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이윤’체제와 한국사회의 축소판
    [기고] 해운회사와 미친 정부가 아이들을 죽였다
        2014년 04월 24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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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전지윤씨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도하면서, 그 실질적 책임자인 청해진해운의 자본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고 책임을 묻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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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의 눈과 귀는 진도 앞바다를 향해 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세월호 속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것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눈 앞에서 차디찬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타들어가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 엄마아빠들은 이 사회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사람들도 아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삶의 궁색함에 시달려 온 그런 사람들이다. 안산·반월 공단의 평범한 노동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별안간 이 끔찍한 비극의 무대에 올려졌다.

    사고 당한 학생 중 10퍼센트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식당 허드레일하는 엄마는 아들 수학여행 보내주려고 밤새 일했다 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 자녀 21명이 사망·실종됐다.

    수학여행간다고 꿈에 부풀었을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들 가슴 속 깊은 곳에 묻혔다. 전쟁이 일어나 폭격을 당한 것도 아닌데 지역 전체가 갑자기 공동묘지처럼 변해 버렸다.

    이 사태는 이 사회와 체제를 마치 축소판처럼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이고, 선장은 정부이고, 가만있으라던 선내 방송은 언론이고, 수장된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미래를 보여 준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무엇이, 누가 이런 재앙을 만들어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비극이 뿌리를 도려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

    비용 절감과 이윤 창출

    지금 정부와 많은 언론들은 살아남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박근혜는 선장의 행위를 “살인과도 같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선장의 악마화는 이 사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밝혀지는 사실들은 이 선장을 부린 청해진해운 회사가 진정한 살인범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행한 고물배를 수입해 오면서부터 비극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낡은 중고선을 수리해 쓰는 것은 여객선을 새로 사는 것보다 비용이 10분의 1에 불과했다. 청해진해운의 ‘이윤 창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승객 1백여 명을 더 태울 수 있도록 이 배를 개조한 것이다. 그 덕에 요금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배 위쪽이 무거워지면서 ‘복원력’이 떨어졌다.(복원력: 좌우로 기울다가도 다시 균형을 되찾는 능력)

    이것이 끝도 아니다. 세월호는 항상 적정한 물량을 2~3배나 넘는 화물을 실었다. 이렇게 과적을 하면 배의 속도가 떨어지고 기름값이 많이 든다. 그러자 이를 피하기 위해서 ‘평형수’를 줄였다.(평형수: 배의 균형 상태와 복원력을 유지해주는 물탱크의 바닷물)

    과적을 했으면 화물이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결박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결박… 그게 돈이 굉장히 비쌉니다”(세월호 전 항해사)

    인건비도 줄였다. 세월호 승무원의 절반은 6개월~1년마다 재계약하는 비정규직이었다. 선장조차 언제든 계약해지될 수 있는 계약직이었다. 노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청해진해운이 선원 안전교육비에 쓴 돈은 54만 원에 불과했다. 반면 광고선전비는 2억3천만 원이었다.

    이 모든 ‘혁신적인 비용 절감’ 노력의 결과는 잦은 고장과 사고 위험 발생이었다. 세월호 전 항해사는 “엔진 고장이 잦았다”고 증언한다. 그는 불안해서 이 배에서 스스로 퇴직했다. 이런 문제점을 제기했던 또다른 선장은 “자꾸 그런 소리 하면 잘라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이것은 신상철 씨의 지적처럼 “수백 명의 목숨을 담보로 돈 벌겠다는 짓”이었다. 그 덕에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오너인 유병언 일가는 5천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윤 경쟁 속에서 모든 자본 일반이 보여 주는 보편적인 행태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10%의 이윤이 보장되면 자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자된다. 20%라면 자본은 활기를 띄며, 50%라면 대담무쌍해지고, 100%라면 인간의 법을 모두 유린할 준비가 돼있으며, 300%라면 단두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범하지 않을 범죄가 없다.”

