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학과 불문학과 등 없애야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문학공부 방해하는 어문학 학과
        2014년 04월 28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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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문학과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고 영국 소설이 중요 담당 과목이다. 문학 선생 노릇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문학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려면 내가 가르치는 영국 소설뿐만 아니라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 등 다른 언어권의 소설과 시도 함께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렇지만 대학의 교과 과정은 국문학과나 불문학과 등 다른 학과에서 가르치는 문학을 영문학과 교실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 이런 대학의 학과체제와 이에 따르는 교과과정은 근본적으로 제대로 된 문학 공부를 방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대로 문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는 영문학과도 없어지고 불문학과도 없어지고 일문학과도 없어져서 이 모두가 국문학과로 합쳐지거나 아니면 ‘문학과’를 새로 만들어서 그 학과로 모두가 모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문학과가 영어를 가르치는 학과라고 생각하면 문학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영문학과 교수들은 영어를 가르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공 분야인 영소설이나 영시 또는 통사론이나 음운론을 가르친다. 영어 자체를 가르치는 과목도 있지만 영문과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는 교수들이 영어를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어 어문학과의 사정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일문학과에서는 일본어를 좀 더 공부하겠지만 교수들은 일본어 문학이나 일본어 언어학에 더 관심이 있고 이런 분야를 가르치려한다.

    영문학과의 문학 교과는(영문학과의 교과는 영문학과와 영어 언어학으로 나누어지지만 이 글이 문학 공부에 관한 것임으로 여기에서는 문학 중심으로 이야기 하겠다)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으로 나뉘고 영국문학은 영국소설, 영국시, 영국 드라마, 미국문학은 미국소설, 미국시, 미국드라마로 나뉜다.

    또 이 각각의 문학의 갈래는 대개 다시 고전시대, 근대시대, 현대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기적으로 나뉜다. 각 대학의 영문학과마다 교과과정을 짜고 운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는 이런 틀에서 영문학 교육은 이루어지고 있다.

    영문학과의 이런 교과과정 구성에 깔려있는 전제는 영문학은 다른 문학과는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벽한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영문학은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국가의 문학이고 그 각각 국가의 문학을 장르와 시기로 나누어서 공부한 다음 공부하는 사람 혼자서 새로 종합하면 영문학이라는 전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영문학을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영문학뿐만 아니라 문학을 공부하는 아주 나쁜 방식임을 알 수 있다. 디킨스나 오스틴 등이 쓴 19세기의 영국 리얼리즘 소설을 공부하면서 당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프랑스의 플로베르, 졸라, 발자크의 리얼리즘 소설의 양상 자체를 의식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연애시의 고전인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소네트를 읽어본 적 없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만을 읽는다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소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김동인이나 황석영의 소설 등 한국 소설도 읽어야 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도 읽어야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하여 문학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어느 한 나라의 한 작가의 작품만을 읽으면서 습작을 할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글쓰기 연습도 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연습도 하여야 한다.

    문학작품들

    국문학과, 영문학과, 중문학과, 독문학과, 불문학과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재의 어문학과 체제에서 어느 한 언어권의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다른 언어권의 문학 작품을 공부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전공이라는 심리적 울타리에 더하여 해당 전공과목으로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해야 하는 전공 학점 이수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공부하고 싶은 영문학과 학생이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하여 영문학과 과목들인 19세기 영국소설, 르네상스 영문학, 20세기 미국소설, 영문학사 등 영국과 미국의 문학 과목들뿐 아니라 문학 공부와 거리가 먼 언어학 개론, 음운론, 통사론 등을 수강하다 보면 정작 소설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꼭 읽고 분석해 보아야하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나 카프카의 <변신> 등을 공부할 틈이 없게 된다.

    문학을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한국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문학 작품들을 읽어보지도 못하게 된다. 물론 아주 적극적인 문학도라면 교과과정이 어떻든 간에 좋은 문학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그 문학 작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것이다.

    그러나 어문학과에 적을 준 문학도가 자신의 학과 바로 이웃 학과에 속해있는 문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들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면서 혼자서 문학을 공부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 같지 않다.

    나는 대학의 영문학과, 일문학과 등 외국어 문학 학과들이 모두 국문학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학과 이름은 영어니 불어니 하는 외국어를 특정하지 말고 그냥 ‘문학과’로 하면 좋겠다.

    이렇게 되면 김수영, 보들레르, 워즈워드, 네루다, 타고르 등 시인들의 시가 한국어, 불어, 영어, 스페인어 등의 언어의 장벽을 넘어 시의 이름으로 만나게 된다. 외국어 원문으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면 한국어 번역본을 쓰면서 외국어 원문으로 꼭 읽어야 할 부분은 그 부분을 골라서 읽으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시, 소설, 희곡, 비평 등을 가르칠 때 나는 한국시, 한국 소설, 한국 희곡, 한국 비평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 문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을 잘 이해하고 한국 문학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어문학과 체제를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바꾸려한다면 사실 극복해야 할 장애가 너무나 많다. 당장 문학 공부보다는 외국어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문학과와 외국어문학과를 통합하여 ‘문학과’를 만들자는 말이 외국어 교육을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공부는 필수이다. 프랑스어를 모르고 보들레르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 외국어를 모두 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문학과에서는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하나 이상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외국어 교육에서 영어를 제외하자고 말하는 것은 학생들이 대부분 영어는 굳이 학과에서 요구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외국어를 잘 하면서 그 외국어로 쓰인 문학뿐 아니라 영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로 쓰인 문학도 잘 알게 될 때 문학 공부가 제대로 된다. 이렇게 되면 문학과는 자연스럽게 문학을 공부하는 학과이면서 외국어도 공부하는 학과가 된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문학 역시 크게 보아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문학과’보다는 ‘문화학과’ 또는 ‘문학과 문화학과’ 정도가 더 좋을 듯하다.

    여러 어문학과에서 이루어지는 각기 다른 언어권의 언어학 공부는 내가 제안하는 문학과와 유사하게 언어학과로 통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좀 더 크게 생각하면 문학이나 언어학이나 다 언어를 대상으로 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좀 더 학문적으로 폭넓은 언어 공부 모델을 새로이 구상할 수도 있다.

    나의 제안이 대학에서의 어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축을 부추긴다고 할 수도 있다. 여러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어문학 교육이 하나의 학과로 통합되면 대학의 어문학이 축소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에서 경영학과가 하나의 학과이지만 아주 큰 규모로 운영되듯이 문학과도 대규모 학과로 운영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문학과는 사실상 전 세계의 언어와 문학을 공부하는 학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어문학과 체제가 문학을 (그리고 언어학을) 공부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나의 생각에 공감하는 교수들이 많아지고 이런 방향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중앙대 영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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