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예전보다 더 살 만한가.
    [책소개] 『옹호자들』(손아람 최강욱 등/ 궁리)
        2014년 04월 27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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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서른을 넘긴 한 청년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그것이 네티즌에게 회자되면서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그 사람을 격리시키고 가둬서 결국 ‘글 쓰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인한 위축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따라서 그러한 ‘효과’를 누리기 위해 법이 발동되어선 안 될 일이다.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

    어쩔 수 없이 그의 인생은 이미 구속 전과 구속 후로 나뉘어버렸다. 검찰과 정치권력이 그의 인생을 반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석방 직후 그가 의욕을 보이기도 했지만, 글쓰기 작업은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그것을 노린 사람들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이건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이 청년의 인생에 도대체 권력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우울한 예측을 하라, 표적이 될 것이다>-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편에서

    – 인터넷에 외환 관련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기소가 되어 구속되고(미네르바 사건),

    – 법원의 조정에 응했다는 이유로 공영방송사 사장이 배임죄로 기소 및 해임되고(정연주 KBS 사장 해임 사건),

    –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방송 보도 때문에 제작진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되고(<PD수첩> 사건),

    – 사회과학 도서들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자,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 제기한 것을 이유로 파면, 해임되고(국방부 불온서적 사건),

    – 국무총리실 공무원이 민간인을 함부로 사찰하고(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 전국 모든 교사들의 소속 학교, 소속 모임, 실명이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공개되고(전교조 명단 공개 사건),

    – 정권에 대하여 비판적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처벌, 해임되고(2009년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 철거 관련하여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원인불명의 발화로 경찰관과 농성자들이 사망하자,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던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형사처벌되는 사건(용산참사).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옹호자들

    이 책은 ‘상식의 힘’ ‘인간의 존엄함’을 믿고 이를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과 싸웠던 변호사들이 육성으로 남긴 기록들이다.

    지난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명박 정부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해직기자와 해직교사가 대량 양산되며, 민간인 사찰이나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같은 공안 관련 사건, 용산참사를 비롯한 민생 파괴 사건 등의 시국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사건들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았으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의 풍경에서 사라져야 할 검찰과 정치권력의 폭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들은 앞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여 좀 더 많은 독자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런 사건들이 왜 일어났으며, 그동안 우리 사회가 소중하게 지켜온 기본권을 어떻게 후퇴시켰는지를, 담당 변호사와 당사자 중심으로 기록하여 함께 읽어보자는 뜻을 모았다.

    또한 사건을 정리해 소개하는 동시에, 이 글을 써내려가는 변호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려 노력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즉 2008년 이후의 주요 법조사건에 대한 해설은 물론, 상식과 인권을 옹호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변호사들의 모습까지 담아내려 한 것이다.

    이 사건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변호사들은 원고를 쓰면서 자신들이 사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마무리한 뒤에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변호사 스스로도 황당하고 기구하기도 한 사건들에 대해서, 단순한 일지가 아닌, 복잡다단한 인간적 감회까지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옹호자들> 앞 부분에는 각 사건의 일지를 한데 모아 2008년부터 2013년, 지난 5년간의 짧지만 강렬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원고 끝부분에는 해당 사건의 당사자들을 다시 인터뷰하며 시간이 흐른 지금의 그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미네르바를 제외한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보슬 MBC PD, 박지웅 변호사,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엄민용 전 전교조 대변인,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무엇 하나 바뀐 것이 없이 그 악몽 같은 시간에 갇혀 사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원고를 바라본 가장 솔직한 심정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재판 과정 자체가 고문과 가해의 연속이었고,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거든요. 그게 조작된 정치 사건의 재판 전후에서 느끼는 피고들의 공통된 심정일 겁니다.(…) 정치검찰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정치검찰로 인해 인격이 살해당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생활이 죄다 망가지고 하는 경우를 지금도 주변에서 수없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검찰이 던져주는 먹이는 받아먹으며 인격 살해와 고문, 가해행위에 적극 가담하는 언론을 심판하는 것도 정치검찰 척결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 인터뷰>

    “이제 민간인 불법사찰은 사법의 판단이 끝나고, 현실의 역사에서 풍경 속의 역사가 되었다. 한때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잣대처럼 세상을 뒤흔들었던 이 사건이, 사법의 판단처럼 가해자들의 윤리문제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국가권력을 남용한 역사의 교훈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는 미래의 몫으로 남겨졌다. ‘피해자의 삶’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내야 하는 나는, ”옳고 그른 것은 세월이 지나야 밝혀진다“는 말이 분노와 체념으로 내지르는 억눌린 비명이 아니라 기억과 증언이 만들어내는 해방의 미소라고 생각한다.”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인터뷰>

    “‘용산’ 살인진압 후 그들은 또다시 하나가 되어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으려 했습니다. 다섯 분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고 4년을 넘게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저희를 변호했던 변호사께서 ”진실은 재판 중에 밝혀졌다, 다만 법원이 올바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위로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용산’은 국가폭력 없는 세상, 강제철거 없는 세상을 바랍니다.”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인터뷰> 중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은 또 어떠한가. 다시는 이런 일들이 생겨 나 혹은 우리 이웃이 아파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 바람이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처칠은 말했다. 이 책을 통해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났고 결국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에 못다 한 이야기와 관련 자료들은 옹호자들 블로그(blog.naver.com/ advocate2014)에서 더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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