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과 일본, 가깝지만 먼 나라
    [중국과 중국인] 일본 비판은 미국 겨냥
        2014년 04월 23일 11: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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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 문제와 댜오위다오(钓鱼岛, 일본명 센카쿠열도(尖閣列島))를 둘러싼 중- 일간의 대립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아시아 귀환과 맞물리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양국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국이 설정한)영해에 진입한 상대국 전투기에 대한 격추를 선언하고 또 이 지역을 겨냥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은 일본을 겨냥해 자신들이 개발한 최신형 무인기를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독일 방문 중이던 지난 3월 28일 이례적으로 일본정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를 직접 비난했다.

    정부 대변인의 공식적인 반박 이외에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온 중국정부가 최고 지도자의 직접 발언 형식을 빌려 일본을 직접 비판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며, 이런 상황은 현 시기 중-일 양국이 직면한 정치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독일 방문 중의 시진핑 주석

    지난 3월 독일 방문 중의 시진핑 주석

    그러나 중국의 대일 정책은 중-일 양국 간의 관계만을 통해서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이에 앞서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그 정책의 중심축인 일본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의 대중 정책 역시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재건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확보를 위해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접수하면서 소련과 중국이 연대한 거대 사회주의 벨트가 형성되자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저지하고 자신의 앞마당인 태평양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로 일본을 선택했다.

    그 결과 독일과 더불어 2차 세계대전의 최대 주축국인 일본은 모든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음과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재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 특히 정치-군사적 이익을 수호하는 첨병이 되었다.

    물론 중-일 관계가 대립으로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냉전 종식 전에는 중-소 분쟁 과정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양국 간에는 정치-경제적인 교류가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중국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투자와 기술력의 도움으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중-일 간의 협력적 관계는 오래갈 수 없었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는 반대로 공산당 주도하에 개혁개방의 성과를 바탕으로 과거 ‘중화제국’의 위용을 급속하게 되찾아가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세계패권을 위협하면서 중-미간에 대화와 협력보다는 대립과 마찰이 주된 기조가 되면서 중-일 관계 역시 이러한 중-미간의 관계 변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중-미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전범들의 후손들을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자위대의 전투력 강화와 국제적 역할 증대를 꾀하면서, 난징(南京)학살,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 등의 과거사 문제와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 분쟁으로 중국정부와 인민들을 자극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대일정책은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포위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서 핵심적 행위자인 일본의 역할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발전이라는 자국의 목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본과의 협력이라는 두 가지 주요한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우선 미국의 대중국 포위정책의 핵심적 행위자로서의 일본의 역할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중국의 급작스런 정치-경제적 부상과 이와 대비되는 일본의 약화로 인한 두려움과 질시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극우세력들의 일본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중국 봉쇄정책에 호응하면서 더 나아가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하려는 듯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토분쟁은 양국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부채질하면서 중국의 일본에 대한 강경책을 유도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며, 이점에서 일본의 기술력과 경험은 중국에 필요한 요소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정치적인 대치상황에서도 경제 뿐 아니라 사회, 문화 분야에서도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쟝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의 대일정책이 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이었다면, 이미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확보한 시진핑의 대일정책은 좀 더 강경해질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자신감은 시진핑이 중국의 꿈(中国梦, 아메리칸 드림의 아류인)을 선언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반일 민족주의적 정서에 편승한 군부의 강경 대응도 이러한 현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국의 이런 강경한 대응이 두 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안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일 모두 극한 대립이 가져올 파국적인 결과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실행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양국의 화해와 협력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정치-경제적으로 양국과 모두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동아시아는 물론 한반도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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