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와 기레기
    세월호 참사, 진도 팽목항에서
    [이상엽의 시선] 사진 등 시각정보는 중립적이지 않다
        2014년 04월 23일 0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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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8시 48분 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황해 상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사고다.

    세월호에는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등 총 476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 이 글을 쓰는 4월 22일 현재 구조 174명, 실종 215명, 사망 87명이다.

    이제 현장에 내려간들 내게 취재 어싸인먼트를 줄 언론사는 없다. 전국의 언론사가 모두 기자를 파견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갔다. 포토저널리스트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고하는 사진도 별로 없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한 신문사의 칼럼니스트라 그 현장을 보고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이 밤차에 몸을 싣게 했다.

    진도대교를 지나 39킬로미터를 달리는 해변이 나타나고 멀리 팽나무 숲이 인상적인 팽목항에 도착했다. 항구로 들어가는 도로는 차단됐다. 1킬로미터 정도 걷는 도로의 양쪽으로 무수한 앰블런스 차량과 관변단체, 봉사단체들의 천막들. 팽목항 터미널에는 상황대책본부가 차려지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 소름돋을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는 20년 취재 경험 상 처음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분노에 찬 고성만이 그 침울한 정적을 깨뜨린다.

    현장에서 듣은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국가와 기레기(기자+쓰레기)다. 내 평생 여러 재해를 보고 들었지만 이번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 사망과 실종자 수도 놀랍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국가의 무능이었다.

    국가-국민 동일체라 생각해 온 이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국가는 지배 권력의 조직이다. 땅이 있고 인간이 있고 나중에 국가라는 조직이 출현한 것이다. 이 조직은 지배 권력을 위해 유지되며 때론 폭력적으로, 때론 유화적으로 국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현재 인류에게 국가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기에 국가란 공기처럼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를 다했음에도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는 상황이 개인에게 몰아닥쳤을 때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까? 그것을 신속하게 해결해주기는커녕 무능과 은폐, 기만과 공작이 대신 돌아온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지만 개인은 국가에 저항하기 힘들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력하다. 그래서 비국가 민간 조직인 언론에 호소한다. 언론은 여론을 만들고 그것으로 국가를 압박하고 변화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일까? 아니다. 팽목항 현장에 존재하는 수백명의 기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가족들의 시선은 불신을 넘어 혐오하고 적대시한다.

    기레기라는 말은 여기서 출발한다. 자신들의 사정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혀봐야 언론화되지도 않고 도리어 정부 방침을 홍보하는 전도된 증거로서 기능한다. 사진에 찍혀봤자 선동하는 불순 외부세력 또는 종북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리케이트 앞에서 사진가들에게 찍힌 기념사진이 경찰에 넘어가 모두 학살된 역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투영된다.

    예술사학자인 존 탁은 그의 에세이 <증거, 진실 그리고 위계>에서 “사진은 그 자체로 아무런 정체성이 없다. 일관된 역사도 없다. 사진은 제도라는 공간의 장을 가로질러 명멸하는 빛의 깜박임일 뿐이다”라고 했다. 사진기자들이 팽목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거대한 재난의 본질적인 문제를 증거하고 그 진실을 사진에 담았다고 한들 그가 속한 신문이나 방송이라는 제도 안에서 규정될 뿐이다.

    사진과 동영상을 취재하는 기백 명의 인력들이 만들어 내는 시각 정보는 중립적이지 않다. 기록 수단으로서의 사진은 이곳 팽목항에서도 공식적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 현장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인정해 버린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증거되지 않은 현장의 모습과 사진은 지천으로 널려있다. 이 사진들은 권위를 부여받은 장이 아닌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같은 낮은 위계의 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존 탁의 이야기처럼 “사진은 역사의 증거가 아닌 역사 그 자체”다.

    필자소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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