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슨 꿈을 꾸었을까
[산하의 가전사] 발라로의 연인 그리고 세월호의 두 친구
    2014년 04월 24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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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이었나. 한 기사가 떠오른다. 이탈리아 발다로라는 곳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남녀 유골 기사가 있었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와 만투아 근처.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그 가문 문터규와 캐퓰릿 일가가 살던 곳이고 만투아는 로미오가 줄리엣의 오빠 티볼트를 죽인 뒤 추방당한 곳이야.

발견된 신석기 유골이 뉴스가 된 이유는 그 슬픈 이야기의 무대여서가 아니야. 그 남녀가 또한 수천년 전의 슬픈 연인들이었음을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지.

남녀의 유골은 서로 포옹한 채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어. 수십 년간 고고학에 종사해 온 이들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를 안은 엄마는 곧잘 발견되지만 이렇게 사랑하는 남과 여의 모습으로 발견된 유골은 처음이라고.

발다로 유골

이 유골은 ‘발다로의 연인(the lovers of Valdaro)’이라고도 불린다

남자의 척추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어. 여자의 옆에도 화살이 있었지만 여자의 유골은 멀쩡했고. 어떤 이들은 남자가 전쟁 등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 후 여자가 영혼의 동반자격으로 희생 당했다고 추정하기도 했지.

하지만 저건 순장일 수 없다고 생각해. 순장 당한 사람들은 저렇게 죽어갈 리도 없거니와 죽은 다음 저렇게 끌어다 놨다고 하더라도 그건 생전에 있었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이런 식의 합장(合葬)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니 수천 년 전 인류가 돌도끼 들고 돌화살 쏘던 시절에도 두 사람은 매우 범상치 않은 사이였고 그걸 인정받은 게 아니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유골을 본 사람치고 그들의 최후를 상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야. 원수가 된 부족의 족장 딸을 사랑한 남자의 원시시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상한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유로 처형 당한 애인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었던 비련의 여인을 상상한 사람도 있었고, 함께 도망가다가 등에 화살을 맞고서 죽은 남자를 떠나지 않고 함께 굶어죽은 비극을 상상하기도 했지.

하지만 이르는 결론은 저 두 사람은 원시시대건 지금이건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최고의 공포일 죽음 앞에서 둘이 함께 있다는 마음으로 버텼고, 그리고 절대로 떨어지지 말자는 믿음으로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았으리라는 것이지.

그래서 발다로의 연인은 평소 하던 방식대로 조각조각 ‘채집’되지 아니하고 바닥 전체를 들어내서 박물관으로 옮겨진다. “수천 년 헤어지지 않은 그들을 떨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박물관의 방침이었지.

오늘 아침 전철 안에서 그만 펑펑 눈물을 쏟았다. 세월호 배 안에서 구명대 줄을 묶고 죽어간 남학생과 여학생의 이야기가 눈물샘을 터뜨리다 못해 짓이겨 놨기 때문이야.

물이 차오르고 전기는 나가고 그야말로 암흑이 돼 버렸을 순간에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그 줄을 묶었을까. 둘은 어떤 친구였길래 죽어서도 함께 있자고 구명대를 비끄러 맸을까.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이야기는 뭐였을까.

무엇보다 대체 우리는 왜 그 할 얘기 많고 꿈도 많았을 아이들을 시커먼 물 속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묶고서 둥둥 떠다니게 만들었을까.

그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박차고 눈물샘에 발길질을 해대는데 체면이고 뭐고 없이 만원지하철에서 질질 짜고 말았지 뭐야.

걔들 나이 열여덟살. 발다로의 연인들이 추정되는 나이와 비슷해. 발다로의 연인들을 발견한 학자들이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바닥 전체를 떠서 박물관으로 옮겼듯 우리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참혹한 지옥에서 ‘항상 네 옆에 있을게 걱정하지 마. 죽어도 너 옆을 안떠날 거야’ 하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키다가 죽어간 저 아이들을 잊지 말아야 할 거다.

잠수사가 구조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줄을 풀었지만 남학생의 시신은 떠오르지도 않고 물 속에 머물렀다지. 아마 그 아이는 잠수사에게 “아저씨 고맙지만 이걸 다시 묶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죽어가면서 한 약속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슬프지만 그들이 죽음 앞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약속했던 것처럼 산 사람들도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죽인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 보자고 약속하고, “되겠어? 항상 그렇지 뭐” 이렇게 포기하지 말자고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상징으로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그림 솜씨 좋은 누가 서로 묶여 있는 두 구명복이라도 그림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함께 죽음에 맞섰습니다. 죽음보다는 삶이 덜 무섭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 줄을 묶어 봅시다’라는 뜻으로. 세월호의 연인을, 아니 좋아 고딩들이 연애하면 되겠냐는 꼰대 있다고 치고 세월호의 친구를 기억하자는 뜻으로.

우리나라가 이 사건도 잊어버린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어. 이제 한 달 뒤면 월드컵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나는 외치지 못할 거다. 못 외친다.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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