    청해진해운의 행태는 자본의 본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지속된 조선해운업의 불황과 경쟁 격화가 이를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유병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인 유병언씨(방송화면)

    규제 완화와 정경유착

    마르크스는 이 같은 이윤 경쟁 속의 “자본은 사회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서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나라와 정부는 청해진해운의 이런 행태를 제어하기는커녕 물꼬를 터주었다.

    이명박 정권은 2009년에 해운법을 개정해서 선박 운항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주었다.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었고, 이를 통해 “연간 200억 원이 절약된다”는 게 국토해양부의 말이었다.

    그 후 5년 동안 선령 20년 이상의 낡은 여객선 수는 5배나 증가했다. 특히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의 67퍼센트가 이런 배들이다. 정부는 이런 배들의 안전을 제대로 점검하지도 않았다. 예컨대 지난해 해양경찰청의 여객선 안전점검에서는 4명이 160분 동안 배 12척을 조사했다고 나온다. 1척당 13분 동안 ‘점검’한 것이다.

    낡은 배의 증가와 부실한 점검은 사고 증가를 낳았다. 여객선 해양 사고는 2009년 7건, 2010년 18건, 2011년 17건, 2012년 24건으로 늘어나 왔다.

    세월호라는 시한폭탄은 이 속에서 등장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수입하고 개조한 후에 그것을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1백억 원의 대출도 받았다. 정부는 이 배가 ‘안전하다’고 합격증을 줬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5년간 청해진해운에 4차례나 ‘쾌적성’을 보증하는 상도 줬다. 이미 해양수산부는 유병언 일가에게 인천-제주 항로의 독점권을 20년째 보장해 왔다.

    이는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이윤 경쟁과 그 폐해를 견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국가와 국가 관료들은 그보다는 경쟁과 축적의 성공적 진행을 지원한다. 게다가 이윤 경쟁에서 성공하려는 사적 자본가들과 축적의 외적 조건들을 통제하는 국가관료들은 유착하게 된다.

    이것이 ‘해수부 마피아’이다. 해양수산부와 국토해양부의 고위 관료들은 퇴직 후 해운회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의 요직으로 내려간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은 선박 검사와 안전운항에 대한 감독권이 있다. 결국 국가기관 → 산하기관 → 민간기업으로 서로 옮겨다니며 챙겨주는 그물망이 생겨난다.

    지난해 선원 안전교육비로 54만원을 쓴 청해진해운이 접대비로 6천여만 원을 쓴 것은 이 그물망에 얼마나 더러운 때가 끼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삼성 장학생’으로 대표되는 국가기관과 사적 자본의 유착 관계가 여기서도 되풀이되는 것이다.

    결국 돈벌이에 눈이 먼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바다 속으로 밀어 온 진범이라면, 국가 권력은 그것을 뒷받침해 온 공범이다.

    “돈에 미친 자들”과 조력자들

    이 썩은 구조 속에서 탄생한 세월호가 재앙으로 돌진하기 시작한 것은 4월 15일 밤 인천항을 출항할 때부터다. 짙은 안개 때문에 모든 여객선이 출항을 취소했지만 세월호는 그렇지 않았다. 이윤 손실보다는 위험 감수를 택했다. 화물 500톤과 차량 32대를 줄여서 거짓 신고한 과적 상태였다.

    2시간 반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 세월호는 평소보다 3노트 더 속도를 높였다. 또 그물, 암초 등이 많은 다도해 지역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택했다. 해경은 “운행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 항로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한다.(한미연합해상훈련 때문에 그랬다는 의혹도 있다.)

    신상철 씨는 이 무리한 운행 속에 “어느 지점에선가 경미한 Bottom Touch(암초 충돌)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침수가 시작되며 배가 균형을 잃었다는 것이다. 낡은 배 밑창에 파공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빨리 배를 버리고 대피하려 했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보고받은 회사에서 자체 해결과 운항 지속을 지시하면서 문제가 커졌을 것’이라고 한다.

    균형을 회복하려고 이러저런 시도를 하는 중에 침수는 더 심해지고 배는 더 기울고, 제대로 결박하지 않은 화물까지 쏟아지면서 파국이 왔다는 것이다. 개조하면서 문제점이 커진, 고장을 자주 일으켜 온 낡은 배라는 점이 파국을 더 앞당겼을 게 분명하다.

