키우려고 지은 고리 원전, 월성 원전 등 노후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라도 난다면? 부산은 부분적으로나마 피폭 도시가 되고, 이어서 서울, 경기도도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게 된다면?

확언컨대 그렇게 돼도 당국자의 “대응”은 이번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도망갈 수 있는 자들은 비록 책임자인데도 바로 도망갈 겁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미 사놓은 주택으로요. 주식이 떨어질 것 같아서 피폭지역 주민 소개를 계속 늦출 것이고, 한 군데의 노후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다른 노후 원전들을 계속 가동할 것이고. 구조 작전을 특정 민간업체 (특혜업체)에 맡긴다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구조를 계속 늦출 것이고.

결국 인질범들은 자기 자신들을 잘 격리시켜 침몰하는 대한민국호 안에서도 끝까지 호의호식해도, 인질들은 그냥 갇혀서 죽는 운명을 맞아야 할 셈입니다.

인질범들을 “개혁”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을 아무리 교체시켜도, 대다수를 인질로 잡는 체제는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우리를 관리하는 이들이 “국가”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쓴 범죄집단임을 똑똑히 알아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갇혀 죽고 싶지 않는다면, 인질범들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야 구출, 즉 진정한 민주화로의 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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