    왜 승객들을 빨리 배 위로 나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신상철 씨는 말한다. “승객들이 바깥에 나와서 이 배의 문제점을 보면 자기 회사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고 … 그러면 영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방에 있으라고 한 겁니다. 미친 짓이에요. 돈에 미친 놈들이에요.”

    해경과 해수부는 이 ‘돈에 미친’ 자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이들은 재앙의 준비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 폭발 과정에서도 비슷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해경 산하 진도관제센터는 세월호가 관할해역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했어야 할 관제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재앙이 발전하는 동안에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은 듯하다.

    진도관제센터는 교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며칠 후에야 교신 내용을 공개했다. 과연 모든 내용을 공개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진도군청, 제주해경 등은 알려진 것보다 더 일찍 사고 발생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제기됐다. 이 와중에 초동대처를 위한 절대절명의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렸다.

    그러면서 이후 일주일 넘게 우리 눈 앞에서 3백여 명이 죽어가는 것을 빤히 지켜봐야 하는 고문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새롭게 등장한 이 재앙의 조연은 바로 기성언론들이었다. 속보경쟁에 뛰어든 언론은 확인도 않고 ‘전원 구출’이라는 대형 오보를 터뜨리며 재앙을 키웠다.

    바다 속에 생매장된 아이들이 미리 생명보험을 들어서 “다행”이라는 기사, ‘선박사고를 다룬 볼만한 영화’를 다룬 기사 등 쓰레기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론에게 이 재앙은 검색어 기사, 낚시 기사를 생산하며 돈벌이에 나설 새로운 시장으로 여겨졌다. 지배계급의 찌라시인 기성언론은 진실을 알기 어렵게만 만든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는 살인마”

    물론 쓰레기 언론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살인마” 정부였다. “정부는 살인마”는 4월 20일 진도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며 외친 구호였다. 정부의 행태는 정말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신상철)이라는 말이 나올 만 했다.

    정부는 가장 황금 같은 첫 이틀 동안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첫날 수중구조작업은 3번밖에 없었고, 16명밖에 투입되지 않았다. 둘째날은 38명이 투입됐을 뿐이다. 박근혜가 4월 17일 가족들에게 말한 “5백명 이상의 잠수사 투입”은 말뿐이었다.

    실제 필요한 장비들은 신속하게 투입되지 않았고, 구조 작업을 책임지고 지휘할 체계도 없었다. 탑승인원과 구조인원, 실종자 인원도 계속 집계가 틀렸고 지금도 확실치 않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던 발표들은 대개 거짓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애들 다 죽고 나서 시체 꺼내려고 여기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고 절규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더욱 악화된 문제를 보여 줬다. 먼저 신상철 씨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고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고 그 원인과 대책을 강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교훈을 얻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게이트의 진실을 덮어버리고 선거 부정과 간첩 조작을 일삼은 관료들을 철저히 보호해 왔다.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종북’으로 몰며 권위주의를 강화했다. 이 속에서 부패한 관료들의 눈치보기와 복지부동은 더 심해졌다.

    더구나 이명박근혜 정부는 이 사회 최상층의 부패한 특권층들에 기반해 있다. 이 자들은 유난히 더 잔인하고 기층 대중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과 정부 인사들이 폭탄주, 기념사진, 황제라면 소동을 벌인 것은 이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슬픔과 분노를 보고 정몽준 아들이 뱉은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는 말은 저들의 본심을 드러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악독함에 대해 경악하며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파 정부에서 벌어진 이런 변화를 과장할 수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씨랜드 화재 사건, 대구지하철 참사, 여수보호소 화재 참사, 이천 냉동고 참사 등이 있었고 항상 늦장 대처, 졸속 대응, 은폐 시도 등이 문제가 됐다.

    ‘후진국형 사고’라는 말도 일면적이다. 2005년 카트리나 재난 때 미국 사회가 가난한 흑인들에게 취한 무자비한 태도를 기억해야 한다. 2011년 후쿠시마에서 자연재해를 핵재앙으로 만들어버린 일본 지배자들의 대응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이번 재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무능과 잔인함은 국가의 진정한 성격과 관련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평범한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을 위험에서 보호하고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한 세력의 기구이며 그들의 재산과 권력을 지켜주는 데 주된 구실이 있다.

    상명하달의 관료체계와 군대·경찰 등 억압 기구는 이 국가의 핵심적 축이다. 이들이 익숙하게 수행하는 것은 이윤 생산·유통 체계와 착취·억압 질서가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일이다.

    이들이 재난으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 손발이 안 맞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온갖 최첨단 무기와 군함을 구비해 온 이 나라에 30미터 바다 속 아이들을 구할 능력과 장비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파업과 시위 때 경찰·공안기관들은 긴밀한 협조 속에 힘의 집중과,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을 보여 줬다. 공안기관대책회의에서는 이번처럼 10개나 되는 대책본부가 난립하는 중구난방을 찾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경찰은 실종자 가족들 속에 사찰을 하거나 항의 시위를 채증하는 데는 기민했다. 또 이 와중에도 정부와 국회는 한미방위비분담금 비준안 처리, 철도 요금 인상과 민영화 추진을 위한 제도 마련 등에 차질이 없었다.

    분향소

    저 생떼같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역사의 복수

    박근혜와 지배자들은 지금 이 재앙과 파국 속에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 말단 공무원 등에게 책임이 돌려지고 있다. 물론 거센 여론의 압박 속에 청해진해운 오너 유씨 일가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그러나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의 지적처럼 “만약 유씨 일가를 처벌한다면 백혈병 문제를 이건희가 책임져야”하는 처지이므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용산참사 때 부장검사로 철거민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던 자가 세월호 수사본부장이라는 사실도 우려스럽다.

    보수 언론들은 “우리 모두의 잘못”, “어른들의 잘못”이란 식으로 물타기를 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폐지하자”는 황당한 대안도 내놓고 있다. 틈만 나면 ‘종북몰이’로 분노의 초점을 돌리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 나라에서는 애를 안 낳거나 이민을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손가락이 다 부러진 상태로 발견됐다는 이 아이들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낸다. 사랑한다” “아빠, 배가 가라앉으려 해. 살아서 만나요.” 이 말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이 침몰하는 이 체제에서 ‘침착하게 제자리를 지켜라’는 저들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재앙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4월 17일 장애인 송국현 씨가 불에 타 죽었고, 4월 21일 현대중공업에서 또 2명의 하청노동자가 죽었다. 4월 22일 서울 독산역에서는 작업중이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죽었다.

    따라서 민영화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부정선거와 간첩조작을 규탄하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던 우리의 투쟁을 더 이상 축소하거나 자제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투쟁의 정당성은 더욱 커졌고 요구는 더 절실해졌다. 이번 비극이 은폐와 조작을 일삼는 부패한 우파 정부의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낳을 위험을 더 분명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투쟁이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저지른 것은 바로 청해진해운과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가 퇴진해야할 이유는 이제 차고 넘친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안전과 생명을 위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고, 대중교통 수단들은 돈벌이에 이용하지 못하게 공영화해야 한다.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들이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며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방송이 거짓말만 일삼는 자본과 권력의 찌라시 노릇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

    민주노총, 진보정당,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런 요구와 투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재난에 대한 이 정권의 컨트럴타워는 없어도 저항을 위한 우리의 컨트롤타워는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대형 사고를 반복적으로 겪어도 사회적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 병든 구조”(정혜신)는 도려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 자신도 침몰하는 배 속에 갇혀 울부짖는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흘러내린, 훔쳐내야만 했던 우리의 눈물이야말로 혁명의 기소장”이라고 했다. 역사의 복수는 죽어간 우리의 아이들과 벗들의 피와 눈물 위에서 수행될 것이다. 이 침몰하는 배 속에 언제든 우리를 가둬두고 탈출할 자들에게서 통제권을 가져 와야 한다.

    필자소개
    레디앙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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